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의 협상법 - 인생의 승부처에서 삶을 승리로 이끄는 협상비법
신용준 지음 / 리텍콘텐츠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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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는데 참 수법이 약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좋게 말하면 현실적이라는 거겠지. 지금 당장 비즈니스에서 구체적인 실천 가능한 협상 방법을 찾는 사람들이 읽으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듯하다. 나는 '인생은 협상의 연속이다.'라는 마인드를 가지고 읽어서 딱히 큰 도움은 못 받았다.



독서 계기

 비즈니스에서뿐만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며 사람을 만나는 순간순간이 협상의 연속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원하는 걸 좀 더 쉽게 가져올 방법을 배우고 싶어서 읽게 되었다. 특히 싫은 사람과 무사히 협상을 마치는 방법을 얻고 싶다.



 염세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했다. "삶은 욕망과 권태 사이를 왕복하는 시계추와 같다. 그러니 욕망으로 인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 (25쪽)

 미쳤다 진짜. 이때까지 본 명언 중에 제일 와닿는다. 쇼펜하우어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게 만든 문장이다.



 경쟁적 협상에서 협상자들이 제시한 입장의 중간 지점에서 타협하여 각자가 원하는 것의 절반만을 취하는 것과는 달리 협력적 협상에서는 협상자들 모두 각자 원하는 것 전부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143쪽)

 협상 목록을 추가하는 건 생각도 못 했는데 좋은 해결책이다. 서로 기분 좋게 협상을 마무리할 수 있을듯하다.



 상대와 판매를 위한 대화를 할 때 다음의 방법을 써보아라. 가령 "돈이 없어서 저축하기 힘들어요."라고 했을 때, "아닙니다. 그럴수록 해야죠."라고 자신의 의견을 바로 말하지 말라.

 상대가 하는 말을 그대로 따라 해 주는 것이 먼저다. "아 아무래도 저축하기가 쉽지 않죠?"라고 말한 뒤, "그런데 고객님~" 하면서 하고 싶은 말을 이어가면 된다. (158쪽)

 이 수법 나한테 쓴 사람이 있었는데 되게 별로였다. 내가 한 말은 귓등으로 들은 건가 싶었다.



 하지만 관계만 의지하여 협상을 자기 쪽에 유리하게 하려는 태도는 잘못이다. 협상 결과가 좋지 않아 관계를 따지며 의리 없다고 표현하는 것은 최악이다. (178쪽)

 이거 진짜 별로다. 친하다는 이유로 과하게 많은 걸 바라고 자기 뜻대로 안 되면 분노하는 사람을 본 적 있는데 참 구질구질해 보였다.



 "협상의 귀재 모택동은 협상의 목적에 대해 이렇게 서술한다. 협상이란 시간을 벌기 위한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 하나는 (군사적,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우위를 점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적을 소모시키고, 불안하게 하며, 적을 괴롭히기 위함이다."(220쪽)

 완전 동의. 시간을 전략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예시만 봤는데도 스트레스다.



감상
 다양한 협상 기법들을 만났는데, 내가 무의식중에 쓰던 것도 있고 상대방이 나한테 썼던 것들도 많이 보였다. 특히 상대방이 나한테 썼던 것들 중에 역효과인 게 많았는데, 나도 이런 전략을 쓰기 전에 잘 고심해서 효과를 볼 수 있게 써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파트5 부분에서 다양한 전략들을 소개하며 예시와 함께 장점뿐만 아니라 사용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까지 설명해줘서 유용할 것 같았다. 나중에 실제로 비즈니스 협상 기회가 생긴다면 그 전에 꼭 한번 다시 읽어보고 가고 싶은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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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의 오염 - 양극화 시대, 진실은 왜 사람의 마음을 바꿀 수 없는가
제임스 호건 지음, 김재경 옮김 / 두리반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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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성이 존중받는 이 시대에 우리는 왜 생각이 다른 것만큼은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걸까? 그 틈을 비 집고 다양한 이해관계들이 얽혀 사회를 더 심한 양극단으로 갈랐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을 수 있는 세상이지만, 우리가 서로 경청하는 자세를 가질 때 오염된 광장을 되돌릴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계기

