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 자서전
마리-헐린 버티노 지음, 김지원 옮김 / 은행나무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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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해서 이야기에 빠져드는데 솔직히 좀 시간이 걸렸다.
또 흔한 서양 문화권의 여자아이 성장기인가?? 하는 시큰둥함도 같이 있었기에 조금 더 그랬던 것 같다. 주인공이 성인이 되면서 점점 재미가 더해졌다.

삶의 목적과 의욕이 없는 상황, 언젠가는 떠날 존재라는 자각 속에서 체념에 가까운 태도를 견지하던 주인공이 성인이 되고 돌볼 존재들을 인식하게 되면서라고 해야 할까.

모호한 쓸쓸함, 우울, 무력감 등이 심경의 전반을 구성하는 게 외계에서 지구로 떨어져 나온 존재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엔딩도 좀처럼 행복하고, 충만 하다는 느낌보다는 공허하다는 감각.
인상 깊은 감동과 공감의 독서라기보단 빈 자리가 많은 독서임에도 마음이 쓸쓸해지면 책을 덮게 되는 여운이 남는 것은 계절성 우울감이 영향을 미쳐서 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좋은 작가를 만났다는 것은 확실하다.

이동진 평론가의 언급, 추천이 있었다고 광고를 하는데 관련 영상도 찾아봐야겠다.
다른 이들은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궁금하네.
북플에 다 읽음 표시를 남기며 다른 이들의 별점을 보게 되었는데 정병러의 웅얼거림이라는 악평도 눈에 띄었다. 
삶의 고독을 모르는 사람일까?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까지 오독될 이야긴가 싶기도 하고...

- 인간은 다른 인간이 행복해 보이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다음 날 아침에 답이 도착한다. 유감이군.
아디나는 반대편에 있을 누군가가 그녀를 걱정하며 응원하고 있다고 상상한다. - 32

- 인간은 자기 삶이 충분히 힘들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롤러코스터를 발명했어요. 롤러코스터는 철로 위에 일부러 만들어둔 위기 상황들의 연속이에요. 하지만 막상 진짜 문제를 직면하게 되면 인간은 인생이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다고 말해요. 쉬는 날 재미로 타려고 만든 거면서 말이에요. 아디나는 팩스를 보낸다. - 121

- 칼 세이건의 글에 따르면, 그녀의 그리움은 애초에 무의미하다. 그녀의 종족은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어 훨씬 발전했을 것이고 그래서 시공간과 인과관계의 개념을 초월했을 것이다. 그들에게 시간은 선 위의 점들이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 담긴 하나의 몸짓이다. 이렇게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슬퍼하는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거나 아주 오래전에 일어났는지도 모르는 사건을 애도하는 것과 같다. 은하적인 관점에서 보면, 아디나는 끝없이 뻗은 무한의 도로를 내려다보며 차가 올 기척을 찾고 있는 거나 다름없다. 먼지가 일기를, 도로 위의 자갈이 흔들리기를. 하지만 세상은 꿈쩍도 않고, 자신의 종족과 시간 속에서 어떻게 연결되어ㅓ 있는지조차 그녀는 모른다. 광막한 우주에 던져진 그녀의 슬픔은 어디에도 닿지 못한다. 어디 있어요? 데리러 와주세요. 여기서 데려가줘요. 그녀는 가지고 있는 모든 필립 글래스의 음악 카세트테이프를 듣지만 소용없고 초라하고 위험하고 슬프고 반항적인 감정이 들 뿐이다.
아디나는 미국의 십대가 되었다. - 125

- 아디나는 스쳐 지나가는 집들의 따뜻한 창문을 응시한다. 가끔은 모르는 사람들의 삶이 엿보인다. 냄비를 들고 식탁으로 걸어가는 여자. 화분에 물을 주는 남자. 저들 모두에게 엄마가 있다. 긴 생일 주간의 끝에, 소금기 묻은 공기에 피로해진 채, 그 단순한 생각이 기적처럼 느껴진다. - 150

- 혼자라는 건 탁 트인 들판 위로 슬픔이 먹구름처럼 몰려오는 걸 지켜보기에 가장 알맞은 장소예요. 당신은 의자에 앉아 그것을 맞이할 준비를 할 수 있죠. 먹구름이 당신을 통과할 때면, 손을 내밀어 그 구석구석까지 느껴볼 수도 있어요. 그렇게 먹구름이 지나가고, 당신이 다시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되면 심지어는 그 슬픔이 그리워지기도 해요. 왜냐하면 그건 연인처럼 내 곁을 지켜줬거든요.
잘하고 있다. - 196

