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구트 꿈 백화점 - 주문하신 꿈은 매진입니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
이미예 지음 / 팩토리나인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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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서 들리는 후기도 좋았고, 꿈을 판다는 소재가 신선해서 읽었다.



그림자가 밤새 대신 경험한 모든 것들에 대한 기억은 둘째처럼 연약한 이들의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그리고 첫째처럼 경솔한 이들이 잊지 말았어야 할 것들은 이튿날 아침이면 다시 떠올릴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과거에 연연한 연약한 사람, 미래에 눈이 먼 경솔한 사람. 경솔함의 대가로 연약함을 쥐게 된 나.



목적지요? 사람은 최종 목적지만 보고 달리는 자율 주행 자동차 따위가 아니잖아요. 직접 시동을 걸고 엑셀을 밟고 가끔 브레이크를 걸면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해야 제맛이죠.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은 살아갈수록 잘 모르겠다. 결과가 나쁘면 좋았던 과정도 싫어지고, 결과가 좋으면 나빴던 과정이 미화된다.

 원치 않는 결과지만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을 얻을 순 있겠지. 근데 뭐? 보통 그 방법조차도 다음 결과의 밑거름으로 쓰이지 않나.



가장 힘들었던 시절은, 거꾸로 생각하면 온 힘을 다해 어려움을 헤쳐나가던 때일지도 모르죠. 이미 지나온 이상,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랍니다. 그런 시간을 지나 이렇게 건재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손님들께서 강하다는 증거 아니겠습니까?

 온 힘들 다해 헤쳐나가는 게 아니었고, 장애물이 나를 아무리 쳐도 그냥 아픈 게 무뎌질 때까지 기다렸다. 생각하기 나름이라는데 아무리 다시 생각해도 그 순간은 별로다. 강해서 버틴 게 아니라, 죽지 못해서 마지못해서 버텼다.

 나는 트라우마 극복 꿈을 절대 사지 않을 것이고 실수로 샀다면 당장 다음날 달러구트 사무실을 방문하는 손님이 될 것이다. 달러구트한테 따지는 내 모습을 상상해봤는데, 어이없고 웃겼다.



감상

 각 장별로 인물들의 이야기가 끊어지지 않고 물 흐르듯 연결되어 이번에 등장한 인물이 다음 장에선 어떻게 등장할까 생각하며 재밌게 읽었다.

 꿈 백화점의 손님으로 간다면 '평소 하고 싶던 일'을 사서 윙슈트를 입고 화산 위를 나는 꿈을 꾸고 싶다. 이 꿈을 꾸고 나면 다량의 아쉬움이 꿈 백화점에 적립될 것 같다.

 꿈을 만들고, 팔고, 사는 세상에 산다면 나는 꿈 제작자가 되고 싶다. 광활한 자연 풍경의 배경을 파는 배경 전문 제작자가 좋을 것 같다. 나중에 종일 자연 속에 파묻혀서 그것만 보고 사는 인생을 살고 싶은데, 배경 제작자가 되면 그런 인생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트라우마로 남은 일이 꿈에 종종 나온다. 꿈속에서의 나는 체념하고 받아들였던 당시와 다르게 적극적으로 내 의견을 표출하고 화낸다. 꿈에서 깨고 항상 나에게 되묻는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면 어떡할래? 대답은 '당시의 나는 그때와 똑같을 것이다' 이다. 그래서 싫다. 그때의 일을 꿈속에서 시원하게 해결하는 듯해도 꿈에서 깨면 제자리다. 그 당시로 돌아갈 수도 없고, 돌아가도 달라지는 건 없다. 하나 좋은 건 내가 발전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건데 그조차도 별 의미 없는 게 꿈을 꾸고 난 뒤 스트레스가 더 커서 굳이 이런 방법으로 느끼고 싶지 않다.

 

 오늘 밤 내가 달러구트 꿈 백화점에 손님이 된다면, 수면 캔디나 잔뜩 받아서 나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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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소전쟁 - 모든 것을 파멸시킨 2차 세계대전 최대의 전투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오키 다케시 지음, 박삼헌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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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탐욕의 끝, 추악함의 민낯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전쟁은 무섭고 신기한 존재다. 무엇이 그 많은 사람을 전투의 현장으로 이끌었을지 궁금했다.



