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래너리 오코너 - 오르는 것은 모두 한데 모인다 외 30편 ㅣ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12
플래너리 오코너 지음, 고정아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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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시작한 독서인데 너무 단편적이고 로컬라이징 되어있는 배경과 상징들, 종교적 색채 덕에 한동안 덮고 있다 다시 읽었다.
읽고 치워야겠다는 약간은 진절머리 류의 결심으로 마음을 다잡고 다시 시작했다. 
그러나 빠져들고 보니 정말 흥미로운 인간 분석을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허무하고 하찮아 보이는 인생들이 짧은 단편들 안에 빼곡하다.
읽다 보면 인간의 삶이 얼마나 처연하고 보잘것없고 허무한지에 대한 상념이 줄줄이 이어진다.
심지어 작가가 엄청난 심술쟁이 같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자신들도 대륙의 진짜? 주인이 아니면서 후발주자로 강제적 혹은 박해를 피해 자발적으로 건너온 이들을 쉬 인정하지 않는 고지식하고 완고한 선 이민자 백인들.
고리타분하고 벽창호 같은 모습으로 묘사되는 기독교인들, 교조적이고 구습에 파묻힌 인간들, 극단적으로 타락한 악인들.
어느 누구도 행복하거나 평화롭거나 인간적이지 않아 보이는 이 책 속 인물들.
거의 모든 단편마다 불쾌한 감정을 소환하는 캐릭터들이 등장한다는 점이 ... 어떤 면에서는 굉장하다. 
인간 혐오를 백까지 끌어올리고 또 깨부수는 글들을 읽다 보니 작가의 '폭력적 은총'이 이런 것인가 싶다. 

60년 전 배경이지만 문제적인 것이 또 하나 총기 사건들인데, 남부의 정신 계승인가? ㅡ.,ㅡ
한 팔 길이의 쇳덩이에 자존감을 등치시키는 너무 모자라 보이는 시절... 어리석어 보인다는 감상은 지울 수가 없다.
인셀 문제도 60년 전에도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탄식하게 된다.

내면의 빈곤함을 위장하려는 오만과 우월감이 인간은 그저 불완전한 존재임을 증명하는 하나의 과정같다.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읽어내는 '남부 고딕'이라는 장르의 매력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 정도면 확실할 것 같았다. 그 글은 그렇게 이렇게 시작했다. "우리가 선거를 통해 누군가에게 권력을 주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그리고 이렇게 끝났다. "관념을 사용하면서 그것을 평가하지 않는 것은 허공을 걷는 것이다." 그는 마지막 문장이 아주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도 상당히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 - 33, 이발사

"좋은 사람은 참 드물어요." 레드 세미가 말했다. "모든 게 험악해지고 있어요. 외출하면서 집에 빗장도 안 걸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런 시절은 갔죠." -  170,  좋은 사람은 드물다

"여기는 내 농장이야. 여기 누가 오고 안 오고는 내가 결정해." 부인이 말했다. "네." 그가 말하고 다시 모자를 썼다. "나는 이 세상 불행에 책임이 없어." 부인이 생각난 듯 말했다. "네." 그가 말했다. "여기는 좋은 일터고, 자네는 감사해야 돼. 그렇게 하는지 모르겠군." 부인이 덧붙였다. "네." 그가 말하고 어깨를 살짝 으쓱한 뒤 트랙터로 돌아갔다. - 303. 추방자

'완벽한 건 없다'는 것은 호프웰 부인이 좋아하는 말 가운데 하나였다. 또 하나 '그런 게 인생이다!'라는 것도 있었다. 그리고 중요한 또 하나는 '사람들 생각은 다 다른 법이다'였다. 부인은 이런 말을 주로 식탁에서 했고, 그럴 때 부인의 목소리는 자기 말고 누구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 것처럼 부드럽지만 집요했다. 그러면 늘 화가 나 있어서 얼굴에 아무런 표정이 없는 덩치 큰 조이는 얼음처럼 차가운 눈으로 어머니의 약간 옆쪽을 보았는데, 그 모습은 마치 자발적으로 맹인이 되고 특별한 수완으로 그 상태를 유지하는 사람 같았다. - 368. 좋은 시골 사람들

"월터, 너는 남자고 나는 여자일 뿐이야." 부인이 말했다. "어머니 세대의 여자는 우리 세대의 남자보다 나아요." 월터가 말했다. 부인의 입술이 분노로 팽팽해졌고, 머리가 가볍게 떨렸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그런 말을 하다니!" 부인이 나직하게 말했다. 월터는 조금 전의 의자에 주저앉아서 책을 펼쳤다. 그의 얼굴에 나른한 홍조가 자리 잡았다. "우리 세대의 유일한 미덕은 진실을 말하는데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가 말하고 책으로 돌아갔다. 그녀의 면담은 그렇게 끝났다. - 653. 이교도는 왜 분노하는가?

