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궁장의 고백
조승리 지음 / 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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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고, 씁쓸하다.

초반의 갑갑한 현실에서 오는 숨막힘이 좀 힘들긴 하다.
파격으로 치닫는 전개가 다른 결로 감정을 해소해 주는 역할을 한다. 

이 모든 일이 돌봄 의무를 한 개인에게 전가해 회피해서 전개되는 점, 날카롭게 후벼판다.

조승리 작가의 다른 소설, 에세이도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결정적 소설.

- 인간의 가슴속에는 포악한 어둠 한 점이 산다. 그 어둠은 유독 가깝고 연약한 존재를 향해 '인륜'이라는 올가미로 그들을 옥죄고 만다. 일방적으로 강요된 인륜은 숭고한 가치가 아니라 명백한 폭력이다. 천륜이라는 굴레를 짊어진 채 각자의 지옥을 버텨내고 있을 이들에게 이 소설을 바친다. - 작가의 말 중

- 부모가 죽어버리길 바라는 자식을 하나님은 용서해 주실까? - 13

- 방문을 열자마자 알 수 있었다. 내가 변했음을. 오늘 나는 피로 이어진 인연을 잘라냈다. 분노는 나를 잔인할 정도로 대담하게 만들었다. 노인이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나를 옥죄던 공포는 이제 노인을 향한 서슬 퍼런 적의로 바뀌어 있었다. - 39

- 절망은 이성을 잡아먹는다. 잃을 게 없는 자는 그저 욕망에 몸을 맡긴다. 그에게 양심과 체면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 109

- 하나님이 정말 계신다는 믿음이 처음으로 생겼어. 난 사건이 일어날 만한 조건을 만들었을 뿐인데...... 도화선에 불을 붙인 건 하나님 아닐까? - 123

- 사람이 죽었다. 그런데 모두가 행복해졌다. 나는 이 부조리를 이해할 수가 없다. 영원히 사람의 감정을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 125

- "용궁장의 흥망성쇠를 보고 자랐죠. . 과한 욕심은 결국 화를 부르고 만다는 것을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 앞으로 거룩교회의 신자가 되려 하는데 하나님은 이런 날 용서해 주실까요?"
나는 그녀와 눈을 맞추며 처분을 기다렸다. 잠깐의 침묵이 수년의 세월처럼 길게 느껴졌다. 그리고 선고가 내려졌다. 눈앞의 아가씨는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며 말했다. 입가에 미소가 선연했다.
"아멘." - 204

2026.

#용궁장의고백 #조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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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칼
정보라 지음 / 래빗홀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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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 없는 전쟁에 동원된 이들의 허무함과 비애가 가득하다. 
몸도 마음도 추워지는 막막한 목적, 엔딩 없는 전투. 
국가 간 이권 다툼에 희생되는 개인들...

애초에 기억을 이식한 검은 채를 창조한 것도 모자라 그것을 세상에 대책 없이 풀어놓는 것으로 시작되는 지점에서 아이고 두야.... 싶은 두려움이 전제가 되어 읽게 된다.

암울, 피폐하지만 흥미로운 이야기다.

우리 모두 무언가 '대리전을 치르는 존재라는 지점을 건드린다.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위해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을 견디는
나의 동지들에게 - 들어가는 말

- 의식은 어디에서 오는가? 인간의 자아 정체성은 기억에서 생겨나는가? 배양육에 기억을 이식하면 인간이 되는가? 이것이 최초의 질문이었다. - 11

- 괴물이 무엇인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았다. 괴물을 물리치면 자유를 주겠다고 했다. 제국인들의 말이니 믿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자유. 그것은 매혹적인 단어였다. 듣는 순간 희망이 스멀스멀 솟아나는 마법의 단어였다. 아주 약하고 가느다랗지만 한번 생겨나면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 절대로 사라지게 놓아버릴 수 없는, 희망. - 14

- 전쟁에서는, 살아 있는 쪽이 진짜다. 살아남는 쪽이 진짜다.
그녀는 마음을 다잡았다. - 129

- "우린 여기서 같이 살아 나갈 거야."
그녀와 똑같이 생긴 사람은 다시 소리 죽인 기침을 뱉어내며 그녀의 등에 얼굴을 파묻었고, 그러면 그녀는 위에서 손짚을 곳과 발 디딜 곳을 찾는 남자를 천천히 따라 올라가며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속삭였다.
"너랑 나랑, 살아서 집에 갈 거야."
그것은 그녀 자신이 듣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 136

- 하얀 행성은 척박했고 탁한 물이 흐르는 하얀 강과 그들이 만들어 날려 보낸 검은 새 외에는 생명체를 찾을 수 없었다. 그들이 만들어낸 인간이 그곳에서 스스로 살아갈 수 있다면 그들은 식민지를 소유하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식민지에는 하얀 땅과 탁한 하늘과 그들이 만들어낸 인간과 동물이 제공하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었다. 그들은 그 가능성에 도취되어 의식을 가진 존재를 쉽게 지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 143

- 우리가 원하는 세상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싸운다. 싸우면서 나의 세상은 더 넓어졌고 더 치열해졌다. 그런 세상을 열어준 동지들에게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보낸다. - 작가의 말 중.


