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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소전쟁 - 모든 것을 파멸시킨 2차 세계대전 최대의 전투 ㅣ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오키 다케시 지음, 박삼헌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1년 1월
평점 :
품절
인간 탐욕의 끝, 추악함의 민낯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전쟁은 무섭고 신기한 존재다. 무엇이 그 많은 사람을 전투의 현장으로 이끌었을지 궁금했다.
유쾌하지 못한 사실이 제시되었음에도,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것은 안 일어난다는 어긋난 '신앙'의 포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을 부정한 독재자는 심상치 않은 재앙을 불러들이고 있었다.
지도자가 뻔히 보이는 경고를 무시하다 그 대가를 민간인이 고스란히 입은 몇몇 사례가 생각났다.
나도 인생에서 눈에 뻔히 보이는 경고를 무시하고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살다가 결국 현실 앞에서 무너진 적이 몇 번 있다. 고쳐야 할 사고방식이다. 문제점이 눈에 띄면 받아들이고 준비를 해서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그리하여 진주만 공격 소식을 들은 히틀러는 1941년 12월 11일 미국에 선전포고한다.
얘네들의 추악한 욕심에 희생양이 된 우리 국민들이 생각난다. 분하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가 한창일 때에도 국민의 불만이 없도록 귀중한 외화를 쓰면서 기호품이나 의류 수입은 계속했다.
역사는 반복된다. 3S 정책이 생각났다. 형편없는 현실을 가리기 위해 국민들의 눈을 다른 데로 돌려버린다.
수탈 정책은 앞에서 보았듯이 타국민을 굶겨 죽이더라도 자국민의 지지를 확보하고 유지한다는 점에서, 그런대로 '합리성'이라는 틀 안에 있었다.
글쎄. 앞에 '그런대로'라는 수식어가 붙었지만, 이 상황에 합리성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을까?
나는 이 상황을 보면 미쳤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권력을 저렇게 해서까지 얻고 싶은지, 히틀러 본인은 정말 하늘 아래 한 점 부끄러움 없었는지 아니 더 나아가 본인에게는 부끄럽지 않은 인생을 살았는지 묻고 싶다.
스탈린은 전부를 얻으려고 하다가 아무것도 얻지 못한 셈이다. 독일군은 간신히 궤멸을 면했다.
딱 봐도 말이 안 되는 상황인데, 극단의 상황에 처하면 사람의 판단력이 흐려지는 건가?
사기가 저하된 자나 복종하지 않는 자를 모아서 위험한 임무에 투입하는 '징벌대' 제도가 도입되고, 주력부대 배후에는 '저지부대'가 배치되었다. 저지부대 임무는 독전이고, 필요한 경우에는 실력으로 전선부대의 퇴각을 막았다.
군인들이 명령을 잘 따랐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역시 이런 조치가 있었다.
살아있을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을 비인간적인 노동에 강제 동원하여 생산 확대를 달성하고 그 과정에서 죽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한 나치 독일 지도부의 상정 그대로였다.
내가 보기에 살아있을 가치가 없는 건 나치 독일 지도부들인데. 무식한 것들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다더니, 그 말이 딱 떠오른다. 천박하다.
1941년 6월 22일 미영은 독일군이 소련에 침공했다는 보고를 듣고 기뻐했다.
으이구. 미국, 영국은 현대사에 큰 빚을 졌다.
특히 미국은 많은 전쟁에 끊임없는 혜택을 얻어 성장한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즉, 히틀러에게 가담하여 수탈 전쟁과 절멸 전쟁으로 얻은 이익을 누린 독일 국민은 점차 전행의 참화에 직면하는 사태가 되었어도 항전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독일 국민들은 자신들이 공범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오늘날 히틀러를 경멸한다. 옆 동네 섬나라랑 비교된다.
다른 나라를 착취해서 본인들이 이득을 누렸고 발전했으면 그에 대한 반성은 응당 인간이라면 해야 하는 일 아닌가? 인간이길 포기한 건지 뭔지...
감상
한 전쟁의 과정을 이렇게 상세하게 본 적은 처음인데, 생각보다 더 극단적이고 참혹하고 가혹했다. 이데올로기에 미쳤다는 이유로 이런 일을 저지른 게 도저히 납득이 안 될 정도다.
특히 각국이 서로의 포로를 대하는 방식이 참혹했다. 이데올로기를 방패 삼아 권력에 미친 인간들이 등장한 대참사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순간순간 일어나는 사건들을 보면서 역사가 반복되는 것을 느꼈다. 인간은 크게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