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아닌
황정은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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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서늘하고 아득한 기분이 남는 황정은.

대부분 이미 읽은 단편이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빠져들게 된다.

아무도 아닌 누군가, 혹은 나, 너.

뭐 그런 것들을 생각하며.

좀 우울해져 버린 새벽이다.

2016. D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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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는 고양이 기분을 몰라 - 어느 심리학자의 물렁한 삶에 찾아온 작고 따스하고 산뜻한 골칫거리
닐스 우덴베리 지음, 신견식 옮김 / 샘터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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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박사인 저자는 매사 행위 주체의 심리를 분석하는 것이 습관인 것 같다.

주로 대상은 사람이었겠지만, 이번엔 우연히 관계맺는 고양이다.

초반에 고집스러울 만큼 ‘난 동물을 키우지 않겠어‘라는 다짐은 시트콤처럼 무너지고,

어느 새 집안에 사료를 쌓아두고, 냉장고에는 고양이 영양식이 들어차며,

집 밖 창고 생활을 하던 ‘나비‘(이름도 있다)는 중성화수술과 동시에 목뒤에 마이크로 칩까지 이식된다.

국가가 공인한 고양이 집사가 되었건만 그래도 마지막 순간까지 집사임을 부정하던 박사는

고작 3일간의 나비의 외출에 온갖 불길한 상상과 좌절을 토로하고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나비를 잃은 상실감에 대해 구구절절 읍소하는 지경이 된다.

아... 이것은 ‘너곧내‘아닌가...;ㅂ;

가련한 집사의 운명...ㅋㅋㅋㅋ

이래저래 재밌는 이야기다.

고양이를 외출냥으로 키울수 있다는 것 자체로도 스웨덴은 부러운 나라다.

사람, 환경, 고양이 모두를 염두에 둔 사회적 개입이 일단 이 나라보다는 선진적이니까.

물론 그 외의 모든 점도 부럽다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나는 많은 늙은이와 마찬가지로 아주 여리고 민감하다. 고양이는 이와 달리 의지가 강철 같고 어찌 보면 목적의식이 확고하면서도 오히려 유연하다. 대결은 전혀 없었지만 결국 고양이는 바라던 것을 언제나 얻게 마련이었다.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10

물론 고양이랑 지내다 보니 걱정도 조금 생겼는데, 고양이가 우리에게 오지 못하게 하려는 데서 오는 걱정이 아니라, 녀석 덕분에 기쁨이 생긴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는 데서 생기는 걱정이었다. - 23

저녁이 되자 나는 피곤하다. 아주 피곤하다. 하지만 미취되고 배가 열린 것은 내가 아니다. 워낙 대단했던 하루라서 난 약간 혼란스러운 정도였다. 고양이 소유주로 등록되어 사실 꽤나 즐겁다. 하지만 난 고양이를 갖겠다고 마음먹은 적이 없다. 그저 내가 처한 상황을 해결하려던 것뿐이었다. - 46

고양이는 왜 골골댈까? 어떻게 하는 걸까? 고양잇과 동물은 모두 그르렁거릴까? 호랑이가 그르렁댄다면 그 소리는 마치 콘크리트 벽을 억지로 밀고 들어가는 전기 드릴 같겠지. 이런 게 궁금해진 것은 처음이라 자연사에 해박한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그 친구가 내 질문을 누구에게 전하는가 싶더니 결국 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동물학 교수와 함께 나가게 되었고, 그곳에선 내 질문들에 상냥하게 대답해주려 했다. 프로그램이 끝날 때 교수가 건네준 과학 논문에서는 독일 연구자가 다른 연구자들의 참고문헌도 주렁주렁 꼼꼼하게 달면서 고양잇과 및 여타 동물들의 그르렁 소리를 과학적으로 밝히고 있다. - 49

나도 나비에게 골골송을 불러주어서 나비가 내게 보여주는 편안한 친밀감에 똑같이 응답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잠시 슬쩍 그르렁대 보는 나의 성대에는 그 유용한 주름이 없기에 주로 코 고는 소리만 날 뿐이다. 즐거울 때 내는 소리를 흉내 내려는 내 어색한 노력을 나비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런 식으로 마음이 통하지는 않는다. - 57

나비는 천천히 우리를 믿기 시작했지만 우리는 또 그만큼 나비를 믿지 않는다. 어느 화창한 날에 나비는 다시 사라질지 모르고 그러면 우리는 상실감과 고양이 특식으로 가득 찬 냉장고만 끌어안은 채 남겨질 것이다. 그저 이 순간만은 나비가 돌아와서 마냥 기쁠 뿐이다. - 73