작가의 길에 막 들어선 20대 중반의 나이에 그녀는 이미 자신이 어떤 글을 쓰는지 또 써 나갈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 이후 12 년 만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런 정신은 잠시도 흔들리지 않았고, 그 확고한 작가 정신으로 오코너는 불과 네 권의 책으로 미국 문학사의 깊은 자취를 남기게 되었다. - 옮긴이의 말 중.


2026. aug.

#플래너리오코너단편선 #플래너리오코너 #고정아옮김 #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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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절벽의 신자들
조예은 지음 / 오리지널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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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헤매는 인간의 믿음에 대하여.

뭔가 해갈되는 것이 아닌 채로 사건의 종결, 종료의 느낌으로 끝맺는 점이 지극히 현실적이라고 생각된다.

사이비를 둘러싼 개인의 불행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인데,
충분히 재밌을 법한 소재지만, 깊이 빠져들진 못 했던 것 같다.

일단 개인적으로 사이비에 대해 큰 관심이 없어서 일까?
사이비의 사회적인 개인적인 문제들이 팽배하다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으나, 그 경험이 직접적인 적이 없어서 그런 듯하다.
가장 가까운 경우가 학교 동기 정도?
쉽게 손절이 가능한 정도의 관계에서 경험했기 때문에 더 불행한 스토리로 이어지지 않았던 덕일 것.

어쨌든 종교라는 것이 믿어서 믿는 것인지, 믿고 싶어서 믿는 것인지 하는 질문이 들기도 하는 뒷맛이 그다지 좋지 않은 사이비 이야기다.

- 오히려 그는 춥고 습한 방일지라도 자신만의 온전한 공간이 있다는 데 한없이 감사했다. 밖은 지옥도다 그런 세상이다. - 22

-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동안 자신이 신실하게 기도한 대상이 바로 이 절벽이라는걸. 이 벽이 상징하고 증명하는 '그들'이야말로 원하는 걸 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는 걸 말이다. - 52

- 추리 만화같은거 보면 하나의 단서만으로도 전말을 유추하잖아. 그 단서가 일종의 만능 열쇠잖아? 나는 그런 걸 찾고 싶었어. 잘못된 선택이야 너무 많지. 타고 올라가면 끝이 없지. 사실 종종 태어나지 않은 게 가장 좋은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하지만 이미 태어났고 그 사실을 바꿀 수 없다면 나는 잘 살고 싶었단 말이야.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그런데 왜 마음대로 안 되는 걸까? 왜 그토록 어렵지? 쉬운 게 없어. 억울할 정도로. 저주하고 싶을 정도로. 문제는 내가 누구를 저주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거야. 내 안에 감정이 너무 많은데, 이걸 어디론가 쏟아내지 않으면 터져서 죽을 거 같은 데, 대상을 모르겠어. 아니, 하나 있긴 하다. 나. 나밖에 되지 못하는 나. - 233

- 이제 이곳에 머무르는 건 굳건한 광신자들과 기다림의 막다른 길에 도달한 자들, 그리고 오연뿐이었다.
어떤 식으로든 결말을 원하는 자들. 세상이 망하거나, 믿음이 실패하거나. - 245

- 역사에는 너무 많은 믿음과 그 믿음으로 인한 비극이 있었다. 사이비만이 아니었다. 종교라는 명분 아래 계속되는 전쟁들, 노예제와 인종 청소, 특정 대상을 배척하고 혐오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믿음들. 근간을 가늠할 수 없이, 의심할 여지조차 없이 쌓이고 쌓이는 믿음. 확신이라는 공포. 우리는 우리 안의 어떤 믿음이 잘못되었다는 걸 어느 시점에 이르러 알아차리는 걸까? 알아차릴 수는 있나? - 248

- 오연은 믿음이 광기로 진화하는 지점이 궁금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영영 모르고 싶기도 했다. 그런 걸 온전히 이해하게 되는 자신을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알고 싶지만 타자로 있기를 바라는 마음. 딱 상처받지 않을 정도로만 연루되고 싶은 마음이란 얼마나 비겁한지. - 249


2026. sep.

