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의 없는 전쟁에 동원된 이들의 허무함과 비애가 가득하다. 몸도 마음도 추워지는 막막한 목적, 엔딩 없는 전투. 국가 간 이권 다툼에 희생되는 개인들...애초에 기억을 이식한 검은 채를 창조한 것도 모자라 그것을 세상에 대책 없이 풀어놓는 것으로 시작되는 지점에서 아이고 두야.... 싶은 두려움이 전제가 되어 읽게 된다.암울, 피폐하지만 흥미로운 이야기다.우리 모두 무언가 '대리전을 치르는 존재라는 지점을 건드린다.-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위해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을 견디는나의 동지들에게 - 들어가는 말- 의식은 어디에서 오는가? 인간의 자아 정체성은 기억에서 생겨나는가? 배양육에 기억을 이식하면 인간이 되는가? 이것이 최초의 질문이었다. - 11- 괴물이 무엇인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았다. 괴물을 물리치면 자유를 주겠다고 했다. 제국인들의 말이니 믿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자유. 그것은 매혹적인 단어였다. 듣는 순간 희망이 스멀스멀 솟아나는 마법의 단어였다. 아주 약하고 가느다랗지만 한번 생겨나면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 절대로 사라지게 놓아버릴 수 없는, 희망. - 14- 전쟁에서는, 살아 있는 쪽이 진짜다. 살아남는 쪽이 진짜다.그녀는 마음을 다잡았다. - 129- "우린 여기서 같이 살아 나갈 거야."그녀와 똑같이 생긴 사람은 다시 소리 죽인 기침을 뱉어내며 그녀의 등에 얼굴을 파묻었고, 그러면 그녀는 위에서 손짚을 곳과 발 디딜 곳을 찾는 남자를 천천히 따라 올라가며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속삭였다."너랑 나랑, 살아서 집에 갈 거야."그것은 그녀 자신이 듣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 136- 하얀 행성은 척박했고 탁한 물이 흐르는 하얀 강과 그들이 만들어 날려 보낸 검은 새 외에는 생명체를 찾을 수 없었다. 그들이 만들어낸 인간이 그곳에서 스스로 살아갈 수 있다면 그들은 식민지를 소유하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식민지에는 하얀 땅과 탁한 하늘과 그들이 만들어낸 인간과 동물이 제공하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었다. 그들은 그 가능성에 도취되어 의식을 가진 존재를 쉽게 지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 143- 우리가 원하는 세상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싸운다. 싸우면서 나의 세상은 더 넓어졌고 더 치열해졌다. 그런 세상을 열어준 동지들에게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보낸다. - 작가의 말 중.2026. apr.#붉은칼 #정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