깡통 하나는 5크로나(한화 약 680원) 밖에 안 되니 난리법석 피울 일도 아니다. 문제는 내 도덕적 기준이 무너진다는 기분이 든다는 것인데 좀 더 기강을 세웠어야 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말썽꾸러기 고양이는 그냥 흡족한가 보다. 걔는 도덕적 원칙 따위는 개나 줘 버린다. - 179

여기까지 읽은 독자라면 아마 깨달았겠듯이 내 고양이는 아무 거리낌도 없는 향락주의자라서 가장 좋은 것만 받아 먹는 데 한 점의 부끄러움도 못 느끼는 쾌락 완전체다. 내가 보기에는 매력적인 성격이다. ...... 나는 그런 삶의 태도를 존중한다. 나비는 이왕이면 나은 것을 망설임 없이 고르지만 다른 한편으로 딱히 더 나은게 없다면 꽤 비참한 상황도 겸허히 받아들인다. 부지런함은 내가 알아서 챙겨야 하겠지만 이런저런 시련을 어떻게 견디는지는 녀석에게 배울 수 있겠다 싶다. 그게 바로 내가 갖출 덕목이다. - 180

2016. d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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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따위 안 읽어도 좋지만 - 세계적 북 디렉터의 책과 서가 이야기
하바 요시타카 지음, 홍성민 옮김 / 더난출판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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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따위 안 읽어도 좋지만‘ 이라고 기세좋은 제목이지만

불과 책장 한장만 넘기면 소심하게 ‘읽어보는 것도 좋다‘ 라고 써있다.

북디렉터의 책 이야기라 재미있을 것 같았지만,

일단 일본에만 출판되어 있는 책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고, 책의 장르도 딱히 추구하는 장르가 아니다.

재미있을리가 없다.

이 책은 안 읽었어도 좋았을 뻔 했는데, 읽고 말았다.

좀 아쉬운 결말이다.


책을 읽고 무언가를 ‘아는 것‘이 ‘사는 것‘과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최근 들어 자주 한다. 적어도 그런 식으로 책을 읽으려고 노력은 한다. - 12

당신이 추천한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당신을 부정한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 책을 추천하고 그 일로 인정받으려고 하면 어쩔 수 없이 자기 중심적으로 책을 고르게 된다. 그리고 운이 나쁘면 책을 받아들이지 않는 상대를 비난하기도 한다. 그러나 당신이 그 책을 사랑하듯이 눈앞의 누군가도 무언가 - 많은 경우 책과는 다른 것 -를 사랑할 자유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상대의 이야기에 귀 기울려 자신이 추천하고 싶은 책과 눈앞의 누군가에게 권해야 할 책과의 거리를 좁혀가는 것. 나는 그런 위치를 찾으면서 매일 일하고 있다. -28

2016. d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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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라는 뼈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369
김소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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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시를 읽다.

이전에 읽은 김소연의 시와 감정은 유사하나 결이 다르달까.

마음을 다독이고 크게 숨 한번 들이마시고 내쉬듯... 읽었다.

너를 이루는 말들이라는 시가 와서 닿았다.

우리라는 자명한 실패를 당신은 사랑이라 호명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돌아서서 모독이라 다시 불렀다 세상 모든 몹쓸 것들이 쓸모를 다해 다감함을 부른다 당신의 다정함은 귓바퀴를 돌다 몸 안으로 흘러들고 나는 파먹히기를 바란다고 일기에 쓴다 파먹히는 통증 따윈 없을 거라 적는다 일기장을 펼칠 때마다 일생 동안 지었던 죄들이 책상 위에
수
북
하
게
쏟아져 내렸다
- 투명해지는 육체 중.


2016. d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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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2-07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가 실패라고 규정할 때 반대로 그것을 가치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후자의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우리 사회에 한 번 실패를 영원한 실패로 단정짓는 분위기가 너무 강합니다.
 
82년생 김지영 ㅣ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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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뽀에 가까운 이야기들.

주변에 만연한 사건들에 캐릭터를 잘 입힌 모양새다.

당연하게도, 피디수첩 작가였다더니 역시..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여성의 인생 전반에 걸쳐, 여러 세대에 걸쳐 어떤 불합리들이 존재하는지 망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러 생각이 들게 된다.

여아 낙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땐 자연스럽게 엄마 세대의 고충을 떠올렸고(지금도 다른건 별로 없다고 여기지만)

초등학교 남자짝꿍의 괴롭힘 이야기에는 자연스럽게 내 학창 시절에 아주 사소한 여학생들의 연대에 대해 떠올렸다.

취업을 준비하던 나의 대학시절이 생각나고, 불유쾌한 회식자리의 에피소드도 생각나고,

쎄다 예민하다 까칠하다는 평가를 때론 자랑스럽게 때론 불편하게 생각하던 일도 생각난다.