 보고 싶은 것만 보며 살고 싶은 사람들에게 최적화된 사회. 다름을 수용하지 않은 채 사회는 양극단으로 갈라지고 있다. 나와 다른 생각을 의식적으로 접하려고는 하지만 쉽지 않아서 나도 아마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진 인생을 살고 있을 것이다.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된 광장에서 건강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세상을 살고 싶다. 그러기 위해 지금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오늘날 사람들은 귀에 들어오는 어떤 정보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아예 신경을 끄고 등을 돌린다. 결과적으로 광장 자체가 무너지고 있다. (20쪽)

 가짜뉴스에 몇 번 속고 나면 정보를 믿을 수가 없게 된다. 그러면 검증을 통해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게 귀찮아서 그냥 등을 돌려버린다.



 우리는 논쟁을 할 때면 정답이 단 하나 있다고 상정하지만 담론을 할 때면 우리 각자가 답을 하나씩 들고 있다고 상정한다. 따라서 함께 해결책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 것이다. (36쪽)

 상대방에게 내 의견을 설득시키려면 무조건 근거를 들고 와 상대방 의견을 반박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광장을 오염시키는 방법이라 놀랐다. 담론의 방식으로 상대방과 내 의견에서 공통점을 찾은 뒤 거기에서 뻗어 나가 해결책을 찾는다면 어쩌면 더 수월하게 합의 과정에 이를지도 모르겠다.



결론적으로 코너는 모든 정치적 옹호자들에게 적대적인 스탠스를 내려놓고 존중을 담은 눈빛으로 다른 모두를 바라보라고 촉구한다. (52쪽)

 이게 참... 생각이 글러 먹은 것 같아 꼴도 보기 싫은 상대를 존중의 눈으로 바라보는 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근데 저자의 말에 완전히 동의한다. 적대심만 가지고는 아무 일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아니까.



 우리는 무엇을 믿을지 선택하지 않는다. 단지 특정한 종류의 인식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증거들을 마주했기 때문에 무언가를 믿게 될 뿐이다. (82쪽)

 내가 믿는 게 내 의지가 아니라는 말이 섬뜩하다. 보고 느낀 무의식이 만들어낸 결과가 믿음인 거면, 인식조차 되지 않는 무의식을 고쳐야 믿음을 고칠 수 있으니까 잘못된 믿음을 고치는 건 정말 힘든 일이겠구나.



라투르는 그러므로 이제 '진실'이라는 이견의 여지가 있는 낡아빠진 개념을 포기하고 그 대신 주장을 비교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99쪽)

 '사실'은 찾기 어려워도 꼭 찾아야 하는 절대적인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최선이 아닌 차선의 선택을 여기서 하게 될지 몰랐다.


이에 대해 촘스키는 그들이 '개인이 아니라 기업'으로서 존재하기 때문에 '정말 심각한 문제'라고 평했다. (119쪽)
 개인보다 기업이 문제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하는 사이코패스 같은 기업인데, 그 각각의 무슨 짓을 하는 개인을 사이코패스로 보긴…. 쫌 그렇다. 그래도 개인에게 완전히 책임이 없다고 볼 순 없다. 기업 시스템 뒤로 숨기엔 사회에 끼친 민폐가 너무 크다.