 유쾌하지 못한 사실이 제시되었음에도,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것은 안 일어난다는 어긋난 '신앙'의 포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을 부정한 독재자는 심상치 않은 재앙을 불러들이고 있었다.

 지도자가 뻔히 보이는 경고를 무시하다 그 대가를 민간인이 고스란히 입은 몇몇 사례가 생각났다. 

 나도 인생에서 눈에 뻔히 보이는 경고를 무시하고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살다가 결국 현실 앞에서 무너진 적이 몇 번 있다. 고쳐야 할 사고방식이다. 문제점이 눈에 띄면 받아들이고 준비를 해서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그리하여 진주만 공격 소식을 들은 히틀러는 1941년 12월 11일 미국에 선전포고한다.

 얘네들의 추악한 욕심에 희생양이 된 우리 국민들이 생각난다. 분하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가 한창일 때에도 국민의 불만이 없도록 귀중한 외화를 쓰면서 기호품이나 의류 수입은 계속했다.

 역사는 반복된다. 3S 정책이 생각났다. 형편없는 현실을 가리기 위해 국민들의 눈을 다른 데로 돌려버린다.



수탈 정책은 앞에서 보았듯이 타국민을 굶겨 죽이더라도 자국민의 지지를 확보하고 유지한다는 점에서, 그런대로 '합리성'이라는 틀 안에 있었다.

 글쎄. 앞에 '그런대로'라는 수식어가 붙었지만, 이 상황에 합리성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을까? 

 나는 이 상황을 보면 미쳤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권력을 저렇게 해서까지 얻고 싶은지, 히틀러 본인은 정말 하늘 아래 한 점 부끄러움 없었는지 아니 더 나아가 본인에게는 부끄럽지 않은 인생을 살았는지 묻고 싶다.



스탈린은 전부를 얻으려고 하다가 아무것도 얻지 못한 셈이다. 독일군은 간신히 궤멸을 면했다.

 딱 봐도 말이 안 되는 상황인데, 극단의 상황에 처하면 사람의 판단력이 흐려지는 건가?



사기가 저하된 자나 복종하지 않는 자를 모아서 위험한 임무에 투입하는 '징벌대' 제도가 도입되고, 주력부대 배후에는 '저지부대'가 배치되었다. 저지부대 임무는 독전이고, 필요한 경우에는 실력으로 전선부대의 퇴각을 막았다.

 군인들이 명령을 잘 따랐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역시 이런 조치가 있었다.



살아있을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을 비인간적인 노동에 강제 동원하여 생산 확대를 달성하고 그 과정에서 죽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한 나치 독일 지도부의 상정 그대로였다.

 내가 보기에 살아있을 가치가 없는 건 나치 독일 지도부들인데. 무식한 것들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다더니, 그 말이 딱 떠오른다. 천박하다.



1941년 6월 22일 미영은 독일군이 소련에 침공했다는 보고를 듣고 기뻐했다.

 으이구. 미국, 영국은 현대사에 큰 빚을 졌다. 

 특히 미국은 많은 전쟁에 끊임없는 혜택을 얻어 성장한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즉, 히틀러에게 가담하여 수탈 전쟁과 절멸 전쟁으로 얻은 이익을 누린 독일 국민은 점차 전행의 참화에 직면하는 사태가 되었어도 항전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독일 국민들은 자신들이 공범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오늘날 히틀러를 경멸한다. 옆 동네 섬나라랑 비교된다. 

 다른 나라를 착취해서 본인들이 이득을 누렸고 발전했으면 그에 대한 반성은 응당 인간이라면 해야 하는 일 아닌가? 인간이길 포기한 건지 뭔지...



감상

 한 전쟁의 과정을 이렇게 상세하게 본 적은 처음인데, 생각보다 더 극단적이고 참혹하고 가혹했다. 이데올로기에 미쳤다는 이유로 이런 일을 저지른 게 도저히 납득이 안 될 정도다. 

