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지옥으로 사뿐사뿐 ㅣ 타이피스트 시인선 12
김하늘 지음 / 타이피스트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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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지옥에 함께 해줄거라는 말부터 다정하지 않은지.
결코 다정하기만 하진 않은 세상에서.

시인의 다른 시집도 읽을 마음을 먹었으나
절판된 3권의 중고가는 최저 45000원이었다. 배송비 별도로.. ㅋㅋ
허허허 웃게 되는 허무한 기분이 됨.

취향의 시와 시인을 만나는 일이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니까 이럴 땐 좀 아쉽다.
이 세상의 모든 시인의 책을 출간되자마자 손에 넣을 수 있다면야 얼마나 좋겠냐만.
업계 관계자도 아니고서야.



- 우리는 활자에 갇힌 망령이어서,
당신이 나를 읽어 준다면 나는 나비가 되지
너의 지옥에 놀러 갈게. - 시인의 말

- 툭하면 죽겠다던 마음에는 갈피갈피 네가 살아서. 코밑으로 기억하는 너의 숨을 영원히 영원히 맡고 싶어. 나는 때때로 젊은 산모처럼 너를 낳았다가 너를 죽였다가. 내가 낳은 네 발등에 키스를 했다가 전전긍긍 나쁜 계획을 세웠다가. 이따금 무기질 상태가 되어 버린 그리움에는 너의 그 물활론적 사려가 남아 있어. 따뜻해. 심지어 따끔해. 이건 내가 써 내려갈 신화여서, 몇백 쌍의 달이 뜨고 지는 동안 놓지 못하는 욕망이 있어. - 이것은 우리의 존재통 중

- 모든 것을
증오의 힘으로 살아 냈다고,
네가 속삭여 줄 때 나는 가장 빛나
아, 내가 사랑하는 불가해한 사람!
오늘도 네 무릎에서 까무룩 잠이 들어
온 세상 인간이 사라지는 꿈을 꾸겠지
사실 난 그게 좋아 - 불발된 이야기들 중

- 오만 생각이 다 떠올라도, 모든 게 미완성인데, 어머! 그런 편이 이별하기에 좋아서, 순탄했던 삶을 야금야금 좀먹으며, 우리는 우울한 포옹을 한다, 진심으로 사랑을 섬겼던 시간들을 기억하기에 - 프러시안블루 중

- 우리는 세상이 낳은 부작용
사실 난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태어났는데
요즘은
흔들리고 위태롭고 야하게 웃는 너를 만나
도대체 어디로 갈 거냐고 묻는다
그럼 넌 이렇게 말했지
70분만 기다려 줘 - 70분만 기다려 줘 중

- 나는 제법 낭만에 너그러운 사람이라서,
일부러 연민을 즐긴다
아름다운 불신
그것도 아니면 무슨 재미로 산담 - 발랄한 유언 중

- 말도 안 돼, 라고 생각하지만 쓰지 않을 때의 나는 나의 쓸모를 자주 되물어야 한다. - 편의점에서 구원도 팔았으면 좋겠어 중

2026.

#너의지옥으로사뿐사뿐 #김하늘 #타이피스트시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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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공항 ㅣ 타이피스트 시인선 13
이원석 지음 / 타이피스트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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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취향의 쓸쓸한 정서.

밤이라서 쓸쓸하게 느껴지는 건지
쓸쓸하니 밤이었던 것인지... 모호해지는 그런 감각.

- J에게
벚꽃이 지는 거리를 차로 달리며
꽃 봐 저기 저기
햇빛에 모가지가 떨어지는 죽음을 뿌리치며
꽃 좀 봐
나는 안타까워서 여러 번 소리쳤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아팠는지 마음이 부서졌는지
그렇게 아파서 스러지고야 마는지
뒷좌석에서 힘없이 눈을 감고 기울어져 있던 네가
잠시 고개를 들어 꽃을 보아 줄 때
얼마나 안심했는지
얼마나 두려웠는지
내 모가지를 꺾어 너에게 달아 주고 싶던
봄 - 시인의 말