따라서 스탠리는 언론의 자유 하나만 가지고는 합리적인 토론을 나눌 환경을 조성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그에 더해 신뢰와 정직이 반드시 필요하다. (180쪽)
 언론이 공정하게 진실을 보도하는 게 상식적인데, 이런 말이 나오는 게 참 아이러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사람들은 자주성을 잃어버리며 다른 존재에게 현실 인식을 대신 떠맡겨버린다. 비합리적으로 변하며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잊어버린다. (186쪽)
 이거 정말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인터넷상에 정보가 넘치다 못해 흐르니 내가 굳이 생각을 안 해도 그럴듯해 보이는 걸 내 생각으로 삼으면 된다. 예전에 내 생각을 물어보는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네이버를 켠 내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서 그 뒤로는 생각하려고 노력 중인데, 귀찮은 건 사실이다. 그래도 멍청하게 남의 생각을 내 생각인 양 가지고 살기 싫어서 사고하려고 노력한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전력을 다해 밀어붙이는 일'과 '이해하지도 신뢰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들과 협력하기 위해 앉아서 이야기하는 일'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과정인 셈이다. (210쪽)
 원하는 일을 마음 맞는 사람과 함께하면 좋겠지만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할 리가 없다. 같이 일을 하기 위해 잠시, 아주 잠시만 함께하는 거라고 마음을 먹고 목표를 빨리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내 정신건강에 이로울 것 같다.


"(전략) 하지만 양쪽 진영 모두 자기 입장만 내세운 채 요지부동입니다. 뭐라도 타협하면 상대한테 승리를 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262쪽)
 타협하는 게 승리를 내어준다고 생각한다는 말 공감한다. 반대를 위한 반대를 언제까지 봐야 할지, 지구가 그 시간을 기다려줄지 의문이다.


간츠는 마틴 루서 킹이 불과 스물다섯 살의 나이에 이끈 저항 운동인 버스 보이콧 운동을 떠올리면서 집단적인 힘에 대한 근원적 통찰을 얻었다. 만약 사람들이 버스에 오르는 데 발을 사용했다면 힘은 버스회사가 쥐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버스에 타지 않고 직장까지 걸어가는 데 발을 사용했기 때문에 자신들이 힘을 쥘 수 있었다. (299쪽)
 이렇게 대중이 합쳐서 무언가를 이뤄낸 모습이 정말 멋있다. 우리나라 촛불 시위도 생각나고. 근데 결정은 결국 대중이 하지만 그 기반에 수많은 검은 손들이 원하는 방향대로 대중을 이끌고 대부분 상황에서 거기에 이끌려간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암스트롱은 우리가 늘 이렇게 자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는 변화를 이루고 싶은 것인가? 아니면 그저 열을 내고 싶은 것인가?"(316쪽)
 맞아. 행동은 목적을 위한 수단이지 그 행동 자체가 목적이 되는 순간 일이 어그러진다. 내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항상 생각하는 자세가 중요한 것 같다.


기후변화의 가장 큰 비극은 가장 큰 피해를 입을 사람들이 문제를 일으킨 주범이 아니라는 점이다. (353쪽)
 피해자 따로 가해자 따로. 가해자들이 경제 발전이란 명목하에 끌어 쓴 자원의 대가를 피해자들이 치루고 있다. 자신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오는 게 아니라 모른 척 하나보다.


하늘의 부름을 받는 것과 같은 이런 열정은 어쩌면 우리가 더 큰 현실과 연결되어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의식할 때, 서양의 머리와 동양의 가슴을 연결할 때 나타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357쪽)
 서양의 머리와 동양의 가슴을 합치는 게 아니라 모두 머리로 이해하고 가슴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굳이 왜 동서양을 나누는지 이해할 수 없다.


감상
1부-2장: 진실, 힘을 잃다
진실이 힘을 잃는다는 게 신기했다. a에 대한 다양한 주장이 나오려면 그 전제는 a가 확정되지 않아야 하는 것인데, 왜 나는 항상 확정된 a를 가지고 담론을 하려고 했을까. 그러니까 담론이 아닌 논쟁밖에 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다름을 인정하는 건 정말 중요한 가치관이다.

1부: 오염된 광장
오염된 광장의 현실과 그 원인이 적나라해서 앞으로가 무서워질 지경이었다. 특히 가스라이팅에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상대가 말을 하는 목적을 생각하는 습관을 지녀야겠다. 세상이 생각보다 더 엉망진창이라 굴러가는 게 신기할 지경이었다.