 특히 각국이 서로의 포로를 대하는 방식이 참혹했다. 이데올로기를 방패 삼아 권력에 미친 인간들이 등장한 대참사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순간순간 일어나는 사건들을 보면서 역사가 반복되는 것을 느꼈다. 인간은 크게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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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병동 졸업생 - 설암을 진단받고 절반의 혀를 가지게 된 한유경 에세이
한유경 지음 / 캐모마일프레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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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대 암 환자가 늘고 있다는 기사를 본 적 있고 암에 걸린 유튜버를 본 적이 있다. 더는 나에게 먼 존재가 아닌 '암'에 대해 궁금했다. 

 또한 암을 완치했음에도 알게 모르게 암환자였다는 이유로 차별받는 사례를 본 적 있어서 그런 면에서도 내가 이 책에서 배워갈 점이 있지 않을까 싶어 읽기 시작했다.


독서iNG

방문을 닫고 책상에 앉아서 다시 생각했다. 이렇게까지 노력해서 치료를 받고 싶은지, 낮은 생존율과 높은 재발률의 수치를 보고도 용기가 나는지, 부모님한테는 어떻게 말할 것인지. 함께 해주는 친구들이 문 뒤에 있지만 일단 수술을 받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치료를 받을 용기도, 부모님께 말할 자신도 없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내가 암에 걸렸단 얘기를 들으면 나는 어떻게 행동할까?' 생각해본 적이 있었는데, 작가랑 똑같이 생각했다. 다 부질없는 짓 같고 굳이 그 고생을 하면서까지 내가 살아야 할 이유가 있겠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작가는 어떻게 이런 생각을 지우고 완치할 수 있었는지 뒷얘기가 궁금하다.



그렇다면 죽더라도 수술하고 죽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지금 포기해버리면 이 돈들이 날아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허무하게도 이 도망의 끝에서 돈이 나를 붙잡아 주었다.

 작가의 솔직함이 느껴졌다. 내가 삶을 포기하고 싶을 때, 나를 붙잡아주는 건 무엇일지 궁금했다.



촉감이 무척 좋았다. '지금 이곳에 햇살이 들어오면 물이 반짝이는 것을 볼 수 있을 텐데'라고 조금 아쉬워하며 오랫동안 흐르는 물을 어루만졌다.

 방금 손을 씻고 왔는데, 그냥 별 생각 없이 흐르는 물에 손을 비누로 씻었다. 그러고 와서 이 부분을 읽었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당연하게 여겨왔던 게 당연하지 않은 인생은 많이 힘들 것 같다.



매일 걸으면서 운동 시간과 특이사항을 적었다.

 대단하다. 작가가 수술 후 겪은 일을 생생하게 적어서 나까지 아픈 기분이었는데, 그런 상황에서 걷고 심지어는 그걸 기록하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탄했다.



가끔씩 환자 보호자가 측은한 눈빛과 함께 '힘내세요'라고 말할 때도 있다. 뭔가 기분이 나쁘다.

 본인이 호의를 가지고 행동을 했어도 상대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건 선의라고 볼 수 없다. 특히 동정은 더 그렇다. 은연중에 '내가 쟤보단 낫지'라는 생각을 깔고 동정을 건네는데, 받는 상대에게 그런 감정이 다 느껴져서 기분이 더럽다.



암 환자가 되기 전에 생각했던 치료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기침이 멎고 열이 내려 몸이 홀가분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암 환자의 치료는 그렇지 않다.

 나도 암을 막연히 치료받으면 끝나는 병이라고 생각해서 이 부분을 읽고 머리가 띵했다. 치료는 그냥 말 그대로 병을 낫게 해 주는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건 그다음 일이다.



내 스스로도 나의 외모를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필요했는데, 누군가에게 그런 시간도 주지 않고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달라는 것은 불공평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라고 생각한다. 불공평한 게 아니라 그냥 그 사람들이 무례했다. 본인이 생각하는 '평범함'의 기준에 벗어나는 모습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놀랄 수 있다. 근데 거기서 끝내야 한다. 입 밖으로, 행동으로 그 어떤 것도 표현하지 말고 머릿속에서 생각으로 딱 끝내야 한다. 그걸 표현하는 건 여지없는 무례라고 생각한다. 

 나는 달라진 내 모습에 적응하는 중이지만, 그들은 나를 처음 봤기 때문에 이게 달라진 모습인지 원래 내 모습인지 알 길이 없지 않은가. 이게 원래 내 모습이면 어쩔건데.



