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들은 부지런히 서로를 잊으리라 ㅣ 문학동네 시인선 118
박서영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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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한 사람에 대하여, 지극한 사랑은 고양이 한정이 되어버린 사람이 생각해 본다.


- 정확한 버스 노선을 따라가는 당신 뒤에서
이해할 수 없는 꽃송이들, 눈송이들, 흰 주먹들이 떨어진다
어떻게 녹아내려야하고 멈춰야 하고
사라져야 하는가
어떻게 이별하고 잊어야하고 퇴장해야 하는지
계속 물었는데 아무도 대답이 없다 - 미행 중

- 나는 사랑했고 기꺼이 죽음으로
밤물결들이 써내려갈 이야기를 남겼다. - 시인의 말 중

2019. a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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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라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9
김성중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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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시장으로 깊은 인상이 남은 김성중 작가의 길지 않은 장편이다.

어느 날 갑자기 ‘죽지도 태어나지도 않는 시간, 무엇인가 명백하게 어긋난 시간’(11)이 인류에게 주어진다면이라는 상상에서 시작되는 이야기.

백년이라는 시간의 유예는 인간에게는 형벌일 뿐이다. 상상해보자면 아득하고 막연한 기분이 들게하는 설정이어서 끝맺임이 어떨지 매우 궁금해하며 읽었다.

상상력과 재현되는 이미지에는 만족했지만, 결말을 만족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나를 이입하여 생각해봐도 커다란 구멍같은 결말이 보일 뿐이다.

다른 얘기...
판타지나 미래 배경의 이야기에는 낙원을 지향하는 공동체가 자주 등장하는데, 그것에는 언제나 ‘장악’이라는 핵심 요소가 있다.
그것은 인간이 습관에서 엇나가려는 지점과 그저 수용하려는 지점에 대한 원인과 결과일 것이다.
이 이야기에도 필연적으로 형성된 공동체가 등장하는데, 그 곳이 조금 더 궁금했다.

- 무슨 영문인지 모르지만 세상에 종말이 온 거야. 조용히 죽음을 기다리던 나 혼자 내버려두고 온 세상이 사라져버린 것이지. 그가 말해주었다. 부도덕하고 폭력으로 가득찬 이 세계는 버릴 수밖에 없다고, 오랫동안 청소를 하지 않은 집은 치우기보다 이사를 가는 편이 낫다고 말이다. 인간은 텅 빈 집에 창궐하는 개미나 바퀴벌레 같은 존재가 돼버렸는데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른다니 안타깝구나. - 14

- 백년의 인간들은 스스로 신이 되기에 바빠 옆에서 진짜 신이 걸어다니는 걸을 알지 못했다. 무관심하고 무력한 신들이 도처에서 돌아다니고 있는데도 말이다. 나의 이슬라처럼. - 15

- 습관과 광기 중 어느 것이 백년의 인간을 차지하겠는가? 당연히 후자다. - 37

- 수면과 수평을 이룰 수 있다면 나머지 세상도 어떻게든 잘 돌아갈 것이라는 낙관같은 것. - 56

2019. a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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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 소녀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76
앨리스 먼로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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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도대체 네가 뭐라고 생각하니?”

앨리스 먼로의 <거지소녀>는 생각할 지점이 많은 이야기다.
한 여성의 성장과 좌절, 행복을 생각해볼 수도 있고, 가족이라는 이름의 지리멸렬한 감정을 이끌어 내기도 한다.
결국 생의 의미를 어디에서 어떻게 (구지 왜) 찾아야 할지도 생각하게 한다.

그 와중에 가장 끈질기게 사념의 가닥들을 끄집어 내는 것은 ‘가난’이었다.
왜 이 이야기가 내내 잿빛이었는지, 왜 내내 손등이 벌겋게 틀겄만 같은 냉기와 건조함을 느꼈는지, 가족과 연결되는 또 다른 가족들이 등장함에도 한 움큼의 온기도 없이 느껴졌는지는 아무래도 그 이유에서 찾아야 할 것 같았다.

단편적이기고 하지만, 로즈의 기억으로 소환되는 아버지의 모습은 지적인 열망이 가득했으나 가난으로 좌절한 모습이다. 자신과 닮은 딸의 모습이 자랑스럽기도, 못마땅하기도 한 양가 감정은 아무래도 빈곤을 이길 수 없다는 체념때문일 것이다. 그리 내세울 것 없는 도시에서도 반쪽, 가난한 지역에서 잡다한 물건들을 수리하며 살아가는 큰 희망이 없는 삶에 대한 납득. 모르긴 해도 이미 자신도 그 한계를 넘어보려는 시도는 한번 쯤 해보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 길의 허망함을 알았을 것이다.
모두가 빈자인 시절이지만 그 조차 예리하게 감각하는 자에겐 삶은 그저 불행일 뿐일지도 모른다.

앨리스 먼로가 그리는 로즈는 그런 가난의 감각을 대물림한 여성이다. 단순히 가난했어, 라고 추억하듯 말할 수 있는게 아닌, 가난을 처절하게 배워온 자의 모습말이다.

물론 로즈의 인생이 내내 절박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열심히 공부했고, 가정도 꾸렸고, 화목하다고 볼 순 없지만 가족과의 끈도 놓친 적이 없고, 자신이 원하는 일도 차근차근 해나갔다.
그럼에도 그녀의 인생을 바라보는 내내 쓸쓸한 감정이 느껴진 것은 왜 였을까.
로즈의 삶은 완벽하게 채워지지 않았던 걸까.