2부: 진실을 말하되 벌하려고 말하지 말라
오염된 광장을 정화하기 위해 중요한 건 '경청하는 자세'라고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상대가 아무리 나와 의견이 다르다고 해도 일단 경청한 뒤 그다음 대화를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했다. 나와 다른 의견이 있더라도 일단 경청한 뒤 조그만 공통점에서부터 대화를 다시 시작해 공통분모를 넓혀가는 방식으로 대화를 해야 광장이 다시 정화될 수 있을 것 같다.

1부에서는 오염된 광장의 현실과 원인을 다루고 2부에서는 해결책을 다뤘는데, 사이다처럼 뻥 뚫리는 해결책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착잡한 1부보다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었고 희망도 아주 쪼끔 보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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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어디에나 있어
잰디 넬슨 지음, 이민희 옮김 / 밝은세상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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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은 어디에나 있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책장을 다 덮고 이해했다. 애도의 방식은 누구나 다르지만, 마음 한편에 그 사람을 품고 있는 건 똑같다. 그래서 하늘은 어디에나 있다. 내가 있는 곳엔 하늘이 있으니까.


몸 속에 피가 아니라 빛이 흐르는 낯선 인종 (97쪽)

존에게 반한 레니가 너무 귀엽고 작가의 표현방식이 신박하다.


"도망치는 거야?"

"아니다, 얘야. 결코 도망이 아니야. 그건 알아두렴."

할머니가 내 손을 꽉 쥐었다.

"그저 앞만 보고 달리는 거지."(115쪽)

이 문장을 읽고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나도 모르게 레니 엄마가 무책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의식중 편견이 참 싫다.



생각하는 게 참 예쁘다. 우리가 상상하는 여정을 엄마 앞에 펼쳐낸다는 표현이 아름답다.


"그래, 레니. 너는 이 집에서 베일리를 잃은 사람이 너 혼자인 것처럼 굴지. 베일리는 내 딸이나 다름없었다. (중략)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 단 한 번도 묻지 않았지. 너는 대화가 필요한 사람이 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해봤니?"(341쪽)

사람은 누구나 상처를 받는데, 엄마나 할머니 같은 보호자들은 왜 상처를 안 받는 것 같을까. 그들도 내가 아픈 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고통스러울 수도 있는데 꼭 무슨 일을 겪어도 괜찮을 것처럼 강해 보인다.



감상

 본인이 어른스럽다고 생각하고 행동하지만, 남들 눈에는 그저 사춘기 소녀로 보이는 레니의 심리묘사가 잘 돼 있었다. 작가의 문체가 레니의 몽글몽글하면서도 혼란스러운 그런 묘한 마음을 더 돋보이게 했다. 단어들의 조합이 신선했고 거기서 오는 느낌도 좋았다.

 레니가 혼란스럽고 인생의 갈피를 못 잡는 모습을 보며 사춘기 시절 혼란스러웠던 내 감정들이 상기되었다. 그땐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살았는데 지금은 생각조차 나지 않을 만큼 희미해졌다는 점에서 시간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은 사람을 떠나보내고 힘든 건 그 사람이 내 일상 속에서 수도 없이 죽어가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반복될지 모를 이 고통이 시간과 함께 무뎌지길 바라는 끝없는 순간들이 사람을 지치게 한다. 그래도 어느 순간 무뎌진다는 걸 지금 힘든 사람들이 꼭 알았으면 좋겠다. 무뎌진다는 건 잊는 게 아니라, 어... 뭐라고 말로 표현해야 할 지 모르겠다. 하지만 잊는 게 아니라는 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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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화가들 - 살면서 한 번은 꼭 들어야 할 아주 특별한 미술 수업
정우철 지음 / 나무의철학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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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은 건 거의 처음인데, 작가가 왜 유명한 도슨트인지 알겠다. 설명이 이해가 잘되고 무엇보다 재밌다. '그림 속에 화가의 인생이 담겨있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계기

 음악이나 미술이 있어 보여서 감상하고 싶은데, 막상 감상하려면 아는 게 없어서 뭐가 뭔지 모르겠고 공부를 하자니 그건 그거대로 또 골치다. 작가의 인생화가 11명의 이야기로 미술이랑 가까워져서 그림에서 무언가를 느끼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독서iNG

*앙리 마티스 - 색채의 혁명가, 야수파의 창시자

 그림이 얼마나 좋으면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와중에도 붓을 놓지 못하고 심지어는 다른 대안인 가위까지 들며 작품을 완성하는 걸까.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라 그런가? 무언가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쏟아붓는 모습이 멋있다.