- 우리는 왜 이토록 연약한가, 아디나는 생각한다. 보잘것없고 나약한 몸은 이 모든 걸 견딜 수 없는데, 대체 어떻게 하루를 살아내는 걸까? - 329

- 아디나의 삶에서 로맨스 프로젝트는 끝이 났다. 슬픔과 안도감이 함께 밀려온다. 그녀는 그에 대한 사랑을, 집에서 거미를 내보내듯 서서히 다른 곳으로 옮길 것이다. 결국 그들은 평범한 인간적인 이유로 헤어진다. 서로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 363

- 모든 인간은 죽어요. 하지만 그보다 더 나쁜 일은, 매일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행동한다는 거예요. 그들은 거짓말을 하거나, 배려 없이 대하거나, 누군가를 속이며 살아가죠. 그런 행동 하나하나가 작은 죽음이에요. 인간은 마지막 죽음이 오기 전까지 계속해서 작은 죽음들을 겪어요. 
응답 없음. - 382

- 그 얼어 붙은 나무 아래에서, 그런 바보 같은 말을 했던 그 순간에도 아디나는 외로웠다. 외로움은 복합적인 감정이다. 얄궂게도, 그것은 혼자 존재할 수조차 없다. 분노, 굶주림, 두려움, 질투가 동반된다. 아디나는 그것을 자신이 떠나온 별에 대한 향수라고 착각했으나 그 감정은 자신이 갈망하는 장소에 있지 못할 때 느끼는 초조함이기도 했다. 삶에서 가장 충만한 감정을 느꼈던 순간은 토니와 그 작은 개가 함께였을 때였다.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도대체 어디에? - 398

- 그는 그녀의 소리 혐오를 일컫는 말이 있다고 말한다. 청각과민증. 이 병은 오랫동안 부정적으로 여겨졌지만 요즘엔 인식이 개선됐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목을 가다듬거나 먹는 소리에 분노를 느끼고, 펜을 딸깍거리는 소리에 꽥 고함을 지르기도 해요. 어떤 사람들은 낯선 사람을 꾸짖기도 하죠."
아디나는 이 단어를 알게 되어 놀랍고 기쁘다. 그 모든 것을 설명하는 인간의 용어가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어떤 성향을 외계인의 것으로 여겨왔던 것이, 사실 인간의 관점에서 이해되지 않는 것이라면 뭐든 낯선 것으로 취급하는 인간적 경향 때문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그녀는 새로운 물건들을 구한다. 실크 베개, 명상안내 책자. 청각 과민증. 사악한 마녀, 머나먼 땅 같은 병명.
어떤 세월은 당신을 나이 들게 만들고, 어떤 세월은 젊게 만든다. 어쩌면 내년에는 다시 젊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 413

2025. nov.

#외계인자서전 #마리헐린버티노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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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거짓말 ㅣ 창비시선 512
장석남 지음 / 창비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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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시라....

조금은 심심한 한 권이었다.

익숙한 작가의 이름에 쉽게 구매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그간 읽어온 책이 너무 많아서 웬만한 작가의 이름은 다 낯익다는 맹점이 있다.

- 나는 여전히
열쇠 구멍 앞에서
그 잠금쇠가 삭기를 기다린다
우리 가계가 언제나 그래왔듯이
기다림이 삭는 줄도 모르고 기다린다
이미 다 털린 줄도 모르고 - 열쇠 중

- 나는 살아왔다 나는 살았다
살고 있고 얼마간 더 살 것이다
거짓말
그러나 내가 사랑하는 거짓말 - 내가 사랑한 거짓말 중

- 벼락에 고하는 글
화평한 서정시를 쓰고 싶습니다
위선과 비열, 몰염치와 야비, 교활하기까지 한
그 가면들을 순간의 빛 속에 가두고
때리는

서정시를 쓰십니까?
아니요 '서정시'를 씁니다
벼락같은 - 서정시를 쓰십니까? 중

- 잘못 살았나봐
같이 볼 이 없는
찬란한 이 꽃 더미 앞이라니! - 옛집 명자꽃 더미 앞에서 중

2025. oct.

#내가사랑한거짓말 #장석남 #창비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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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철 대삼각형 ㅣ 오늘의 젊은 작가 51
이주혜 지음 / 민음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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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했다.
조금은 산만하기도 하고.

불안함이 연대로 감싸지고 빛으로 나아가는 좀 나이브 한 듯하지만
그러나 불행으로 끝맺음 하기엔 희망은 늘 필요하니까.

탄핵 가결의 순간의 묘사는 꽤 오랜 시간 이야기들 속의 한 장면으로 살아갈 것 같다.