#녹색절벽의신자들 #조예은 #오리지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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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리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박설영 옮김 / 프시케의숲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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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라는 존재를 통해 인종주의적인 관점의 차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원래 이 세계에는 정체를 숨기고 살아가는 뱀파이어, 이나들이 존재하고, 그들이 여러 세기를 걸쳐 이루어놓은 사회적 약속과 반동하는 세력과의 갈등을 그렸다.

모계 사회로 이루어진 이나 집단은 각지에 많지는 않지만 분포해 있고, 그들 내부에는 순수 혈통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이나 살해 사건이 중심 줄거리이다. 소재가 그렇다보니 판타지 성이 두드러지면서 이미지화하기 쉬운 흥미로운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약간.... 트와일라잇 같은? :)
그러다 보니 뱀파이어가 유별나게 고고하고 순수하면서도 고차원적인 존재로 그려지는 점이 좀 나이브 하긴 하지만, 흥미로운 캐릭터성을 갖기에는 충분하다.


다만 뭐랄까.... 절정이라는 지점이 없는 느낌?
책의 반이 넘어가도록 실마리가 해결되지 않아 더욱더 그런 느낌을 받는 것 같다. 재미요소는 충분한데 스토리가 늘어지는 이유다.

그리고 이미 너무 많이 접한 백인과 흑인의 갈등 요소가 이야기의 중심에 있어서 진부함의 요소를 더하는 측면도 있다.

이 세상의 모든 문학을 읽은 것은 아니지만, 이미 나는 너무 많은 이야기를 접했고,
나와 나의 세계는 충분히 확장되어 뻗어나갔는데, 너무 많은 흑백 갈등, 너무 많은 유럽 중심의 세계대전, 너무 많은 남성의 서사들이 이제는 좀 지겨워진 측면이 있다는 것.
그런 지점을 관통하는 이야기들도 충분히 즐길 수는 있지만, 더 이상 십 대 이십 대의 독자가 아닌 나는 이런 측면에서 독서 매너리즘에 빠진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그럼에도 옥타비아 버틀러의 저작들을 좋아하고 즐기는 독자로서 충분히 의미 있는 책이다.

- 나는 진절머리를 내며 고개를 저었다. 내 무지는 단지 귀찮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내 무지는 위험했다. 그들을 나로부터 지킬 방법도 모르면서 어떻게 돌볼 수 있단 말인가. - 193

- "우리를 죽이고 싶어?"
그는 몇 초 동안 생각에 잠겼다. "모르겠어. 아니, 아니야. 너희처럼 예쁜 아가씨들과 여기 함께 있는 건 아무 문제 없어."
그의 경계심이 완전히 풀렸다는 판단이 들었다. "빅터." 내가 말을 시작했다. "나를 알아? 내가 누구야?"
그의 대답에 나는 깜짝 놀랐다. "더러운 껌둥이 계집애." 그가 반사적으로 답했다. "빌어먹을 잡종 애송이." 그러더니 숨을 헐떡이며 양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았다. 잠시 후 그가 탁자로 머리를 떨구며 신음했다.
고통스러워하는 게 분명했다. 그의 얼굴이 갑자기 시빨개졌다.
"그렇게 말하려던 게 아닌데" 그가 속삭였다. "그렇게 부를 생각은 아니었어." 그가 나를 봤다. "미안해.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놈들이 나를 그렇게 불렀나보지?"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 피부가 어두워서?"
"그리고 인간이니까." 그가 말했다. "인간과 섞인 이나, 아니 이나가 살짝 섞인 인간이니까. 그런 일은 일어나서 안 돼. 절대로. 너, 너희... 너희 종... 너희 가족들이... 종을 계량하게 놔둘 순 없어." - 260

- "진실이 너의 가장 큰 무기야." 그가 말했다. "성깔은 잠시 넣어둬. 진실을 슬기롭게 이용해." - 356


2026. aug.

#쇼리 #옥타비아버틀러 #프시케의숲 #fledgling #octaviaebut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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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고 적었다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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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 대한, 사회적 참사에 대한,
새로운 시작을 하는 이들에 대한, 작가의 추억에 대한 산문.

가족 이야기엔 공감대가 커서 잠시 울적해지기도 했다. 
'이렇게 오래 집에 돌아오지 못하는 일...'
사람의 생과 사에 대한 회한들...

