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귀신이 되다
전혜진 지음 / 현암사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회의 틀에 갇혀서 하고 싶은 말 한마디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어이없게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빼곡한 책이다. 이런 여자들의 죽음은 사대부의 출세를 위한 발판으로 주로 쓰였다. 이들을 진정 위로한 것은 '여성' 무당들이었다.

 이렇게 많은 고전 이야기를 처음 접해봤는데, 읽는 동안 너무 재밌었고 작가님이 이야기를 엮고 설명하는 능력이 탁월하신 듯하다. 이야기 속에서 당대 사람들의 인생을 읽어내는 안목이 길러진 것 같다.


계기

 제목을 보자마자 한 서린 과거 여자들의 얘기가 상상돼 나도 모르게 울화통이 치밀었다. 입이 있고 목소리가 나오는데,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며 사는 인생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생각만 해도 끔찍했고, 죽은 뒤에야 겨우 입을 열 수 있었던 그들의 이야기를 외면할 수 없었다.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는다는 권선징악적 결말이긴 하겠으나, 읽고 있으면 억울하게 죽은 여성도 남성의 출세를 위한 발판일 뿐인지 묻고 싶은 삐딱한 마음이 비죽 고개를 든다. (35쪽)

여기 삐딱한 마음 추가요^^ 언어는 권력이다. 한 서린 여성의 이야기조차 사대부의 능력을 증명하는 도구로 전락했고, 아무도 그것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은 건 권력자가 정립한 언어가 우리 일상에 깊게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자신의 처지를 슬퍼하다가 조용히 사라지는 모습은 가해자나 그에 동조하는 자들이 바라는 '피해자다운 피해자'의 모습에 가깝다.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권력자에 저항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를, 당대의 사대부들은 자신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피해자의 모습으로 멋대로 전유해 버린 것은 아닐까. (88쪽)

'피해자다움'이라는 폭력적인 단어가 조선 시대부터 있었고 지금까지 큰 의미 변화 없이 존재한다는 게 화난다. 성추행을 당하고 법정에서 '기분이 더러웠어요'라고 진술한 피해자에게 피해자답지 못한 언행이라고 말한 재판부가 생각난다.



이들(신분이 낮은 통인, 후처)은 사대부가 진상을 밝히고 처벌해 원한을 풀어줄 수 있는, 만만한 가해자들이다. 하지만 권력자가 연인들의 사이를 갈라놓거나 농락한 경우, 피해자의 원혼은 아예 원님 앞에 나타나지 못한다. (94쪽)

생각해보니까 계급 높은 사람이 처벌받는 이야기는 거의 못 본 것 같다. 만만한 가해자라는 표현이 아이러니한데 찰떡이다. 누구 손에 죽는지에 따라 죽어서도 억울할 수가 있다니... 권력, 계급이 도대체 뭔지 많은 의문을 남긴 대목이었다.



어쩌면 남성 사대부들은 이와 같은 이류의 이야기나 승화형 상사뱀의 이야기에서 자신에게 편리한 여성들을 제멋대로 상상해 그려낸 것인지도 모른다. 손쉽게 몸을 허락하면서도 지고지순한, 그러면서도 자신을 출세시켜주거나 보물을 안겨 주거나 신적 존재가 되어 내조하면서도 번거롭지 않게 알아서 사라져 주는 여성들 말이다. (141쪽)

준 것도 없는 주제에 바라는 건 개많네... 문화에는 그 시대 사람들의 욕구가 반영된다는 말이 제일 와닿는 대목이었다. 사대부의, 사대부에 의한, 사대부를 위한 설화를 읽을 때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관점이라 왜 그동안 이런 생각을 못 했지 싶을정도로 이상했다. 이 시대 문헌들은 철저히 사대부 관점에서 쓰였기 때문에 접할 때, 그 점에 유의해서 접한다면 보지 못했던 것들을 더 많이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와 비슷한 '신부형' 설화들에서 버림받은 신부들은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신랑의 신행길에 비를 뿌리거나 크고 작은 재해를 내리지만, 자신을 배반한 신랑을 죽이지는 않는다. (143쪽)

죽인 이야기가 있었어도 각색되지 않았을까 싶다. 감히 고귀하신 사대부 남성을 죽인 여자는 존재해서는 안 될 것이니까.