감상

 솔직함이 너무 멋있다. 나였으면 이렇게까지 자세하게, 아니 책으로 출간할 생각도 못 했을 것 같다. 시작부터 끝까지의 과정이 자세하게 묘사돼있어서 나도 작가와 같은 마음으로 '얼른 말을 할 수 있길', '얼른 상황이 좋아지길' 이런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다.

 암은 수술하고 퇴원하면 끝인 줄 알았는데, 퇴원했음에도 책이 절반이나 남아있어서 그 후의 고통을 어렴풋이 짐작했지만, 상상 이상이었다. 특히 아무것도 모르는 무례한 타인의 시선은 내 기분까지 나쁘게 만들었다.

 책을 쓰신 목표 중 하나가 '암 환자에 대한 이해에 도움 주기' 라고 하셨는데, 이루셨다고 생각한다. 솔직하고 담담하게 써 내려간 글을 읽으며 그 여정을 아무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는 값진 시간이었다.


<해당 도서는 독립출판 플랫폼인디펍으로부터 서평 작성을 위해 무상으로 제공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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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야, 너의 예순에는 무엇을 만났니
김주옥 지음 / 지식과감성#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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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아름다운 세상 vs 갈수록 엿 같은 세상

주변의 것들이 꼴 보기 싫고, 가끔은 나 자신조차 보기 싫을 때가 있다. 근데 시인은 갈수록 세상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왜 그렇게 말하는지 궁금했다. 분명 같은 길을 걷는데 왜 누구는 쓰레기 더미 속을 헤치고 나가는 기분이고, 누구는 꽃길을 걷는 기분인지 궁금했다.









 엄마의 입장에서 딸을 바라본, 할머니의 입장에서 손녀를 바라본 시선이 많았다. 엄마와 할머니에게 나도 저런 존재였을까.

 시인은 산전수전을 다 겪고 평화를 찾았다. 비로소 세상이 아름다워 보인다고 한다. 근데, 나는 지금 산전수전을 겪는 중이다. 이게 끝나야 평화가 찾아온다는 말은 너무 암울하다. 언제 끝날지, 아니 끝이 날지조차 불분명한 이 긴 터널을 내가 잘 견디길 바라는 수밖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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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아무렇지 않은 척 살고 있지만 - 스물다섯, 저마다의 이야기 그리고 인터뷰
황연웅 지음 / SISO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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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기

 가끔 너무 힘들 때, 그런 생각이 든다. 정말 다들 이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가는 걸까? 다들 힘들다고 하는데, 지금 나는 정말 너무 힘든데, 이 고통을 아무 내색 없이 참아내는 걸까? 

 남들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했다.



독서iNG

응, 나는 여러 일을 하면서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건 뭘까'라는 질문을 던졌었어. 그런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순간이 있다면, 내가 이걸 해야 하는 이유를 찾지 않는 순간, 그 순간이 '몰입' 아닐까?

 되게 멋있다. 해야 하는 이유를 찾지 않는 순간. 

 돌이켜보면 나는 항상 일을 시작할 때, 일하는 목표를 세우고 시작한다. 책을 읽을 때도 이 책을 읽는 목표를 세우고 읽는다. 중간에 다른 길로 새는 걸 방지하고 싶고, 혹여 슬럼프가 왔을 때 목표를 보며 빨리 극복하기 위함이다. 아직 내가 '몰입'할 대상을 찾지 못했단 증거겠지. 

 나도 몰입할 대상을 찾고 싶다.



사람은 혼자서 살 수 없지만 나는 이미 사람들과의 관계가 벅찬 상태야. 이렇게 지내면서 점점 비관적으로 변하는 것 같아. 외톨이가 된 것 같아.

 인간이 사회적 동물인 걸 아는데, 관계가 이미 벅차다. 딱히 많은 사람과 맺어진 것도 아닌데 그조차도 버겁다. 관계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해서일까. 

 본격적인 인간관계가 시작될 텐데 '적당한' 관계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할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불안을 내 삶이라고 생각했고, H는 불안을 불안으로만 바라볼 줄 알았다.

 행복하면 그냥 그 순간 행복하다. 그 행복을 내 삶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유독 불안, 우울, 무기력은 그 감정이 내 인생의 전부처럼 느껴질까.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거기서 딱 끝낼 수 있는 연습이 필요하다.