AI 와 대화를 나누고 정보 획득을 하면서 감정 교류, 위로를 받기도 하고,
그러면서 어느 순간 인간이 아닌 AI의 주저함이 없는 나이브한 언변에 거리감을 느끼게 되는 지점까지 공감했다.
신형철 평론가의 말처럼 미끌거리고 감정의 손에 잡히지 않는 그런 언어에 대해.

- 돈 때문에 또 밥 때문에 시무룩하게 발밑을 보는 눈과 그럼에도 이따금 먼 데를 보는 인간의 눈을 생각한다. 둘 사이가 만든 삶의 너비,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을. 나 또한 그곳에서 글을 쓰다 어느 순간 마흔 넘은 작가가 됐다. - 12

- 한 사람의 성취를 두고 애써 결핍을 찾거나 가정법을 쓸 피요는 없다고. 우리는 지나간 역사를 바꿀 수 없으며 그 작가는 그 작가로 충분하다고. 카프카가 일을 혐오한 동시에 성실한 직장인이었다 해서 그의 작품이 덜 위대해지는 것도 아니며, 어슐러 K. 르 귄이 전업작가로 비교적 안정되게 살았다ㅏ 해서 다른 작가보다 더 현실을 몰랐던 것도 아니다. 누군가의 결핍처럼 보이던 게 나중에 개성이 되고, 자산 같았던 게 한계나 덫이 되는 경우를 우리는 이미 많은 이야기를 통해 알고 있다. 삶은 단순한 덧셈 뺄셈이 아니라 여러 개의 얼굴로 이루어져 있으며, 문학은 바로 그 자리에서 출발한다는 점도. - 14

- 그러니 중요한 건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도착 이후의 문제, 연착 전후의 문제인지 모른다. 밥과 꿈이 번번이 우리 손에서 미끄러져 나갈 때, 낯설게 얼굴을 바꿀 때 그 간극을 관리하고 메우는 사유와 언어를 갖는 것.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이 삶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기술을 익히는 일 말이다. - 16

- 그러고 보면 내게 같은 고백을 들은 K씨에게는 있고 챗지피티에게는 없는 게 하나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망설임'이었다. 인간은 누군가의 고통 앞에서 자주 주저한다. 자신의 말이 혹 옳다 여길지라도 그저 상대의 마음을 짐작하며 망설인 채 말을 삼킨다. 그리고 그 주저와 짐작 사이에 힘겹게 서 있는 어떤 품위와 배려가 있다. 요즘 그런 것을 자주 생각한다. - 35

- "큰 교훈 없는 상실."
나는 단편 <안녕이라 그랬어>에 그렇게 적었다. 그런데, 삶은 정말 그런 것의 연속일까? 잘 모르겠다. 다만 그동안 내가 진부한 주제라 여긴 어떤 종류의 이야기가 왜 그토록 인류에게 오랜 시간 반복돼왔는지는 조금 알 것 같다. 살면서 우리는 누구나 사방의 모든 불이 갑자기 꺼진 듯한 상황을 맞으니까. 그러다 가끔은 저마나 영혼에 저축된 빛으로, 과거 자신이 받은 줄도 몰랐던 유산으로 눈앞을 밝히기도 하니까. - 54

- 나는 여러 문학 작품에서 스토너가 본 것과 비슷한 유령을 자주 만났다. 그리고 내가 장르를 불문하고 소설 안에서 으스스함을 느끼는 인물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그건 그들이 '자기 서사를 의심하지 않는' 이들이라는 점이었다. 이들은 보통 종교와 정치 영역에 잘 나타나며 둘은 쉽게 결합한다. 언젠가부터 나는 그 둘이 힘을 합해 진실을 해하는 이야기를 섬뜩해 했다. - 105

- 어느 직업을 가졌든 많은 분들이 해당 분야에 필요한 기술과 지식을 계속해서 익히고 늘리려 노력할 테지만 나 역시 어쩌다 소설가가 돼 꾸준히 연습하게 된 삶의 방식이 있다. 내게 소설 쓰기란 상대가 아는 것과 내가 아는 것을 합해 둘 다 모르는 장소에 다다르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일은 아주 드물게 일어나고, 아는 곳에 도착하는 것만으로도 벅찰 때가 많지만 다만 거기까지라도 가기 위해 꼭 해야 하는 일이 있다. 평소 내가 아는 것이 정말 아는 것이 맞는지 확인하고 내가 모르는 게 무언지 공부하고 반성하는 일이다. 어떤 태도나 자격을 떠나 기술적인 면만 봐도 그렇다. - 139