감상

 고전 소설이 이렇게 재미있을 줄 몰랐다! 고등학교 때, 문제집과 시험지에서 만나고 생긴 고전 소설, 이야기에 대한 편견을 단번에 부숴준 책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촘촘히 짜인 책이 이 정도로 재밌다면 작가의 상상력이 보태어진 #월하의동사무소 가 재밌을 거란 건 당연한 거 아닐까. 이 책을 꼭 읽어보고 싶어졌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숨이 턱턱 막히는 답답한 이야기들로 책이 채워져 있었다. 더 화가 나는 건 당시에 있던 썩은 사상이 아직도 우리 생활에 일부 남아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사회는 바뀌는 듯 바뀌지 않는 듯 결국 바뀌긴 하는데, 여성 인권 관련 부분은 속이 터지도록 더디게 바뀐다. 차별이 가득 담긴 조선 시대 사상이 아직도 남아있는 거면 말 다 한 거 아닌가?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좋을 대로 하라 : 단 하나의 일의 원칙 1 단 하나의 일의 원칙 1
구스노키 켄 지음, 노경아 옮김 / 미래지향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민자가 올린 사연을 바탕으로 작가가 한 답변을 모아 둔 책이다. 다 달라 보이는 고민이지만 답변은 일맥상통한다. '좋을 대로 하라.' 언뜻 보기에 무책임해 보이는 답이지만, 인생은 그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보다 더 명쾌한 답변은 없을 것이다. 네 마~음대로 하세요! 그래도 괜찮은 게 인생입니다.


'먹고 살기 위해 외자계 보험회사에 입사했다'라고 하셨는데, 솔직히 말해 너무 많이 먹는 것 아닙니까? 그렇게 많이 먹지 않아도 살 수 있습니다. (56쪽)

웃곀ㅋㅋㅋㅋㅋ작가님너무 솔직하시다. 먹고살려고 그랬다는 궁핍한 변명 뒤에 숨어 불법을 저지르는 사람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다.



어차피 사전에 완벽히 알 수 없다면 구체적인 조언에 집착하기보다 커리어 콘셉트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70쪽)

커리어 콘셉트란 개념을 처음 접하는데, 인생에 잘 적용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아직 잘 와닿진 않는데 작가가 추천한 방식(구체와 추상을 왕복하기)을 활용해 내 커리어 콘셉트를 꼭 만들어가고 싶다.



그러므로 거듭되는 '좋을 대로 하라'는 말은 사실 '싫어하는 일을 하지 말라'는 말과 같은 의미입니다. (75쪽)

맞아.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는 잘 모르겠는데 싫어하는 건 바로 말할 수 있다.



당신처럼 쉬운 길을 찾는 젊은이가 많습니다. 대머리 아저씨가 잔소리를 늘어놓아 미안하지만 솔직히 말해 당신은 '게으름뱅이'입니다. 당연히 경영뿐만 아니라 어떤 분야에도 '최적의 커리어' 따위는 없습니다. (131쪽)

찔림... 최단 노력으로 최대 결과를 뽑고 싶은데, 머리로는 안되는 걸 알아도 행동은 여전히 그렇게 하고 있다. 고쳐야 할 잘못된 생각이다.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자신 이외의 누군가를 위해 하는 행동이 '일'입니다. 자신을 바라보고 자신을 위해 하는 행동은 '취미'입니다. 취미는 집에서 즐겨야 합니다. 일을 한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을 바라보니 이런 무의미한 고민에 빠지는 것입니다. (156쪽)

일을 하면서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게 왜 문제인지 이해가 안됐는데 이 문장을 읽고 이해했다. 일은 일의 수혜자를 바라보며 행하는 행위다. 나 좋자고 하는 건 취미다. 취미는 일이 될 수 없다는 말을 꼭 기억해야겠다.