- 걷는다는 것은 삶을 진행시키는 것이다
가만히 있어도 흐르는 시간을 두 다리로 천천히
되밟는 것이다 - 순찰 기록 중

- 물에 가라앉는 것이 필요해
손에 쥘 수 있는 마음 같은 것
쇠로 만든 막대 같은 것
두드리면 울리고 손에서 놓으면 가라앉는 것
내려다보면 일렁이는 바다
바닥을 바라고 가라앉기 위해
파도를 버리고 내려가는 위안 - 쇠막대의 규격 중

- 손님이 모두 떠나고
먼 자리부터 불이 꺼지고
하나 남은 배려마저 캄캄해질 때까지
기다리다가
일어난다 비가 오는
아무것도 없는 돌무더기 위에 서서
바닥돌 하나를 골라
반듯하게 놓아 본다 쇠락한 공항을 세우기엔
비 오는 날이 제격이지 - 기초공사 중

- 모든 불행은 나의 가족이다
커다랗고 못생긴 마음은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다
기울어서 바닥에 모두 쏟아져 버린다 해도
주워 담을 사람이 없어 이리저리 쓸려 다녀도 - night shift - 야간 근무 중

- 이 밤의 주요 고민이다
살아가는 것이
고통을 받으며 나아가기엔 지나치게 길고
부질없는 마음을 바둥대기에는 너무 짧다 - night bus 심야 버스 중

- 희망이고 전망이고 개나 주라지
난 절망을 겨우 비껴 난
허망에 자리 잡았어
단순하고 자족적인 삶을 꿈꾸며
복잡하고 소모적인 세상에서
죽음을 집어삼키는 게
어리석어 보일 수도 있지만
우린 다 알고 사랑하는 거야 - 나, 맥도날드 맨 중

- 고장 나기 직전까지 나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던 사람과
고장 나기 직전인 나를 붙들고
놓지 않아 준 사람
감사하다는 말을 너무 많이 한 날에는
아무에게도 감사하지 않았다 - 업무 외 일지 중

- 이 시는 인천의 민족, 민주, 노동 열사를 추모하는 <인천 투데이> 신문기사의 발췌, 편집만으로 작성되었다.
추모제가 끝나고 뒤풀이 자리에서, 시 낭독을 잘 들었다는 한 노동자 시인이 술잔을 놓고 내게 말했다. "아람전기는요?" 그는 젊은 시절 아람 전기에서 노동운동을 하며 갖은 고초를 겪었다고 했다. 그가 잠시 후 다시 말했다. "아람전기는요?" 나는 시를 고치겠다고 약속했다. - 우리들의 리스트 중 각주

- 밤이 되면 사위가 잠잠해지고
우린 바로 옆도 지켜 주지 못할 만큼 외로워져요
내려다보면 멀리 무관하게 빛나는 불빛들
사람이 작아지고 희망도 절망도 작게 보여요
다 사라지고 나면 내가 보여요 - 드리운 이야기 - 한국 옵티칼하이테크 470일 고공농성에 부쳐 중

- 해적왕이 될 거야
누군가에게 물들었다고 생각하는 너를 뒤로한 채
나는 대장장이였지
대장이 되고 싶진 않았지
두드리고 두드려서 치밀해지는 쇠를
치밀하다 못해 집요해지고
집요하다 못해 지나치게 되는
뜨겁게 달아올랐다가 쉽게 꺼지고
더 차가울수록 단단해지는 쇠를 만지고 싶었지
빛이 날 때까지 물을 뿌리고
숫돌에 문지르면서
너와 나는 격이 없어 - 누구에게나 각자의 이야기 중

- 그리서 자주 잊어요
멀리서도 듣지 못하는 다정한 말이
갚을 수 없는 불행이
저녁 모퉁이마다 마주쳐
당신의 얼굴에 묻은 불행을 보고
내 얼굴을 문지릅니다
몇 번씩 확인을 하고도 믿기지 않는 죄목을
어찌 세세히 기억하겠습니까
죽거나 죽겠거나 죽을 거거나
무슨 큰 차이가 있겠습니까 - 휴양지 중

- 문장과 문장 사이의 대단한 반전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 안에 진실이 있기 때문이다. 거부할 수 없는 진실, 그걸 마주했을 때 인간은 마음이 흔들린다.
시란 그런 것이 아닐까. - 럼주 상자 중

2026. may.