- 인간은 균질하지 않고 인간성 또한 마찬가지다. 그중 어떤 인간성은 사랑할 만하고 어떤 인간성은 지리멸렬하지만, 그 이상함과 불안전함 속에서 무언가 믿거나(종교), 의심하며(과학) 살아온 것이 우리 인간이지 싶다. 삶과 앎을 향한 의지가 종내 삶과 앎에 대한 반동으로 이어져 납득하기 어려운 일도 더러 일어나지만. 불길한 소식 앞에서 나 역시 자주 어두운 표정을 짓곤 하지만. 낙관 혹은 비관 대신 '우리는 모른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나 자신의 욕망에 따라 삶을 꾸려가는 시간주권을 가진 채 살아가고 싶다. 스스로 삶의 의미를 물으며, 시간의 시작과 끝을 사유하면서. - 190

2026. aug.

#그랬다고적었다 #김애란 #문학동네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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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 - 삶과 문학, 읽고 쓰기에 관한 네 번의 강의
제임스 우드 지음, 노지양 옮김, 신형철 해제 / 아를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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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강의록.

오랜만에 이스마일 카다레와 아직 안 읽어본 테주 콜을 읽고 싶어졌다.

문학 강의라서(?) 부분 지루한 면도 있지만 날카로운 유머와 통찰이 돋보이는 글이다.

- 예술은 인생의 가장 가까운 것.
우리의 경험을 증폭시키고, 개인의 운명의 한계를 넘어 동료 인간의 삶과 맞닿게 한다. - 조지 엘리엇, <독일 생활의 자연사>

- 나는 비평이 리뷰나 논문과 어떻게 다른지 충분히 의식하지 않는 (나를 포함한) 많은 비평가들에게 답답함을 느낀다. 리뷰는 어떤 작품이 향유할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효율적으로 판단해 주는 일이지만, 비평은 뛰어난 안목과 기예를 가진 이가 특정한 작품을 '일단 향유하기 시작하면' 작품이 어떻게 거듭나는지를 보여주는 일이다. 논문이 검증된 방법론과 논리적 절차들로 대상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산출하는 작업이라면, 비평은 어떤 강력한 주관성이 제정신의 움직임과 사유의 퍼포먼스를, 그게 그 순간의 최선이기 때문에 미완성인 채로 밀고 나가는 작업이다. - 20

- 영화 평론은 영화가 될 수 없고 음악 평론은 음악이 될 수 없지만 문학 평론은 문학이 될 수 있다. 문학 평론이 가장 위대하다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문학 평론은 그만큼 특수하다는 얘기다. '뭔가'에 들러붙어서 바로 그 '뭔가'가 되는 유일한 글쓰기다. - 느낌의 공동체

- 예술가는 자신의 창작품을 진실처럼 믿고 진지하게 여기지만 그가 풍부하고 온전한 표현을 하기 위해 필요한 만큼만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모든 면에서 그는 진심이며 때로는 진심으로 눈물을 흘리기도 할 테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꼭 그렇지는 않은 것에 불과하며 결과적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을 not at all 수도 있다. 소설이란 꼭 그렇지 않음의 게임이 벌어지는 세계이며 완전히-믿지는-않음 not-quite-belief 의 장소이다. 종교에서는 위험이 되는 바로 그것이 소설에서는 근본 구조가 된다. - 46

-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세속적 태도와 종교적 태도 사이를, 삶의 순간들과 삶의 형식이라 할 만한 것들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일이다. 소설의 세속적 충동은 인생을 확 하고 연장하는 것이며, 소설은 평범한 인간의 일상이라는 주식을 거래하는 위대한 상인이다. 소설은 우리 삶의 순간들을 여러 장면과 세부사항으로 확장하고 이러한 순간들들을 실시간에 가까운 리듬으로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다. - 50

- 이야기란 잉여와 실망의 역동적인 조합이다. 이야기가 실망스러운 이유는 반드시 끝나야만 하기 때문이고 그러면서도 정말로 끝낼 수 없기 때문이다. 잉여를 절묘한 실망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진짜 이야기는 끝이 없지만 이야기 자체의 논리가 아니라 이야기꾼이 강제한 형식에 의해 시작과 끝이 결정되기 때문에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다. 우리는 작가의 형식이 강요하는 죽음을 넘어서려고 애를 쓰는 삶의 순수한 잉여를 느낀다. - 79

2026. aug.

#인생에가장가까운것 #제임스우드 #노지양옮김 #아를
#문학강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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