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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관속으로 - 언니에게 부치는 편지
원도 지음 / 이후진프레스 / 2019년 9월
평점 :
친근한 말투에서 오는 징징거림. 듣기 싫지 않은 징징거림. 토닥여주고 싶고 오늘 하루도 잘 버텼다고 말해주고 싶은 편지의 모음집이었다.
경찰관이 무슨 일을 하는지 자세히 알 수 있어서 좋았고 가끔 나오는 비유들이 찰떡같아서 더 기억에 남는 책이었다.
계기
서점에서 책을 둘러보던 중 이 책을 여는 편지가 참 좋아서 구매했다. 이유 없이 그냥 마음 가는 것들이 있는데 이 편지가 그랬다.
이 소동은 너덜너덜해진 내가 파출소로 돌아와 구렁이만큼 불어버린 칼국수를 한 입 먹고 나서야 끝이 났는데, 형사팀에 의해 신고자의 신변이 확인되었다는 연락을 받았거든. 신고자는 남자친구와 술을 마신 뒤 싸워서 신고한 거래. (23쪽)
허위신고자를 찾는 모습을 보는데 내가 더 빡친다. 그래도 안전하길 바라는 그 마음이 뭔지 알 것 같아서 더 열 받았다. 안전을 걱정받을 자격이 있는 인간인지...
우리는 그런 말을 그만두고 가정폭력 피해자, 특히 아이들이 받을 상처를 해결해주어야만 해. 그것이 아이들의 의사는 묻지 않고 덥석 미래를 맡겨버린 어른들이 해야 할 책임이니까. (35쪽)
그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사회의 미래를 맡겼으니까. 우리는 그들이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받을 권리를 마련해줘야 한다.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갈 수 있는 쉼터가 늘었으면 좋겠다.
언니, 어느 지역에서는 국제결혼을 빙자한 매매혼을 할 때 지자체에서 보조금도 지원해주더라. 정말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이야. (57쪽)
매매혼이 아니라 인신매매 아닌가. 보조금 지원이 실제로 이루어졌는지와 그 형태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다. 내 상식으로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
언니, 모두에게 공평히 내리쬐는 햇살도 누군가에겐 공포가 되고 사치가 되더라. 화살을 쏜 사람은 곧 그 장소에서 자신이 화살을 쐈다는 사실도 까맣게 잊어버리겠지. (71쪽)
유독 성범죄가 더 그렇다. 가해자는 떵떵거리고 피해자는 숨는다. 가해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잊고 잘 살아가고 피해자는 그 일을 방금 겪은 것 마냥 스트레스 속에 살아간다. 진심으로 역겹다.
눈을 떠도 깜깜할 뿐인 상태로 어떻게 80년 이상을 살 수 있을까, 언니 목숨이란 거, 정말 질겨서 눈물이 날 지경이야. (91쪽)
산다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목숨줄은 더럽게 질기다. 내가 감히 저 인생을 평가할 자격이 있을까 싶지만, 저렇게 시간을 흘려보내는 건 너무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까. 명줄은 참 질기다.
학생의 어머니는 순찰차를 타고 병원으로 가는 내내 참 많이도 우셨어. 그럴 리가 없는데, 걔가 그럴 리가 없는데, 정말 왜 그랬을까. (108쪽)
걔가 그럴 리가 없는데. 내가 자살을 하면 나도 저런 소리를 들을까? 그럼 자살을 할 법한 사람은 누굴까. 한 인간이 피드백할 수 없는 결정을 한 것에 대해 뭐라고 말을 할 수 있을까. 자살 생각이 나다가도 이런 글들을 보면 마음이 착잡해진다. 내 목숨 하나도 마음대로 끊을 수 없는 인생이란 게 참 덧없다.
그러나 이 문제는 어떤 식으로 풀어나가야 할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조차도 시작되지 않은 것이 현실이야.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으로 미뤄진 사회의 어둠은 생각보다 짙어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아. (120쪽)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으로 미뤄진 사회의 어둠. 개인이 집단으로 모인 사회에서도 해결하지 못해 떠밀듯이 밀어버린 존재를 한 개인이 어떻게 안을 수 있을까. 우리 다수는 끝이 보이는 인생을 사는 걸까. 사회는 어디서부터 뭐가 문제인 걸까.
그렇다면 이 사람들이 과연 경찰관서가 아닌 다른 기관, 예컨대 검찰청이나 청와대까지 가서도 이런 태도로 일관할 수 있는 건지, 그냥 경찰 조직 자체가 자신의 발아래로 보였던 건 아닌지. (138쪽)
법원, 검찰청은 그렇게들 어려워하는 모습이 떠오르는 걸 보니 정말 경찰이라는 조직을 국민 밑에 있다고 생각하는 게 맞는구나.. 똑같이 세금으로 굴러가지만, 법원에서는 보통 굽신거리던데 사람이란 존재는 참 간사하고 약았다.
감상
경찰이 국민과 밀접한 직업이란 게 느껴지는 책이었다. 특히 사회적 약자들의 모습을 많이 만날 수 있었는데, 이야기 대다수가 딱히 현 상황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는 경우였다. 보는 나도 반복될 현실에 화가 나다 무기력해졌는데, 작가님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무력감을 심하게 느끼셨을 것 같았다.
세상은 넓고 또라이는 많다는 말이 책 곳곳에서 느껴졌다. 경찰분들이 생각보다 하시는 일이 훨씬 많았고 직업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