- 과학자들은 우리가 원자로 만들어졌다고 말하지만 어느 작은 새가 내게 말하길 우리는 이야기로 만들어졌다. -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 암흑 속에 발은 별이 총총 떠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밝음이라 부를 것인가, 어둠이라 부를 것인가. 그것은 누가 선택하는가. 선택이 가능하기는 한가. - 21

- 사랑이 자연 발생하지 않는 노력의 산물이라면 미움은 노력과 무관하게 자연 발생했다. - 30

- 미안해.
상습적인 사과였다. 지철은 송기주가 동요할 때마다 무조건 사과했다. 지철은 모를 것이다. 언제부턴가 송기주가 지철에게서 제 마음을 온전히 이해받기를 깨끗이 포기해 버렸다는 사실을. 언제나 겁 많은 아내가 대견했던 이 남자는, 스스로 딸 바보임을 자랑스러워할 뿐인 이 남자는 딸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순간 곧바로 죽음의 공포를 떠올리는 엄마의 마음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딸이 잘못되는 순간 엄마도 죽는다는 이 이중의 죽음에 관해 설명해 줘도 모를 것이다. 떠먹여 줘도 모를 것이다. 송기주의 분노가 지철에게로 향했다. 당장 차 문을 열고 인도도 없는 자동차 전용 도로 한복판으로 뛰어들고 싶었다. 지철이 한껏 억누른, 그러나 짜증을 완전히 숨기지는 못한 어조로 말했다.
그만큼 우리 딸이 결핍 없이 자랐다고 생각하자. 적어도 우리보다는 나은 어른이 되어 가고 있다고. - 142

- 우주가 먼저 망원경 렌즈에 눈을 갖다 댔다. 잠시 후 우주가 한쪽 눈을 감은 채 나직이 속삭였다.
와, 정말 하나는 푸르고 하나는 노래요. 두 개가 분명해요. 두 별이 서로를 돈다니 신기해요. 함께 춤을 추는 것처럼요.
우주가 이렇게 말이 많은 아이였던가, 태지혜는 속으로 놀랐다. 우주의 목소리가 살짝 떨리는 게 느껴졌다. 우주는 두 별의 춤을 목도하면서 누구를 떠올리고 있을까? 그게 누구든 태지혜는 우주가 영원히 말이 많고 눈동자가 보이지 않을 만큼 눈웃음을 지으며 살아가길 오늘 처음 본 여름철 대삼각형을 향해 빌고 또 빌었다. - 209

- 나도 그 친구들 잘 몰라. 만난 적도 별로 없고, 각자 다르고, 서로 낯설어. 그래서 친해.
낯설어서 친한 사이라니. 우주는 그 말을 듣고 숙모와 동행하는 데 동의했다. - 215

2025. sep.

#여름철대삼각형 #이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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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나는 현대미술 - 21세기가 사랑한 예술가들
김슬기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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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멀어져있던 미술.
편집자 K 콘텐츠를 보고 갑자기 읽고 싶어졌다. 

요즈음은 어떨까, 여전할까, 새로운 자극이 있을까...

크게 변한 측면은 없구나라고 느꼈다.

늘 새롭고 신선한 작가들이 등장한다고 느꼈었는데, 그 흐름도 그다지 빨랐던 건 아니라고,
그 안에 있을 때는 못 느낀 시간의 흐름이라 이래서 외부의 시선도 생각하며 살아야 하는구나.

현대의 아트씬에선 대형 작업을 해야 성장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은 이제 기본이 된듯하고
소셜미디어의 활용도 무시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
그래서인지 대형 작업이면서도 작은 핸드폰 화면에서도 소구력이 있어야 하는 지점.

그리고 어쨌거나 나는 여전히 구상화를 더 좋아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 이 시대는 회화 작가가 희귀해진 시대이기도 합니다. 벽을 가득 메우는 거대한 회화의 역습이 그래서 더 미술 시장의 주목을 받게 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 38

- 조너스 우드의 그림은 대부분 실내를 그리고 있다는 점이었죠. 작가와 가족을 제외하면 인물은 드물게 등장하고, 식물과 실내장식, 반려묘, 반려견이 주인공이 되곤 합니다. 집순이나 집돌이들은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평온함을 느낄 겁니다. 조너스 우드는 이 시대의 내향인을 위한 화가인 것처럼 보입니다.
작가는 자신의 정물에 담기는 것들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당신은 내 작품을 시각적 일기라 부를 수도 있고 심지어 개인사라 부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저와 상관없는 것은 그리지 않습니다. 제가 그릴 수 있는 모든 가능한 것들 중에서 흥미로운 것을 정직하게 그립니다." - 58

2025. sep.