#밤의공항 #이원석
#타이피스트시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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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궁장의 고백
조승리 지음 / 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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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고, 씁쓸하다.

초반의 갑갑한 현실에서 오는 숨막힘이 좀 힘들긴 하다.
파격으로 치닫는 전개가 다른 결로 감정을 해소해 주는 역할을 한다. 

이 모든 일이 돌봄 의무를 한 개인에게 전가해 회피해서 전개되는 점, 날카롭게 후벼판다.

조승리 작가의 다른 소설, 에세이도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결정적 소설.

- 인간의 가슴속에는 포악한 어둠 한 점이 산다. 그 어둠은 유독 가깝고 연약한 존재를 향해 '인륜'이라는 올가미로 그들을 옥죄고 만다. 일방적으로 강요된 인륜은 숭고한 가치가 아니라 명백한 폭력이다. 천륜이라는 굴레를 짊어진 채 각자의 지옥을 버텨내고 있을 이들에게 이 소설을 바친다. - 작가의 말 중

- 부모가 죽어버리길 바라는 자식을 하나님은 용서해 주실까? - 13

- 방문을 열자마자 알 수 있었다. 내가 변했음을. 오늘 나는 피로 이어진 인연을 잘라냈다. 분노는 나를 잔인할 정도로 대담하게 만들었다. 노인이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나를 옥죄던 공포는 이제 노인을 향한 서슬 퍼런 적의로 바뀌어 있었다. - 39

- 절망은 이성을 잡아먹는다. 잃을 게 없는 자는 그저 욕망에 몸을 맡긴다. 그에게 양심과 체면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 109

- 하나님이 정말 계신다는 믿음이 처음으로 생겼어. 난 사건이 일어날 만한 조건을 만들었을 뿐인데...... 도화선에 불을 붙인 건 하나님 아닐까? - 123

- 사람이 죽었다. 그런데 모두가 행복해졌다. 나는 이 부조리를 이해할 수가 없다. 영원히 사람의 감정을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 125

- "용궁장의 흥망성쇠를 보고 자랐죠. . 과한 욕심은 결국 화를 부르고 만다는 것을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 앞으로 거룩교회의 신자가 되려 하는데 하나님은 이런 날 용서해 주실까요?"
나는 그녀와 눈을 맞추며 처분을 기다렸다. 잠깐의 침묵이 수년의 세월처럼 길게 느껴졌다. 그리고 선고가 내려졌다. 눈앞의 아가씨는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며 말했다. 입가에 미소가 선연했다.
"아멘." - 204

2026.

#용궁장의고백 #조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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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칼
정보라 지음 / 래빗홀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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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 없는 전쟁에 동원된 이들의 허무함과 비애가 가득하다. 
몸도 마음도 추워지는 막막한 목적, 엔딩 없는 전투. 
국가 간 이권 다툼에 희생되는 개인들...

애초에 기억을 이식한 검은 채를 창조한 것도 모자라 그것을 세상에 대책 없이 풀어놓는 것으로 시작되는 지점에서 아이고 두야.... 싶은 두려움이 전제가 되어 읽게 된다.

암울, 피폐하지만 흥미로운 이야기다.

우리 모두 무언가 '대리전을 치르는 존재라는 지점을 건드린다.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위해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을 견디는
나의 동지들에게 - 들어가는 말

- 의식은 어디에서 오는가? 인간의 자아 정체성은 기억에서 생겨나는가? 배양육에 기억을 이식하면 인간이 되는가? 이것이 최초의 질문이었다. - 11

- 괴물이 무엇인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았다. 괴물을 물리치면 자유를 주겠다고 했다. 제국인들의 말이니 믿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자유. 그것은 매혹적인 단어였다. 듣는 순간 희망이 스멀스멀 솟아나는 마법의 단어였다. 아주 약하고 가느다랗지만 한번 생겨나면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 절대로 사라지게 놓아버릴 수 없는, 희망. - 14