*알폰스 무하 - 민족을 위해 그림을 그렸던 프라하의 영웅

 멋있다. 돈을 포기하는 게 쉽지 않은데 그걸 포기한 것도 멋있고 자신의 민족성을 나타내기 위해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 실행력도 멋있다.


*프리다 칼로 - 고통으로 그려낸 의지의 얼굴

 육체적 고통이 가실 법하면 정신적 고통이 찾아오고 정신적 고통이 가려 하면 또 육체적 고통이 찾아오는 일이 쳇바퀴 돌듯 인생에서 반복된다. 뼈를 유독 많이 다치고 그게 그림에 나타났는데 보는 내가 아플 정도로 직관적인 그림이다. 저런 상황에서 자신의 꿈을 좇은 정신력이 정말 대단하다.


*톨루즈 로트레크 - 물랭루주의 밤을 사랑한 파리의 작은 거인

 사회로부터 냉대를 받았다는 이유로 범죄를 저지르는 인간들에게 로트레크의 인생을 들려주고 싶다. 내가 그였다면 우울감에 잠식되어 방에 처박혀 안 나왔을 것 같은데, 그는 밖으로 나와 자신과 같이 상처 입은 사람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림을 그렸다. "인간은 추악하지만, 인생은 아름답다." 왜 이런 말을 했는지 알겠다.


*케테 콜비츠 - 자신만의 시선으로 현실과 투쟁을 기록한

 직접 겪지 않은 일에 진심으로 공감한다는 게 무엇인지 알 것 같다. 사실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마음 한 쪽에 여전히 있지만, 콜비츠는 그런 인생을 살았다. 내가 만난 사회문제를 표현한 예술작품 중 가장 직설적인 작품이었다. 그림이 글보다 더 정확한 설명이 가능하다는 걸 알게 해 준 작가다.


감상

 책을 다 읽었는데 딱히 마음에 꽂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화가의 인생과 그림을 같이 보니까 왜 저런 그림이 나왔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근데 대부분 인생의 끝이 너무 비극적이어서 보는 내내 마음이 안 좋았고 나치 정권이 그 원인인 경우가 태반이라 화가 났다.

 내 눈에는 그림 속 인물의 표정이 우울해 보였는데, 그걸 행복한 표정이라고 해석을 한 부분이 여럿 있어서 지금 내가 우울한 상탠가 싶었다. 그림은 감상하기 나름이라는 말이 와닿았다. 앞으로 그림을 볼 때 남들 눈에 행복으로 보이는 게 내 눈에도 행복으로 보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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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과 파국 - 나는 환경책을 읽었다
최성각 지음 / 동녘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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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경문제와 관련된 누군가의 주관적인 생각을 책 한 권으로 만나는 건 처음이다. 인간의 생각이 주관적이긴 하지만 매체를 통해 가공되면 어느 정도 다듬어지기 마련인데, 그런데도 저자의 강력한 주관을 책에서 마주할 수 있었다. 지구와 다른 생물에게 우리는 가해자이며 방관자다.


요컨대 저항도 못 하는 지금 북녘의 동포들이 불쌍하긴 하지만, '김씨 왕조 체제'를 붕괴시키고 북의 붕괴를 재촉하기 위해 그들이 설사 굶어 죽더라도 쌀을 주어서는 안 되며 그것이 곧 손자들 세대를 살리는 길이라는 이야기였다. (p. 30)

 히로시마 원자폭탄 얘기를 들을 때는 몰랐는데, 북한 얘기가 나오니까 생각이 달라진다. 두 사람의 생각에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기부했을 때 지배층의 배를 불려준다는 사실은 동의한다. 그렇다고 아무 죄 없는 국민들이 굶어 죽는 건 너무 잔인하다. 생각할수록 어렵다. 생필품으로 기부를 하는 게 그나마 답일듯하다. 그마저도 팔아버린다면 노답이겠지만.