물론 남녀 사이에 신체적, 심리적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일을 하는 데에는 아무런 본질적 차이가 없습니다. (중략) 그러니 당신도 회사의 여성 인력 활용 정책에 너무 동조하기보다 남녀를 불문하고 매력적인 롤 모델을 찾기 바랍니다. (222쪽)

일하는 능력이 문제가 아니라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에서 나타나는 차이가 문제다. 임신은 오롯이 여자의 몫이며 육아와 가사도 거의 여자가 담당한다. 물론 요즘은 바뀌는 추세긴 하지만 그래도 윗사람들은 여전히 예전의 사고방식으로 일하는 여성을 바라본다. 그래서 질문자는 자신과 비교적 동일한 환경에 처했지만 잘 극복해나간 롤모델을 찾고 싶은 마음에 여자 선배 중 롤모델을 찾고 싶었다고 생각한다. 객관적인 업무능력이 아니라 환경에서 나타나는 주관적인 업무능력이 질문자가 원하는 롤모델 기준이 아니었을까 싶다.


인간은 모르는 것에 직면했을 때 환경 결정론적 사고를 통해 자신에게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그래서 경험이 부족한 사람일수록 환경 결정론에 휘둘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젊을수록 환경 결정론에 빠지기 쉽다는 말입니다. (250쪽)
환경이 주는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나는 너무 환경만 생각하는 게 아닌가란 성찰을 할 수 있는 상담 내용이었다.


감상
좋을 대로 하라는 저자의 뜻은 '네 마음이 끌리는 그곳에 답이 있으니 둘 중 더 마음이 가는 곳을 선택하라'는 뜻이었다. 특히 젊은 사람들일수록 사회의 경험이 많지 않아 무엇을 고르든 부족한 사전정보 때문에 안 가본 길에 미련이 남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선택을 했다면 눈앞에 놓인 일에 집중하고 거기서 최선의 결과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저자의 솔직한 입담에 책을 읽으며 중간중간 많이 웃었다. 팩폭인 조언에 순살이 될 때도 있었고 지금 내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듯한 조언에 감동도 받았다. 내가 사는 현재도 결국 내가 선택한 최선의 길이니, 눈앞에 있는 일부터 하나하나 차근차근해야겠다. 그러다 갈림길을 만나면 나 좋을 대로 선택해야지!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냄새의 심리학 - 냄새는 어떻게 인간 행동을 지배하는가
베티나 파우제 지음, 이은미 옮김 / 북라이프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지만 그 어느 기관보다 우리 인생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코'. 관련 연구가 많지 않은 미지의 세계를 수십 년간 연구해온 저자의 노력이 책에 담겨있다. 이유 없이 느꼈던 감정이 코 때문이었을까…? 란 의문을 남긴 책이다.



전적으로 후각에 의존하는 동물들과 달리 인간은 시각과 청각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중략) 하지만 의식적으로만 그렇다. 처음 가 본 곳인데 들어서자마자 욕을 하지는 않는다. 우선 주변을 한번 훅 훑어본다. 하지만 코는 솔직하다. 불편한 냄새가 나면 되돌아가라고 말한다. (53쪽)

 후각이 비이성적(짐승에 가까운)이라 후각으로 느꼈음에도 이성적 근거를 찾는 모습이 되게 이질감 들었다. 나도 어떤 공간이 이유 없이 싫었던 적이 있는데, 내 코가 뭘 감지해서 그랬던 걸까.



20세기 초반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여성의 뇌가 남성의 것보다 작으니 여자가 대학에서 공부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했다. 요즘에도 뇌의 영역별 크기에 따라 중요도가 달라진다고 주장하는 연구자들이 있다. 질과 양의 개념을 잠시 혼동한 걸까? 참 어이없는 발상이지 않을 수 없다. (77쪽)

 차지하는 자리가 크면 중요한 거 아니가, 란 생각을 나도 무의식중에 했는데 질과 양을 혼동하지 않게 항상 주의해야겠다.



그런데 성당에서 부엌 냄새가 나고 부엌에서 병원 냄새가 난다면? 아뿔싸! 이때는 종소리가 아닌 경고음이 울린다. (181쪽)

 근데 이건 후각뿐만 아니라 다른 감각도 마찬가지 아닌가? 시각, 청각, 촉각, 미각 전부 무의식중 기대했던 것과 다르면 우리는 신경을 곤두세운다.



