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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구들 - 여성은 왜 원하는가
캐럴라인 냅 지음, 정지인 옮김 / 북하우스 / 2021년 5월
평점 :
여성의 허기는 자기 부정에서 비롯된 자기혐오에서 출발해 결국은 자기파멸에 이른다. 다양한 자기부정의 원인과 다채로운 자기파멸의 방법이 책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내가 살아온 인생에 내 의지는 얼마나 반영되었는지 고민해볼 수 있는 책이었다.
이름 붙이지 못한 허기는 무시무시한 허기가 되고 자기 불신의 근원이 된다. (91쪽)
작가가 느끼는 허기를 뭐라고 명명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는데, 작가 역시 '이름 붙이지 못한 허기'로 수식했다. 이름이 없는 건 대개 인정받지 못한다. 내가 뭘 원하는지 조차 알 수 없는 작가의 혼란스러움을 나도 느껴본 적 있어서 자기 불신의 근원이 된다는 말이 공감 갔다.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당신의 아이를 더 이상 돌볼 수 없다고 말할 수 있게 되기까지 어머니는 있는 용기를 모두 끌어 모아야 했다. (123쪽)
내 자식도 키우기 버거운데, 남의 자식을 원치 않는 사람에게 무책임하게 떠넘기는 아빠라는 작자에 치가 떨린다. 이게 사회가 만든 틀이다. 어머니는 이 말을 하고 수 없는 죄책감에 시달렸을 것이고 자신의 성격, 가치관을 의심했을 것이다.
진정한 열정과 독립적인 욕망을 지닌 여자, '먹이다'라는 말의 모든 의미에서 자신의 가족에게 먹이는 것만큼 자신에게도 충실하고 한결같이 먹이는 여자는 거기 없다. (136쪽)
내가 나를 우선시 하는 게 당연한 건데, 그 당연한 일을 하면 죄짓는 것 같고 주변에서도 이기적이라는 눈길을 보낸다. 그러면 내 가치관이 또 흔들린다. 나는 정말 이기적인 사람일까?
현대적 의미에서 섹시해 보이는 것-노출되고, 순종적이며, 공격에 취약하며, 심지어 폭행당한-은 무기력함과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며, 이것은 대체로 욕구를 자극하기 보다 잠재운다. (182쪽)
이딴 왜곡된 성인식을 심어주는 것들을 그만 생산했으면 좋겠다. 가만히 있던 여성들이 너무 많은 피해를 본다.
각자 정반대의 위치에서 바라보았지만 레슬리와 내가 둘 다 똑같이 이해하게 된 사실은, 자기의 가치를 외모와 결부시키는 일은 매일 한순간도 빠짐없이 경계하고 조심해야만 하는 외줄 타기 같은 일이라는 것이다. (231쪽)
말라도 문제, 뚱뚱해도 문제... 외모와 자신의 가치를 결부시키는 게 쉽지 않다. 뚱뚱하면 내가 가치 없는 사람이 된 것 같고 살이 빠지면 왠지 모를 자신감이 생긴다. 나도 이런 구역질 나는 생각을 하는 내가 싫어서 그냥 있는 그대로 나 자신을 받아들이려고 노력 중이다.
강박적 도둑질, 자해, 폭식증은 서로 무관하고 전혀 별개인 것처럼 보이는 행동들이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상징들에 깊이 의존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332쪽)
말을 할 줄 모르는 건지 알면서 안 하는 건지 한참 생각해봤는데, 할 줄 모르는 것 같다. 한 번도 누군가 표현하는 걸 본 적이 없고 애초에 내가 뭘 표현하고 싶은지 조차 모르니까 그게 행동으로 나타나는 듯하다.
자해하는 이는 세상이 아니라 자기 살갗을 향해 칼을 휘두른다. (344쪽)
내가 원인이 아닌 일로 화가 났는데, 그 분풀이 대상이 자신이 되는 건 너무 슬프고 아픈 일이다.
감상
1장: 케이크 더하기, 자존감 빼기
표현은 다른데 내용은 같다. 알게 모르게 여성의 욕구를 억압하는 사회에서 그 모습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게 체중이다. 나도 이것저것 안 해본 다이어트가 없는 사람으로서 읽으면서 나도 어쩔 수 없는 문화의 노예구나 싶었다. 속이 답답했다. 내가 체중 뒤에 숨어서까지 숨기고 싶은 욕구는 뭐고 왜 그렇게 필사적으로 숨기려고 할까 고민해봤는데, 사실 잘 모르겠다. 더 고민해봐야 할 부분이다.
3장: 내 배가 싫어, 내 허벅지가 싫어
자기 몸을 끊임없이 부정하는 모습이 나왔는데 내 주변에서 본 익숙한 장면들이라 읽으면서 참 씁쓸했다. 가정, 학교에서 시작된 외모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 사회로 나가면서 더 견고해진다.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걸까.
나는 무엇에 허기를 느끼는지 고민했는데, 역시 대답하기 어려웠고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불가능했다. 내가 그간 무의식중 한 행동들이 무언가에 허기를 느껴서 한 행동들이었다면 나는 이제 그것들을 채워줘야 하는데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고 받아들이기'였다. 내 모습 자체를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그걸 받아들일 마음을 가지는 내가 됐으면 한다.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