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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아무렇지 않은 척 살고 있지만 - 스물다섯, 저마다의 이야기 그리고 인터뷰
황연웅 지음 / SISO / 2021년 1월
평점 :
절판
계기
가끔 너무 힘들 때, 그런 생각이 든다. 정말 다들 이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가는 걸까? 다들 힘들다고 하는데, 지금 나는 정말 너무 힘든데, 이 고통을 아무 내색 없이 참아내는 걸까?
남들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했다.
독서iNG
응, 나는 여러 일을 하면서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건 뭘까'라는 질문을 던졌었어. 그런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순간이 있다면, 내가 이걸 해야 하는 이유를 찾지 않는 순간, 그 순간이 '몰입' 아닐까?
되게 멋있다. 해야 하는 이유를 찾지 않는 순간.
돌이켜보면 나는 항상 일을 시작할 때, 일하는 목표를 세우고 시작한다. 책을 읽을 때도 이 책을 읽는 목표를 세우고 읽는다. 중간에 다른 길로 새는 걸 방지하고 싶고, 혹여 슬럼프가 왔을 때 목표를 보며 빨리 극복하기 위함이다. 아직 내가 '몰입'할 대상을 찾지 못했단 증거겠지.
나도 몰입할 대상을 찾고 싶다.
사람은 혼자서 살 수 없지만 나는 이미 사람들과의 관계가 벅찬 상태야. 이렇게 지내면서 점점 비관적으로 변하는 것 같아. 외톨이가 된 것 같아.
인간이 사회적 동물인 걸 아는데, 관계가 이미 벅차다. 딱히 많은 사람과 맺어진 것도 아닌데 그조차도 버겁다. 관계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해서일까.
본격적인 인간관계가 시작될 텐데 '적당한' 관계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할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불안을 내 삶이라고 생각했고, H는 불안을 불안으로만 바라볼 줄 알았다.
행복하면 그냥 그 순간 행복하다. 그 행복을 내 삶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유독 불안, 우울, 무기력은 그 감정이 내 인생의 전부처럼 느껴질까.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거기서 딱 끝낼 수 있는 연습이 필요하다.
난 선택을 잘하고 싶은 게 아니라 직접 선택하고 싶을 뿐이야. 그러니까 불안한 게 무슨 상관이야?
난 잘된 선택을 직접 하고 싶다. 그래서 나를 흔드는 수많은 불안이 신경 쓰인다.
후회보다 반성이 더 유리하다는 걸 알았거든. 덕분에 불안해도 직접 선택하는 삶을 유지하고 있어. 앞으로도 유지하고 싶고.
내 문제를 찾았다. 후회만 한다. 후회하면 거기서 앞으로 행동 방향을 얻어 반성까지 나아가야 하는데, 그걸 못하고 있으니 계속 같은 부분에서 문제가 생긴다.
"불안해도 직접 선택하는 삶을 계속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인생" 어떤 인생일까. 불안을 즐긴다는 게 뭔지 나도 경험해 보고 싶다.
예전에는 불합리한 것에 화를 내고, 내 목소리를 잃지 않는 것이 정말 중요했어. 근데 화를 내도 소용이 없다는 걸 알았고, 내 목소리를 내면 달라지는 건 환경이 아니라 날 보는 시선이란 걸 느꼈어. 의미 없다고 느껴지자 귀찮아지더라고. 그래서 이제는 하고 싶은 말을 삼켜. 그렇다고 분노가 오래가는 건 아니야. 말을 해도, 하지 않아도 달라질 게 없다는 걸 알았으니까. 참는 게 아니라 잊어버리는 거지.
완전 나다. 예전에는 내 목소리를 내는 일이 나에게 중요했다. 그런데 목소리를 낼수록 내가 나를 찌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상황은 똑같은데, 나는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나도 침묵을 택하고 최대한 그것을 빨리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는 연습을 했다.
근데 더 단단한 내가 되었을 때, 불합리에 다시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지금은 너무 지친 상태다.
형태도 모르는 성공을 막연하게 기다리며 살았다. 나는 크게 될 사람이니 성공이 다가올 거라고 믿으며 덩그러니 제자리에 머물렀다.
나도 그랬다. 사실 지금도 어느 정도는. 성공을 구체화하지 않았다. 구체화하는 순간 해야 할 일이 생기고 그럼 움직여야 하는데, 내가 원하는 건 여유로운 성공이었으니까.
치열하게 노력할 자신이 없는 자의 구차한 변명이다.
그들이 용서를 구하는 게 정말 나를 위한 사과가 맞는 걸까? 내 상처가 계속 남아 있는 한, 난 굳이 용서해야 할 가치를 못 느끼겠어.
용서는 받는 사람 마음이다. 받는 사람이 원치 않는 사과를 던지며 용서를 강요하는 건 폭력이다. 내 상처가 남는 한, 용서할 가치가 없다는 말에 동의한다.
그렇다고 계속 기억하며 살아가겠다는 뜻은 아니다. 그냥 머릿속에서 그 사람의 존재를 지워버리겠단 뜻이지. 뭐 가끔 불쑥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감상
저마다 다채로운 스물다섯 명의 스물다섯 살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여러 사람의 모습에서 내 모습과 겹치는 부분이 있어서 그 부분이 특히 신기하고 재밌었다. 버티면서 살아가는 사람도, 몰입으로 그 답을 찾은 사람도 어쨌든 그들만의 방식으로 고통을 다루며 살아가고 있었다.
다들 아무런데 아무렇지 않은 척 산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기에는 사회가 냉정하다. 사회를 살아갈수록 내가 내뱉는 말은 나를 판단하는 잣대가 되거나 때로는 약점이 되어 돌아온다. 이런 상황을 계속 겪다 보면 침묵은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스물다섯에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지금 쓴 코멘트와 비교하며 그때의 나는 뭐가 달라졌을지 기대된다. 원하는 게 있다면, '몰입'할 수 있는 대상을 찾은 나였으면 좋겠다. 해야 할 일을 이유 없이도 기꺼이 즐겁게 하는 나이길 바란다.
스물다섯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잘 견뎠다고, 기특하다고 해줬으면 하는 바람으로 책장을 덮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