관련 증거를 요약해 보자면 생존에 필수적인 냄새는 꼭 학습할 필요가 없다. 추측건대 우리 코에는 특성화된 수용체, 즉 TAARs가 있고 후각뇌에는 특정 세포군이 있어 태어날 때부터 우리에게 무엇이 위험한지를 이미 알고 있다. (193쪽)

 신기하다. 이런 냄새를 맡을 수 없는 사람은 살아남지 못했을 거니까 지금은 진화의 결과 모든 생물이 감지할 수 있게 된 건가?



우리 인간이 우수하게 진화할 수 있었던 이유는 망치로 못을 박을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간단한 도구는 동물도 사용할 줄 안다. 인간이 월등하게 진화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사회적으로 아주 똑똑하고 융통성 있기 때문이다. (269쪽)

 공감 능력이 지능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을 믿었지만, 근거는 딱히 못 찾았었는데 이제 찾았다. 각 사람, 상황에 맞는 적절한 반응을 내놓는 건 지능이 높아야 할 수 있는 일이다.



코가 싫어하는 사람은 좋아할 수 없다. 이 모든 게 후각 세포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러한 상황을 때로는 좀 더 가볍게 넘길 수도 있다. 더는 이유를 찾지 않아도 된다. 생물학적으로 자연스러운 일이니 더는 신경 쓰지 않아도 마음이 편해진다. (288쪽)

 이유 없이 싫은 사람이 있는데, 그게 사실은 코 때문이었을까? 잘 믿기진 않는데 신기한 발상이다.


감상

 코와 관련해서 이렇게 자세하게 다룬 책이 있을 거라고 상상도 못 해서 읽는 내내 신기했다. 코가 생각보다 더 내 인생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단 사실을 여러 근거를 들어가며 저자가 열심히 설명해주는데... 인간이 쉽게 바뀌지 않듯 아직은 잘 믿기지 않는다. 이런 연구가 좀 더 대중화되고 관련된 내용을 여러 번 접하다 보면 언젠가 받아들이게 될지도 모르겠다.

 가끔 이유 없는 감정에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는데, 그게 코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아서 빨리 더 많은 관련 연구가 나오길 기대하는 중이다.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K-컬처 in 쿠바 - 쿠바에서 한류를 찾다
홍지영 지음 / 글로벌콘텐츠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쿠바와 한류. 낯설어 보이는 이 조합을 발견한 작가는 본인이 쿠바에서 겪은 일을 글과 사진으로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한류가 유행이라는 말만 들었지 실제로 어떤지는 처음 봤는데, 상상 이상으로 잘 퍼지고 있었다. 정말 한국문화 르네상스가 올지도 모르겠다.



다시 정리하자면, 쿠바에서는 학교를 졸업하며 대부분이 직업적성 테스트를 거쳐 직장을 가지게 되며, 한번 직장을 가지면 그 안에서는 경쟁이 없다. (중략) 직무를 대충 수행해도 정해진 임금은 받으며, 일한 결과에 대한 책임은 없다. (67쪽)

 사회주의 직장을 처음 보는데 이러면 이윤이 발생하는지 궁금하다. 다 같이 적당히 아니 적당히도 안 하고 대충해서 망할 것 같은데... 너무 무한경쟁 자본주의에 찌든 사상인가? ㅋㅋㅋㅋ


올해 초 3월, 쿠바는 봉쇄를 하고 자가 격리를 했다. (중략) 그래서 의대생들과 함께 집집마다 방문하여 아픈 환자가 있는지, 혼자 집에서 앓고 있는 환자는 없는지 찾아내는 동시에 마스크 착용법, 손 씻는 법 등의 청결 교육을 겸하였다. (79쪽)

 의사가 환자의 집을 찾아간다는 게 신기하다. 심지어 여러 관련 사항을 교육해주는 것도 여기선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2010년 이후 한국 드라마를 쿠바 국영 방송으로 시청하면서도, 한국 것인지 모르고 중국드라마라고 여기며 시청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172쪽)

 이게 뭐니 도대체. 좋은 걸 실컷 고생해서 만들었는데 그 공은 정작 이상한 데로 가버린다.


"(가수들의 잇따른 자살을 보면) 솔직히 한국은 심각한 문제가 있는 나라다. 내 친구들이 한국 아티스트들을 팔로우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내 친구들의 심리적 안정을 걱정하고 있다."