멀쩡하게 자족적으로 지구에 큰 해를 끼치지 않고 잘살고 있는 나라들을 '개발이 안 된 미개한 나라', '개발도상국', '선진국'으로 제멋대로 구분한 뒤에 이 세상의 모든 나라를 '개발된 선진국'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서구의 발전 신화가 어떤 치명적인 허구를 안고 있는지 이 작은 책보다 더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책은 많지 않다.  (p. 48)

 개도국이란 단어가 갑자기 낯설다. 개발 대상의 기준은 무엇이고 어느 정도가 되면 그만 개발해도 되는 걸까. 아니 이미 시작한 개발을 멈출 수 있긴 할까. 부에서 빈으로 가기 어렵다는 말을 격하게 공감한다. <경제성장이 안된다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를 읽어보고 싶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개도국 입장에서 본다면 경제 성장을 이룬 대부분의 국가는 환경 측면에서 개발이 필요한 개도국일 것이다.



그레타는 1인 시위를 통해서 어른들이 미래세대인 청소년들의 허락도 없이 지구 자원(화석연료)을 앞당겨 사용하고, 여기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들이 오래도록 살아갈 수 없도록 지구 기후를 엉망진창으로 만든 책임을 묻는 일부터 했다. (p. 54)

 그레타 툰베리 너무 멋있다.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기도 쉽지 않지만, 자신의 일상까지 바꿔가면서 옮기는 건 더더욱 어려운데 그걸 해냈다. 용기를 정말 본받고 싶고 그가 쓴 책이 궁금해서 꼭 읽어봐야겠다.



나는 그저 다른 생명체를 취해야만 존속이 가능한 생명의 생래적 속성을 겸손하게 받아들이면서 고기든 풀이든, 그것을 취할 때 감사하는 마음으로 정중하게 취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부류의 인간일 뿐이다. (p. 95~96)

 육식도 혼란스럽고 채식마저도 혼란스럽지만 그렇다고 굶어 죽을 순 없어서 그냥 있는 대로 먹고살자고 포기했는데, 이렇게 생각해야겠다. 스스로 영양분을 못 만드는 종이기에 다른 생명체를 통해 영양분을 섭취하는 건 필연적이지만, 최소한의 예의는 갖출 수 있도록 해야겠다. 유기농 채소, 동물 복지 계란을 사는 작은 변화부터 시작해야겠다.


사람들은 개구리가 사라지고 박쥐가 사라지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 학자들도 달려들지 않는다. 그것들은 인간에게 꿀을 제공하거나 작물의 가루받이를 수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p. 124)
 벌이 사라진다는 다큐멘터리는 본 적이 있는데 개구리, 박쥐가 사라진다는 건 이 책에서 처음 봤다. 인간은 이토록 이기적인 존재구나.


만약 문학이라는 세계를 몰랐더라면 내가 느끼고, 알고 있다고 믿는 세계가 얼마나 빈약하고 우스꽝스럽고 한심스러웠을까? (p. 155)
 문학을 통해 사고가 확장된다는 말 공감한다.


그는 온갖 편법으로 예산을 증액함으로써 그 돈의 용처가 화급한 부문들은 깡그리 외면했으며, 애당초 제대로 준비되지 않는 서류조차 끝없이 조작했고, 공사와 설계가 같이 진행되는 기상천외의 어불성설을 감행하고 있으며, 자연을 대하는 최소한의 사회적 양식이 담긴 모든 법률들을 헌 신발짝처럼 깡그리 묵살하고 위반했다. (p. 189)
 막장인 줄 알고는 있었는데 이 정도로 자기 멋대로인지는 몰랐다. 왜 그렇게 강을 꼭 개판 내야 했을까. 이 정도면 그 광기의 원인이 궁금해질 지경이다.


