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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뒤락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9
애니타 브루크너 지음, 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평점 :
풍속 소설..
이런 소재가 '문제적'이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니 그렇게 이해하는 걸로
이 이야기를 이해했다.
결혼에 대한 집착이 여성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이던 시절.
호텔 뒤락에 유배당하듯, 도망치듯 도착한 후
직면해야 하는 자신의 상황은 외면하고
투숙객들을 관찰하는 일에 집중하는 주인공 이디스를 보면 흠...
회피형 주인공 그 자체 아닌지.
사랑으로 불거진 개인의 불행을 피해 자의와 타의로 유배 온 장소에서도 끊임없이 사랑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것은,
당시의 시대에서 여성의 운신의 범위가 무엇보다도 사랑의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이지만,
그 모든 사유의 과정이 여성의 독립, 불합리한 세상 속에서 어렵게 자신을 합리화해야 하는 내면이 잘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마지막에 결국 신의 없는 남성에 환멸을 느끼고 집으로 되돌아오는 엔딩이 되는 점은 좀 시답잖게 마무리 짓는 느낌이 들긴 한다.
진보적 관점으로 풀어내기보다는 그저 당시의 사회상이 거울처럼 반영된 이야기.
그리고 재미는 좀... 없는 편.
- 그 속에서 그녀는 자신이 운 나쁘게 저지른 잘못은 잊고 신중하고 착실한 원래의 성품을 되찾을 것이었다. 그 잘못이 한 해가 저물어가는 이 시기에 집에 있어야 할 자신을 사람도 별로 없는 이곳으로, 잠시 동안의 유배생활로 내몰았다. - 10
- 호숫가를 따라 산책하며 이디스는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불합리와 불가피성이 늘 같이하기 마련인 꿈속에서 말없이 걷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속에서 그러듯 목적지가 뚜렷해질 때까지 이 글을 계속 걸어가야 할 것 같은 절망감과 어떤 파국으로 치달을 호기심이 동시에 느껴졌다. - 25
- 토끼들은 책 읽을 시간이 없어요. 그들은 경주에서 이기느라 너무 바빠요. 선전은 모두 다른 방향으로 하고 있지만 거북이야말로 위로가 필요한 존재들이에요.- 33
- 이디스는 깨달았다. 책을 쓰는 일을 입으로 하고 있어도 그것은 거북의 삶이었다. 바로 그것이 자신과 같은 거북들을 위해 소설을 쓰는 이유였다. - 35
- 환자처럼 무거운 몸으로 목욕을 하면서 이디스는 자신에게서 분별력을 뽑아내려고 애썼다. 우울증이 덮치기 전에 기선을 제압해야 했다. 글쓰기를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모든 걸 침착하게 받아들이자, 그녀는 스스로를 타일렀다. 생각하지 말자. 문을 모두 닫자. - 75
-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몸이 떨려왔다. 자신이 저지른 부정한 행위에 생각이 미치자, 자신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으면서 친구가 되어준 훌륭한 여자들을 하찮게 생각하는 자신이 수치스러웠다. 나는 늘 여자에게는 너무 가혹했어, 그녀는 생각했다. 내가 남자보다는 여자를 더 잘 이해하기 때문일지도 몰라. 여자들의 경계심과 참을성과 스스로를 성공한 사람으로 광고해야만 하는 그 필요성까지도 알고 있기 때문에. 실패를 인정해서는 안 되는 여자들의 필요 말이야. 그 모든 걸 너무도 잘 알지.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이니까. - 103
- "당신은 자신이 믿고 싶은 것에 잘못 끌려가고 있으니까요 사랑한다고 수없이 고백하는 사람들 사이에도 완전한 조화란 없다는 걸 아직도 모르나요? 단순히 감정의 단계가 서로 일치하지 않는 탓에 많은 시간과 추측을 낭비하며, 끊임없이 고뇌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단 말인가요? 가볍게 알고 지내는 것이 깊은 열정보다 언제나. 실제로 더 유효하다는 사실을 모른단 말입니까?"
"네, 알고 있어요." 이디스가 우울하게 말했다.
"그러니 그걸 활용하는 법을 배우는 겁니다. 일단 이 세상을 자기 것이라고 마음을 정하고 바라보면, 세상이 얼마나 희망적인 곳으로 바뀌는지 모를 거예요. 일단 자기중심적이 되고 나면 모든 게 다 건강해질 겁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아니면 차라리 하고 싶지 않은 게 무엇인지 결정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지요." - 111
- "사랑 없이 살 수 없다는 건 잘못된 생각입니다, 이디스."
"아니요, 난 틀리지 않았어요." 그녀는 천천히 말했다. "나는 사랑 없이는 살 수가 없어요. 내 말은 사랑 때문에 망가지고 괴상한 징후가 생기고 우스꽝스러워진다는 뜻은 아니에요. 내가 말하는 건 그것보다 훨씬 진지해요. 내 말은 난 사랑 없이는 잘 살아낼 수가 없다는 뜻이에요. 다른 어떤 힘이 있어도 사랑 없이는 생각할 수도, 움직일 수도, 말을 할 수도, 글을 쓸 수도 없고 심지어 꿈도 꿀 수도 없어요. 살아있는 세상에서 배제되었다는 느낌이 들어요. 차가운 피가 흐르는 물고기 같은, 움직이지 않는 존재가 되어버려요. 안에서부터 파멸해버리는 거죠. 내가 생각하는 완전한 행복이란 저녁이면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있는 집으로 돌아올 걸 알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온종일 햇볕 따가운 정원에 앉아 책도 읽고 글도 쓰는 거예요. 매일 저녁 그 사람이 올 거라고요."
"정말 로맨틱한 사람이군요, 이디스." - 114
- 이디스가 지친 듯 말했다.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에요. 나는 네빌 씨나 그의 돈을 좇지 않아요. 돈은 내 손으로 직접 벌어요. 돈은 어른이 되면 누구나 버는 거예요. 그런 식으로 후보자를 탐색하는 여자들의 시각이 나는 싫어요"
"그게 왜 나쁜지 모르겠네요." 모니카가 열의 없이 대꾸하더니 조금 쉬었다 덧붙여 말했다. "남자들도 그러는데요." - 171
- "난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요. 그게 신경 쓰이진 않나요?"
"아니요. 도리어 안심이죠. 난 당신의 감정이 짐이 되는 건 원치 않아요. 낭만적인 기대 없이도 이 모든 일은 가능해요."
이디스는 그를 향해 돌아섰다. 머리카락이 마구 휘날렸고 눈빛은 어두웠고 입매는 씁쓸해 보였다.
"그리고 당신도 나를 사랑하지 않고요?"
네빌 씨가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는 모호함이 전혀 없는 슬픈 미소였다. - 196
2026. j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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