난 선택을 잘하고 싶은 게 아니라 직접 선택하고 싶을 뿐이야. 그러니까 불안한 게 무슨 상관이야?

 난 잘된 선택을 직접 하고 싶다. 그래서 나를 흔드는 수많은 불안이 신경 쓰인다.



후회보다 반성이 더 유리하다는 걸 알았거든. 덕분에 불안해도 직접 선택하는 삶을 유지하고 있어. 앞으로도 유지하고 싶고.

 내 문제를 찾았다. 후회만 한다. 후회하면 거기서 앞으로 행동 방향을 얻어 반성까지 나아가야 하는데, 그걸 못하고 있으니 계속 같은 부분에서 문제가 생긴다.  

 "불안해도 직접 선택하는 삶을 계속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인생" 어떤 인생일까. 불안을 즐긴다는 게 뭔지 나도 경험해 보고 싶다.



예전에는 불합리한 것에 화를 내고, 내 목소리를 잃지 않는 것이 정말 중요했어. 근데 화를 내도 소용이 없다는 걸 알았고, 내 목소리를 내면 달라지는 건 환경이 아니라 날 보는 시선이란 걸 느꼈어. 의미 없다고 느껴지자 귀찮아지더라고. 그래서 이제는 하고 싶은 말을 삼켜. 그렇다고 분노가 오래가는 건 아니야. 말을 해도, 하지 않아도 달라질 게 없다는 걸 알았으니까. 참는 게 아니라 잊어버리는 거지.

 완전 나다. 예전에는 내 목소리를 내는 일이 나에게 중요했다. 그런데 목소리를 낼수록 내가 나를 찌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상황은 똑같은데, 나는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나도 침묵을 택하고 최대한 그것을 빨리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는 연습을 했다. 

 근데 더 단단한 내가 되었을 때, 불합리에 다시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지금은 너무 지친 상태다.



형태도 모르는 성공을 막연하게 기다리며 살았다. 나는 크게 될 사람이니 성공이 다가올 거라고 믿으며 덩그러니 제자리에 머물렀다.

 나도 그랬다. 사실 지금도 어느 정도는. 성공을 구체화하지 않았다. 구체화하는 순간 해야 할 일이 생기고 그럼 움직여야 하는데, 내가 원하는 건 여유로운 성공이었으니까. 

 치열하게 노력할 자신이 없는 자의 구차한 변명이다.



그들이 용서를 구하는 게 정말 나를 위한 사과가 맞는 걸까? 내 상처가 계속 남아 있는 한, 난 굳이 용서해야 할 가치를 못 느끼겠어.

 용서는 받는 사람 마음이다. 받는 사람이 원치 않는 사과를 던지며 용서를 강요하는 건 폭력이다. 내 상처가 남는 한, 용서할 가치가 없다는 말에 동의한다.

 그렇다고 계속 기억하며 살아가겠다는 뜻은 아니다. 그냥 머릿속에서 그 사람의 존재를 지워버리겠단 뜻이지. 뭐 가끔 불쑥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감상

 저마다 다채로운 스물다섯 명의 스물다섯 살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여러 사람의 모습에서 내 모습과 겹치는 부분이 있어서 그 부분이 특히 신기하고 재밌었다. 버티면서 살아가는 사람도, 몰입으로 그 답을 찾은 사람도 어쨌든 그들만의 방식으로 고통을 다루며 살아가고 있었다.

 다들 아무런데 아무렇지 않은 척 산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기에는 사회가 냉정하다. 사회를 살아갈수록 내가 내뱉는 말은 나를 판단하는 잣대가 되거나 때로는 약점이 되어 돌아온다. 이런 상황을 계속 겪다 보면 침묵은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스물다섯에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지금 쓴 코멘트와 비교하며 그때의 나는 뭐가 달라졌을지 기대된다. 원하는 게 있다면, '몰입'할 수 있는 대상을 찾은 나였으면 좋겠다. 해야 할 일을 이유 없이도 기꺼이 즐겁게 하는 나이길 바란다.

 스물다섯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잘 견뎠다고, 기특하다고 해줬으면 하는 바람으로 책장을 덮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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