 -K-POP으로 인해 한국에 대한 인식과 생각이 바뀌었는가? 에 대한 답변 중 일부- (181쪽)

 팔로우하는 것까지 걱정하는 건 너무 오바하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생각을 곱씹을수록 내가 사회에 너무 찌든 것 같았다. 너무 오래 잘못된 환경에 노출돼서 뭐가 잘못된 지도 모르는 그런 상황...? 사실 지금도 뭐가 문제인지 정확히 잘 모르겠어서 혼란스럽고 답답하다. 하나를 고친다고 고쳐질 게 아니라, 하나를 고치자고 달려들면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다 딸려 나올 것 같다. 솔직히 무섭다.


"사람답게 살려면 좋은 직장과 엄청난 공부가 필요한 나라이다." 

-한국 사회의 현실이 K-DRAMA에 반영되었다고 생각하나? 에 대한 답변 중 일부- (191쪽)

 드라마는 많이 미화된 편이고 현실이 더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드라마에서 이 정도를 느끼는 거면 우리 사회가 참 팍팍하긴 하구나.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되지.'라고 쉽게 생각하면 안 된다. 여행객들도 신용카드 사용을 못 하는 나라인데, 쿠바인들에게 온라인의 결제수단이자 자본주의 시스템의 상징물인 신용카드가 있을 리가 없다. (213쪽)
 아... 인터넷으로 시키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생각이 짧았다.


감상
 한국에 관심 있는 많은 사람이 처음에 일본 문화를 좋아하다 한국 문화로 넘어왔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한류가 퍼지면서 자연스럽게 좋아한 줄 알았는데, 그 전부터 이미 일본 문화는 퍼져있었다. 우리나라도 한류를 알리는데 더 많은 돈과 시간을 들였으면 좋겠다.

 서로 돕는 정 문화와 어른을 공경하는 문화를 다들 본받고 싶다고 해서 스스로 되게 부끄러웠다. 정문화도 공경도 딱히 크게 실천을 안 한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일상에 스며들어서 잘 모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버스 요금이 없어서 당황하고 있는 사람 대신 요금을 내주거나 길거리에서 폐지 카트를 끌고 가는 어르신들을 가끔 도와드리는데 이런 게 저들이 부러워했던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별것 아닌데 또 다르게 생각해보면 되게 별거다. 우리 문화가 다른 나라 사람의 눈에 비친 모습이 새로웠고 신선한 자극이었다.

 사람들을 인터뷰했을 때 공통으로 아쉬워했던 점이 앨범, 음식이었다. 앨범을 구하기가 어렵고 음식을 해먹을 재료가 없다는 것이었는데, 이런 부분이 빨리 해결되어 한류가 이들 사이에 더 깊이 스며들었으면 한다.

 쿠바에 대해 아는 정보라고는 남미에 있는 나라밖에 없었는데, 공공의료, 사회주의같이 다양한 것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사람 사는 데가 다 비슷하다고 하지만 큰 체제 속에서는 달라질 수밖에 없음을 느낄 수 있었다.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욕구들 - 여성은 왜 원하는가
캐럴라인 냅 지음, 정지인 옮김 / 북하우스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성의 허기는 자기 부정에서 비롯된 자기혐오에서 출발해 결국은 자기파멸에 이른다. 다양한 자기부정의 원인과 다채로운 자기파멸의 방법이 책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내가 살아온 인생에 내 의지는 얼마나 반영되었는지 고민해볼 수 있는 책이었다.


이름 붙이지 못한 허기는 무시무시한 허기가 되고 자기 불신의 근원이 된다. (91쪽)

 작가가 느끼는 허기를 뭐라고 명명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는데, 작가 역시 '이름 붙이지 못한 허기'로 수식했다. 이름이 없는 건 대개 인정받지 못한다. 내가 뭘 원하는지 조차 알 수 없는 작가의 혼란스러움을 나도 느껴본 적 있어서 자기 불신의 근원이 된다는 말이 공감 갔다.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당신의 아이를 더 이상 돌볼 수 없다고 말할 수 있게 되기까지 어머니는 있는 용기를 모두 끌어 모아야 했다. (123쪽)

 내 자식도 키우기 버거운데, 남의 자식을 원치 않는 사람에게 무책임하게 떠넘기는 아빠라는 작자에 치가 떨린다. 이게 사회가 만든 틀이다. 어머니는 이 말을 하고 수 없는 죄책감에 시달렸을 것이고 자신의 성격, 가치관을 의심했을 것이다.