독일인들은 아마존의 인디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 밑에서 발전된 무기로 무장한 그들이 선사시대의 동기에 자극받은 것처럼 동유럽에서 전쟁을 일으켰다. (욕망과 파국 226, 니얼 퍼거슨 <증오의 세기> 840쪽 인용)
 미친 거 아닌가? 비교할 걸 비교해야지. 아마존 원주민들이 나치 군부가 행한 패륜적 비교 대상에 왜 올라야 하는가? 니얼 퍼거슨(인용한 책의 작가)의 백인 우월주의가 역겹다.


이 책은 우르카리아 출신 기자 알렉시예비치가 1986년 체르노빌 사고 발생 이후 자그마치 10년에 걸쳐 10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은 생생한 증언집이다. (p. 229)
 이 책 꼭 읽어보고 싶다. 10년의 시간, 그 시계가 이미 우리나라에도 작동하기 시작했다. 아직은 초반이라 별 탈 없지만, 곧 저 책에 쓰인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일본에서는 이미 일어난 것처럼. 재난은 국경을 피해가지 않는다.


이제는 '과학 만능의 시대'를 향해 질주하는 인간종의 맹렬한 노력들이 인간 스스로에게나 이 행성의 다른 생명공동체들에 얼마나 심대한 해악을 끼쳤는가. (p. 256)
 문제 해결할 때,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생각해야 한다. 이런 사고방식에 익숙한 나는 한 번도 내가 과학만능주의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중세시대 모든 것이 신의 뜻이라는 사상이 지금은 낯선 것처럼 시간이 한참 흐른 뒤 과학만능주의도 어느 세대에서는 낯설게 느껴질까?


감상
-1부: 기후 행동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기후 변화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게 비교적 천천히 진행되는 편이다. 지구 온도가 올라가 빙하가 녹는 모습, 해수면이 상승하는 것을 주변에서 볼 일이 거의 없고 늘어난 자연재해는 기후 변화가 원인이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이 모든 건 몇십 년 전부터 계속 얘기되어오던 것들이라 심각한 건지 잘 와닿지도 않는다. 이게 문제다. 심각한 문제가 안 심각하게 보이는 게 문젠데,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게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2부: 사라지는 것들의 끝없는 목록
 수많은 것들이 사라지는데, 대부분에는 관심이 없고 인간의 이익과 직결되는 벌에만 관심 있다는 부분이 제일 충격이었다. 인간이 동물을 막 대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정리된 글로 읽으니 더 불편했다. 나는 이 책을 덮고 며칠 뒤 또 아무렇지 않게 고기를 먹겠지.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다.

-3부: 조종은 언제 울려야 하는가
 결국 피해는 인간이 입는다. 경제적 능력에 따라 시간의 차이 날 확률은 있겠지만 누구나 다칠 수 있고 언제나 다칠 수 있다. 이런 경각심 없는 상태가 지속한다면 머지않아 인류는 조종을 울릴 것이다.

-5부: 꿈꾸는 것 자체가 여전히 희망이다
 그 어느 장보다 가혹한 현실이 눈앞에 펼쳐졌다. 아무래도 인간들의 이야기라 더 와닿고 공감됐다. 이 장의 소제목이 왜 '꿈꾸는 것 자체가 여전히 희망이다'일까 책을 덮고 한참을 생각했는데, 작가는 '이게 현실이야. 그래도 꿈꿀래? 근데 꿈꾸면 뭔가 조금은 달라질걸'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추측해본다.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건 고기 먹는 횟수 줄이기다. 환경 관련 책을 읽으며 소고기는 되도록 먹지 않고 고기 먹는 횟수도 예전보다 줄었지만, 이제 일주일에 한 번만 고기를 먹도록 해야겠다.
 환경문제가 피부로 와닿게 직관적으로 보이면 참 좋겠는데 그렇지않아서 슬프다. 녹는 빙하는 눈에 안 보이고 늘어나는 자연재해는 다른 원인을 핑계로 환경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일 건데 더 많은 사람이 현실을 알고 조금씩 바뀌면 파국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 책을 읽고나서 읽고 싶은 책이 참 많아졌다.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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