그래서 도대체 네가 뭐냐고...... 묻는것 같았다.

정말 많은 것들을 떠올리는 독서였는데, 다 옮기진 않았다. 너무 파편화 된 생각들은 잘 메모해 두었다.
적어도 지금은 앨리스 먼로 작품 중 가장 좋다.


- 그녀는 아버지가 자신에 대해 느끼는 다른 감정들도 있다는 사실 역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딸에 대해 통제하기 힘든 짜증과 우려뿐만 아니라 자부심 또한 느끼고 있다는 것을. 그는 딸이 다르기를 원치않는다는 것. 본 모습 그대로이기를 바란다는 것이 진실, 최종적인 진실이었다. 적어도 그의 마음 한구석에서는 그랬다. - 91

- 그녀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아내, 애인, 하고 생각했다. 그 온화하고 사랑스러운 말들. 그 말들이 어떻게 자신에게 적용될 수 있을까? 그것은 기적이었다, 실수였다. 그것은 그녀가 꿈꿔온 것이었다. 그녀가 바라지 않는 것이었다. - 148

- 이 무슨 사기란 말인가, 로즈는 생각했다. 모두에게 이 무슨 사기란 말인가. 우리는 우리가 당연히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전혀 갖추지 못한 결합을 통해 세상에 나온다. - 246

- 그녀는 비로소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아는 소년들은 아무리 무능해보여도 결국은 남자가 될 것이며, 자신들이 갖춘 것보다 훨씬 큰 재능과 권위가 필요할 것 같은 일들을 하도록 허가받을 거라는 사실을. - 359

2019. a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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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귀 ㅣ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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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 시리즈 중 검은 방 시리즈.

괴담을 들어주고, 잊어주는, 가끔은 해원을 해주는데 일종의 상담소 같은 곳이고, 시리즈가 점점 구조와 캐릭터 면에서 체계가 잡히고 있다.

에도 시대 뭐 잘은 모르지만, 그 시절의 복색, 음식, 문화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소개가 되어 있어 읽는 맛이 있다.

<미망의 여관>에서는 망자를 멋대로 불러모으고 그래도 된다 여기는 어리석음에 대해선 딱히 할 말이 없지만, 그 시대에도 가졌던 인간에 대한 예의와 연민이 왜 요즘엔 무시되는 경우가 왕왕 있나 생각하게 된다. 예의라는 것은 모든 것이 복잡해지고 정신없어질 수록 중요한 덕목인데...
<식객 히다루가미>에서는 적당한 욕망에 대한 질문이 떠올랐다.
<삼귀>에 등장하는 아랫마을 윗마을로 분리된 고립된 산간마을은 죄책감을 덜고 불필요한 입을 줄이기 위해 서로 살인을 해주고 있다. 이것은 정의가 아니다 라고 쉽게 말할 수 있다면 내가 비교적 평화로운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아닐까. 처해진 환경에 따라 선택의 범위와 윤리와 비윤리를 말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지금 여기에서는 그런 차이와 격차를 생각해 봐야 하는 시대임을 잊으면 안되겠다. 사람답고 올바르게 살기 위해서.
그들이 ‘오니’를 마주치며 ‘너는, 나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래서 고민하는 사람의 대사일 수 있지 않나.

가벼운 기담으로 소비되지만 의외의 묵직한 생각들이 자꾸 떠오르게 된다.

............



이 책은 18년 접어든 세월을 같이 보낸 내 고양이 에코를 보내는 중에 읽었다. 어쩌면 안 어울리는 책일지도 모르지만, 생을 마감하고도 고마움 그리움 같은 감정을 산 자들의 세계에 전하는 이야기는 어쩐지 위로가 되었다. 에코 꿈에 좀 나와 줄래? 그동안 답답했던거 얘기좀 해줘...


- 사람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그것은 때로 인생의 한 귀퉁이에 스며들어 떨어지지 않는 무언가를 보여주는 일이나 마찬가지이니 아무래도 많은 사람의 귀에 들어가는 건 곤란하다. 다만 한 번쯤 입밖으로 내어 토해 버리고 싶을 뿐이다. 무덤까지 그대로 가져가기는 괴로우니까. 그 무언가가 비석 밑에 다 들어가지 않을까봐 불안하니까. - 10

- 환상이었다면 어디에선가 불쑥 돌아올 거예요. 우리는 모두, 언젠가 죽을 때까지 어떻게 해도 살아가야만 하니까요. - 215

2019. m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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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혐오자 ㅣ 해문 세계추리걸작선 14
에드 맥베인 지음, 최운권 옮김 / 해문출판사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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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문출판사.. 이 판형의 책도 상당히 오랫만이다. 어려서 많이 보던 판형. 왠지 기분이 옛날기분.

87분서 시리즈의 처음이고, 형사물이고, 당시 과학 수사의 일면도 볼 수 있고, 당대 사회를 관찰하기 좋다.

경찰 혐오라고 해서 각을 잡고 보았는데, 결국 남편 혐오로 끝난 이야기.

역시 가장 큰 적은 가족?

교훈적이기 그지 없는 대사도 시대를 생각하면 별로 부끄럽지 않다.

- 하지만, 그 빛나는 빌딩의 그늘 밑에는 언제나 어두움 거리가 있기 마련이다. 거기에는 쓰레기도 있다. - 6

2019. m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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