진정한 열정과 독립적인 욕망을 지닌 여자, '먹이다'라는 말의 모든 의미에서 자신의 가족에게 먹이는 것만큼 자신에게도 충실하고 한결같이 먹이는 여자는 거기 없다. (136쪽)

 내가 나를 우선시 하는 게 당연한 건데, 그 당연한 일을 하면 죄짓는 것 같고 주변에서도 이기적이라는 눈길을 보낸다. 그러면 내 가치관이 또 흔들린다. 나는 정말 이기적인 사람일까?


현대적 의미에서 섹시해 보이는 것-노출되고, 순종적이며, 공격에 취약하며, 심지어 폭행당한-은 무기력함과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며, 이것은 대체로 욕구를 자극하기 보다 잠재운다. (182쪽)

 이딴 왜곡된 성인식을 심어주는 것들을 그만 생산했으면 좋겠다. 가만히 있던 여성들이 너무 많은 피해를 본다.


각자 정반대의 위치에서 바라보았지만 레슬리와 내가 둘 다 똑같이 이해하게 된 사실은, 자기의 가치를 외모와 결부시키는 일은 매일 한순간도 빠짐없이 경계하고 조심해야만 하는 외줄 타기 같은 일이라는 것이다. (231쪽)

 말라도 문제, 뚱뚱해도 문제... 외모와 자신의 가치를 결부시키는 게 쉽지 않다. 뚱뚱하면 내가 가치 없는 사람이 된 것 같고 살이 빠지면 왠지 모를 자신감이 생긴다. 나도 이런 구역질 나는 생각을 하는 내가 싫어서 그냥 있는 그대로 나 자신을 받아들이려고 노력 중이다.


강박적 도둑질, 자해, 폭식증은 서로 무관하고 전혀 별개인 것처럼 보이는 행동들이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상징들에 깊이 의존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332쪽) 

 말을 할 줄 모르는 건지 알면서 안 하는 건지 한참 생각해봤는데, 할 줄 모르는 것 같다. 한 번도 누군가 표현하는 걸 본 적이 없고 애초에 내가 뭘 표현하고 싶은지 조차 모르니까 그게 행동으로 나타나는 듯하다.


자해하는 이는 세상이 아니라 자기 살갗을 향해 칼을 휘두른다. (344쪽)

 내가 원인이 아닌 일로 화가 났는데, 그 분풀이 대상이 자신이 되는 건 너무 슬프고 아픈 일이다.



감상

1장: 케이크 더하기, 자존감 빼기

 표현은 다른데 내용은 같다. 알게 모르게 여성의 욕구를 억압하는 사회에서 그 모습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게 체중이다. 나도 이것저것 안 해본 다이어트가 없는 사람으로서 읽으면서 나도 어쩔 수 없는 문화의 노예구나 싶었다. 속이 답답했다. 내가 체중 뒤에 숨어서까지 숨기고 싶은 욕구는 뭐고 왜 그렇게 필사적으로 숨기려고 할까 고민해봤는데, 사실 잘 모르겠다. 더 고민해봐야 할 부분이다.


3장: 내 배가 싫어, 내 허벅지가 싫어

 자기 몸을 끊임없이 부정하는 모습이 나왔는데 내 주변에서 본 익숙한 장면들이라 읽으면서 참 씁쓸했다. 가정, 학교에서 시작된 외모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 사회로 나가면서 더 견고해진다.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걸까.


 나는 무엇에 허기를 느끼는지 고민했는데, 역시 대답하기 어려웠고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불가능했다. 내가 그간 무의식중 한 행동들이 무언가에 허기를 느껴서 한 행동들이었다면 나는 이제 그것들을 채워줘야 하는데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고 받아들이기'였다. 내 모습 자체를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그걸 받아들일 마음을 가지는 내가 됐으면 한다.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