2026. apr.

#붉은칼 #정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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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제17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김채원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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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세 개가 떨어지다.
외사촌 지간인 혜임과 나, 외할아버지. 조부가 가꾸는 종묘원에 관한 이야기.
죽어도 너무 죽은 어떤 남자를 이유도 묻지 않고 따뜻한 흙에 묻어주는 일을 심상하게 치르는 할아버지와 손녀들이 환상같이 느껴지는데, 비현실적 설정에 다가가는데 왜인지 설득력이 없다고 느꼈다.
그래서 평론을 읽어보는데... 너무 해석적이고 그 지점이 어거지 같이 느껴진다는 것.
작가가 두루뭉술 빚어놓은 형상을 평론이 해설해 주는?


그다지 큰 사건이 없는 것이 요즘 단편들의 트렌드인가.

젊은작가상 수상집이 점점 심심해진다.
평이하고 산만한 느낌의 단편들이었다.

- "둘 다야. 나는 오래전에 죽었고 혼자 재미있는 걸 하고 있어."
할아버지의 말은 절반은 농담이었겠지만 그만큼 절반은 농담이 아니었다. (...) 그러니까 겨우 일부분만 알 수 있는, 줄거리와 같은 이야기였다. 하지만 나는 계속 나였기 때문에. 비록 줄거리뿐인 이야기라고 해도, 자기 인생을 버린 사람과 버리지 않은 사람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듣고 싶었다. - 16, 별 세 개가 떨어지다

- 무언가를 다시 할 수 있다는 말이 언제나처럼 나를 기분 좋게 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슬프게 했다. - 30, 별 세 개가 떨어지다 

- 그런 거였다. 단순히 안타깝고 불쌍하기만 해서는 안 됐다. 사람들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품위가 필요했다. 돈이 만들어주는 품위가. 그것만 있으면. 너무도 쉽게 사랑받을 수 있었다. - 68, 추도

- 쓸모없고 아름답지도 않은 것도 존재하는 세상이야말로 아름다운 세상이지 않을까? - 길란, 우리의 죄를 사하지 마시옵고, 작가노트 중

- "저는 이제 그런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요."
남욱이 속도를 서서히 줄이며 말했다. 차창 너머로 줄지어 선 빌라들이 보였다. 노아는 안전벨트를 풀다 멈추고서 그와 눈을 맞췄다. "그럼요?" 남욱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 받아들이는 거죠. 세상에 이런 사람들이 있다고요." - 316, 우리의 적들이 산을 오를 때

- 언젠가부터 나는 거리에 나갈 때, 광장에 서 있을 때, 농성하고 행진을 따라 걸을 때 모종의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다. 내가 외치는 구호와 품속의 피켓 모두가 너무 엄숙하게 느껴졌다. 나는 사사로워지고 싶었다. 그리하여 누구의 눈에 띄지 않고 조용히, 많은 장소를 통과하길 바랐다. - 함윤이, 작가 노트 중


2026. apr.

#젊은작가상수상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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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주부의 일기
수 코프먼 지음, 구원 옮김 / 코호북스(cohobooks)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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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여성을 미치게 하는가?

흥미로운 해피 엔딩?

허영과 권태의 대결 끝에 미친 완벽한 주부가 되기로 결심하는 어이없게 웃기는 결말.

브루클린을 읽고 이어 읽었는데 아무래도 정서적인 유사성이 있어서라는 추측이 있어서였는데, 
자본주의 관점에서의 계층 차이가 확실히 있으나, 정서라는 것이 연결되어 있다고 느껴졌다.