결혼, 임신, 출산, 육아를 경험하는 주변 사람들의 고충도 떠오른다.

그런데 이 모든 회상의 주체는 여성이다. 이 이야기가 그렇듯 말이다.

그래서 또 착찹하다.

82년생 김지영이 많이 읽혔으면 하는 이유기도 하다.

정부에서 ‘가족계획‘이라는 이름으로 산아제한 정책을 펼칠 때였다. 의학적 이유의 임신중절수술이 합법화된 게 이미 10년전이었고, ‘딸‘이라는 게 의학적인 이유라도 되는 것처럼 성 감별과 여아 낙태가 공공연했다. 1980년대 내내 이런 분위기가 이어져 성비 불균형의 정점을 찍었던 1990년대 초, 셋째아 이상 출생 성비는 남아가 여아의 두 배를 넘었다. 어머니는 혼자 병원에 가서 김지영 씨의 여동생을 ‘지웠다‘. 아무것도 어머니의 선택이 아니었지만 모든 것은 어머니의 책임이었고, 온몸과 마음으로 앓고 있는 어머니 곁에는 위로해 줄 가족이 없었다. 맹수에게 새끼를 잃은 동물처럼 울부짖는 어머니의 손을 꼭 잡으며 의사는 미안하다고 말했다. 어머니가 미치지 않은 것은 오로지 할머니 의사의 그 한마디 덕분이었다. - 29

국민학교 때는 오 남매 중에서 엄마가 제일 공부 잘했다. 큰외삼촌보다 더 잘했어.
근데 왜 선생님 안 했어?
돈 벌어서 오빠들 학교 보내야 했으니까. 다 그랬어. 그때 여자들은 다 그러고 살았어.
그럼 선생님 지금 하면 되잖아.
지금은, 돈 벌어서 너희들 학교 보내야 하니까. 다 그래. 요즘 애 엄마들은 다 이러고 살아.
어머니는 자신의 인생을, 김지영 씨의 어머니가 된 일을, 후회하고 있었다. 길게 늘어진 치맛자락 끝을 꾹 밟고 선 작지만 묵직하고 굳건한 돌덩이. 김지영 씨는 그런 돌덩이가 된 기분이었고 왠지 슬펐다. 어머니는 김지영 씨의 마음을 알아채고는 너저분하게 흐트러진 딸의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다정하게 넘겨 주었다. - 36

넌 그냥 얌전히 있다 시집이나 가.
이제껏 더 심한 소리를 듣고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김지영 씨는 갑자기 견딜 수가 없어졌다. 도저히 밥이 넘어가지 않아 숟가락을 세워 들고 숨을 고르고 있는데 딱, 하고 단단한 돌덩이가 깨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숟가락으로 식탁을 내리쳤다.
당신은 지금 때가 어느 땐데 그런 고리타분한 소릴 하고 있어? 지영아, 너 얌전히 있지 마! 나대! 막 나대! 알았지? - 105

예전에는 일일이 환자 서류 찾아서 손으로 기록하고 처방전 쓰고 그랬는데, 요즘 의사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 예전에는 종이 보고서 들고 상사 찾아다니면서 결재 받고 그랬는데, 요즘 회사원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 예전에는 손으로 모심고 낫으로 벼 베고 그랬는데, 요즘 농부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라고 누구도 쉽게 말하지 않는다. 어떤 분야든 기술은 발전하고 필요로 하는 물리적 노동력은 줄어들게 마련인데 유독 가사 노동에 대해서는 그걸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전업주부가 된 후, 김지영 씨는 ‘살림‘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가 이중적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때로는 ‘집에서 논다‘고 난이도를 후려 깎고, 때로는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고 떠받들면서도 좀처럼 비용으로 환산하려 하지 않는다. 값이 매겨지는 순간, 누군가는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겠지. - 149

남자 직원들도 다 가정이 있고 부모가 있는데 사람 인생을 이렇게 까지 망쳐 놓아야 속이 시원하겠느냐. 여자들 입장에서도 사진 나돌고 그런거 소문나서 좋을 거 없지 않느냐. 또래 한국 남자들에 비해 감각도 생각도 젊던 대표의 입에서 너무 뻔하고 이기적인 자기방어의 망발들이 쏟아져 나왔고, 김은실 팀장이 참다참다 한마디 했다.
가정이 있고 부모가 있다는 건, 그런 짓을 용서해줄 이유가 아니라 하지 말아야 할 이유입니다. 대표님 생각부터 고치세요. 그런 가치관으로 계속 사회생활하시다가는 이번 일 운 좋게 넘기더라도 비슷한 일 또 터집니다. 그동안 성희롱 예방 교육 제대로 안 한 건, 아시죠? - 156

2016. d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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