- 전쟁에서는, 살아 있는 쪽이 진짜다. 살아남는 쪽이 진짜다.
그녀는 마음을 다잡았다. - 129

- "우린 여기서 같이 살아 나갈 거야."
그녀와 똑같이 생긴 사람은 다시 소리 죽인 기침을 뱉어내며 그녀의 등에 얼굴을 파묻었고, 그러면 그녀는 위에서 손짚을 곳과 발 디딜 곳을 찾는 남자를 천천히 따라 올라가며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속삭였다.
"너랑 나랑, 살아서 집에 갈 거야."
그것은 그녀 자신이 듣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 136

- 하얀 행성은 척박했고 탁한 물이 흐르는 하얀 강과 그들이 만들어 날려 보낸 검은 새 외에는 생명체를 찾을 수 없었다. 그들이 만들어낸 인간이 그곳에서 스스로 살아갈 수 있다면 그들은 식민지를 소유하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식민지에는 하얀 땅과 탁한 하늘과 그들이 만들어낸 인간과 동물이 제공하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었다. 그들은 그 가능성에 도취되어 의식을 가진 존재를 쉽게 지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 143

- 우리가 원하는 세상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싸운다. 싸우면서 나의 세상은 더 넓어졌고 더 치열해졌다. 그런 세상을 열어준 동지들에게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보낸다. - 작가의 말 중.


2026. apr.

#붉은칼 #정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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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제17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김채원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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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세 개가 떨어지다.
외사촌 지간인 혜임과 나, 외할아버지. 조부가 가꾸는 종묘원에 관한 이야기.
죽어도 너무 죽은 어떤 남자를 이유도 묻지 않고 따뜻한 흙에 묻어주는 일을 심상하게 치르는 할아버지와 손녀들이 환상같이 느껴지는데, 비현실적 설정에 다가가는데 왜인지 설득력이 없다고 느꼈다.
그래서 평론을 읽어보는데... 너무 해석적이고 그 지점이 어거지 같이 느껴진다는 것.
작가가 두루뭉술 빚어놓은 형상을 평론이 해설해 주는?


그다지 큰 사건이 없는 것이 요즘 단편들의 트렌드인가.

젊은작가상 수상집이 점점 심심해진다.
평이하고 산만한 느낌의 단편들이었다.

- "둘 다야. 나는 오래전에 죽었고 혼자 재미있는 걸 하고 있어."
할아버지의 말은 절반은 농담이었겠지만 그만큼 절반은 농담이 아니었다. (...) 그러니까 겨우 일부분만 알 수 있는, 줄거리와 같은 이야기였다. 하지만 나는 계속 나였기 때문에. 비록 줄거리뿐인 이야기라고 해도, 자기 인생을 버린 사람과 버리지 않은 사람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듣고 싶었다. - 16, 별 세 개가 떨어지다

- 무언가를 다시 할 수 있다는 말이 언제나처럼 나를 기분 좋게 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슬프게 했다. - 30, 별 세 개가 떨어지다 

- 그런 거였다. 단순히 안타깝고 불쌍하기만 해서는 안 됐다. 사람들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품위가 필요했다. 돈이 만들어주는 품위가. 그것만 있으면. 너무도 쉽게 사랑받을 수 있었다. - 68, 추도

- 쓸모없고 아름답지도 않은 것도 존재하는 세상이야말로 아름다운 세상이지 않을까? - 길란, 우리의 죄를 사하지 마시옵고, 작가노트 중

- "저는 이제 그런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요."
남욱이 속도를 서서히 줄이며 말했다. 차창 너머로 줄지어 선 빌라들이 보였다. 노아는 안전벨트를 풀다 멈추고서 그와 눈을 맞췄다. "그럼요?" 남욱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 받아들이는 거죠. 세상에 이런 사람들이 있다고요." - 316, 우리의 적들이 산을 오를 때

- 언젠가부터 나는 거리에 나갈 때, 광장에 서 있을 때, 농성하고 행진을 따라 걸을 때 모종의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다. 내가 외치는 구호와 품속의 피켓 모두가 너무 엄숙하게 느껴졌다. 나는 사사로워지고 싶었다. 그리하여 누구의 눈에 띄지 않고 조용히, 많은 장소를 통과하길 바랐다. - 함윤이, 작가 노트 중


2026. apr.

#젊은작가상수상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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