#탐나는현대미술 #김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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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창작과비평 209호 (2025년 가을호) ㅣ 창작과비평 209
창작과비평 편집부 / 창비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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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집중이 안 되는 비관심분야 인 몇 꼭지는 건너뛰고 읽었다.
사실 관심 여부를 넘어 글이 좋으면 읽히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 훌훌 읽었다는 점을 기록해두고 싶다.

밀리지 않고 읽어야 최고인 게 잡지, 특히 문학 계간지임을
과거의 경험, 교훈이 있었기 때문에...

안 밀리고 받으면 그 달에 바로 읽는다가 목표였으니 스스로 칭찬한다.

비상계엄, 내란의 그림자가 진한 가을호였다.
황정은 작가의 <작은 일기>에 대한 헬마우스 임경빈 작가의 리뷰도 실려있다 .

- 오랜만에 TV를 켜자 정말 비상계엄 속보가 시뻘겋게 나왔다. 이젠 공영방송조차 가짜 뉴스를 한다고 혀를 차다가 곧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순간 갑자기 모욕감과 분노가 치솟았다. 
'니가 뭔데 내 영혼이 감전되는 유일한 순간을 짓밟느냐.' - 수치와 모욕 중, 이산하

- 산책이 시작된 거죠 상처 내지 않고 눈물을 투과하는 빛의 원리, 손등에 닿는 무지개, 어둠 속 눈부심, 천사의 것인지 악마의 것인지 구분할 필요가 없는 날갯짓, 날갯짓이 불러일으키는 한낮의 심상...... 걷잡을 수 없는 수수께끼로 빠져드는 거죠 안으로만 고이고 다가서면 제 얼굴이 얼비치는, 내면의 웅덩이가 제게도 있으니까요 - 세입자 중, 정다연

- 무엇보다 문학은 정치를 초과하는 것, 적어도 감정의 차원에 있어서는 마땅히 그러한 것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문학은 정치적 논리와는 다른 맥락에서 사람이 사람을 멀리하기도 때로는 혐오하기도 하는 이유를 드러내고, 또한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새로운 마음의 길을 찾는다. 그렇게 문학은 정치로 귀속되지 않는 잠재적인 감정을 보존하기에 진정 정치적일 수 있다. - 인간다움을 다시 묻는 시, 박동억, 문학평론

- 그러나 어떤 트라우마는 반복된다. 픽션은, 그 슬픔이 휘발될 때 드러나는, 보이는,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들 안에서 그 증언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실재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영원히 도달 불가능한 다가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정치적인 힘은 그렇게 발현되어 왔다. 언제나 아직 도달되지 못한 미래이자 도래할 무엇으로만. - 문학평론, '우리'라는 실재 ,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의 리얼리즘에 대하여, 이미진

- 황정은 일기 속에는 내란 사태 이후 그 겨울과 봄의 내가 있었다. '남'의 일기로 '나'를 만나는 특별한 일이 일어났다. 공동체란 구성원들이 무엇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의 총합니다. 기억은 역사가 되고, 역사는 공동체를 규정한다. 그런 의미에서 누군가의 일기는 개인사이지만, 다른 시민들과 공유하면 사회사가 된다. <작은 일기>는 '우리'가 6개월간 공유한 깊은 모욕감에 대한 이야기다. (...) 그래서 너무나 '공적인' 일기의 페이지를 넘기며 종종 울었다. 울면서 위로를 받았다. 나의 불안이 그의 불안이었고, 나의 분노화 체념이 또한 그와 다르지 않았다. 우리는 같은 시가를 보며 허탈해했고, 종종 안심했다. 나 혼자가 아니었다. 카메라 앞에서 다 아는 척, 불안하지 않은 척 시청자들에게 위로를 건네던 정치평론가가 아니라 또 다른 일기의 주인공으로서의 안심이었다. - 우리의 겨울과 봄에 대한 작지 않은 이야기, 임경빈

- 그래도 이런 순간들을 붙잡으려고 한다. 소음과 침묵이 평화롭게 공존하던 순간. 아무런 기대 없이 대가 없이 서로 마주 보던 순간. 방금 지나쳐온 길이 곡선이었는지 직선이었는지 함게 곱씹는 순간. 우리 모두가 한때는 아름다웠던 적 있으며 앞으로도 종종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강한 사람이 된다. 그런 희부연 힘이 필요할 때면 시를 읽었다. 시와 함께 강한 사람이 되었다. 시 안에서 내 마음을 흔들고 뒤집고 털어보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전히 알 수 없는 것들은 알 수 없는 일들로 남았지만 해야 할 일들 앞에서는 조금 더 분명해졌다. - 한여진, 수상소감 중.

2025. sep.

#창작과비평2025가을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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