- 기록, 실로 멋진 단어다. 경기의 수치 따위 말고 진술의 개념인 기록 말이다. 삶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기록. 일기나 수기라는 단어 보다 훨씬 낫다. 일기라는 단어를 보면 캠프장의 여자아이들이 떠오르는데, 꼭 뚱뚱하고 땀 많은 아이들이 투실투실한 목에 열쇠와 자물쇠가 달린 녹색 가짜 모로코가죽 일기장을 걸고 있는 모습이다. 한편 수기라는 단어는 대학에서 문학 시간에 공부한 앙드레 지드나 버지니아 울프, 고리키 혹은 보들레어를 떠올리게 한다. 보들레어의 "광기의 날개가 일으킨 바람이 나를 스쳐 갔다"라는 말이 가슴에 와닿긴 하지만.
어쨌든 기록은 좋다. 기록은 옳다. 그래, 기록하면 좋을 것 같다. 예컨대, 이것은 오늘 아침 7시 22분에 우리 집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기록이다. - 7

- "사실." 조지가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진심으로 당신은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지는 법을 배워야 해."
나는 등을 대고 누워 천장을 응시했다. "당신이랑 그놈의 격언들. 그러는 당신은 그걸 실천하고 있어?"
"노력하고 있어. 해내고 있는 것 같아. 당신처럼 잔뜩 성이 난 채로 돌아다니진 않으니까. 나는 모든 걸 가능한 한 단순하고 간소하게 유지하려고 해."
"신경 쓰고 챙겨야 할 사람이 자기 자신밖에 없으니까 별로 어렵지 않겠지." 나는 씁쓸히 말했다. - 243

- "당신은 정상이 아냐." 조너선 역시 목소리를 한껏 낮추고 말했다.
"아니, 그 반대로 난 너무나 멀쩡해. 사실 내가 정곡을 찔렀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 이 집에서 가스라이팅이 빈번히 벌어지고 있다고." - 326

- "나는 극작가가 아니야." 나는 스커트의 지퍼를 올리며 말했다.
"감당하지 못할 일에 휘말려버린 멍청하고 미친 주부일 뿐이야." - 332

- 조지는 내가 한 가지에 마음을 붙이고 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했지만 과연 그게 무엇일까? 알 수 없었다.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결국 벤치에서 일어나 집에 돌아왔고 여기에 쓰기 시작했다. 이 정도 쓰고 나니 이제 내가 무엇을 결정할 것이며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알겠다. 누구? 그게 누구냐고? 완벽 주부 타비타 트윗칫 댄버스가 아니면 누구겠는가. 앞치마를 두른 여자. 쇼핑 목록을 쓰는 여자. 열쇠 다발. 그게 나다. 내게 딱 맞다. 왜 여태 그걸 몰랐을까? 아마도 내가 그런 주부로 사는 걸 조너선이 허락하지 않아서겠지. 르네상스맨에게 어울리는 부인의 모습이 아닐 터이니까. 글쎄, 나는 조너선이 원하는 이미지에 부합하려고 노력해봤다. 온갖 이미지를 다 시도해보았지만, 이제 알겠다. 나는 전통적인 주부가 될 것이며, 조너선은 그게 싫어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완벽 주부 타비타 트윗칫 댄버스로 거듭나자. - 363

- 바퀴벌레는 숫자 사이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미친듯이 기다가, 다음 순간 팔짝 뛰어 날카로운 모서리에 긁히지 않고 유리판 위로 올라왔다. 그러고는 시계 옆면을 타고 조리대로 내려간 뒤에 벽으로 기어가 타일 사이의 회반죽 구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상처는 입었을지언정 기죽지 않고, 처자식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간 것이다. - 378

2026. apr.

#미친주부의일기 #수코프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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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한 편 읽을 시간 ㅣ 난다시편 5
정일근 지음 / 난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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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목서, 은목서의 향기가 가득 느껴진다.
입말 같은 날 것 같은 시들.

한 달간 쏟아낸 시들로 엮은 시집이어서인지
단 한편의 길 시를 읽은 듯한 기분도 든다.

마산, 바다, 금목서, 은목서, 겨울의 이미지들.

- 훅, 시간은 가고 툭, 시절은 익어 저물지만
여전히 나는 나이다.
그래서 시를 쓴다. - 시인의 말 중

- 십일월로 가면 겨울이 온다고
사랑할 꽃이 없다고 절망하지 마라
인디언이 말하지 않았는가
십일월은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 달이라고
우리 생에서 사라진 것은 없다고
이렇게 피울 늦꽃 있으니
생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 늦꽃 중

- 다 꺽어와야 전부 아니지
꽃 한 송이로
꽃밭 다 보여줄 수 있듯
시는 씨앗 한 톨로
숲의 전부 다 보여주지
하나로 열, 백을 보게 하고
별에서 우주로, 우주 안에서 우주 밖까지
우리를 꿈꾸게 하는 거지. - 시가 꾸는 꿈 중

2026. apr.

#시한편읽을시간 #정일근 #난다시편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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