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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라 비스 지음, 김명남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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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그 무엇은 우리를 어떻게 규정하는지.

읽기 전 지레짐작으론 지루하지만 읽어볼 만한 책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짧은 글들로 구성되어, 지루할 겨를 없이 자본주의와 돈의 힘에 따른 세계의 구성들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의미가 널뛰듯 건너뛰기도 하지만, 의식의 흐름에 따른 사고 또한 사회학을 연구하는 일종의 방법론일지 모르겠다. 당연시하는 것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한 그런 방법.

짧아서 속도감 있다는 장점은, 반대로 한 꼭지가 길지 않아 여운을 가질 새 없이 다음 꼭지로 넘어간다는 점일 수도 있다.

시장경제, 자본주의의 안락함을 누리는 계층으로서의 중산층의 위선을 냉소하는 시선이 강하다.
작가 스스로 소유하는 자라는 정체성에 대한 불편한 심리의 기록이기도 하다.


- 우리가 가구점을 방문할 때마다, 나는 이상하고 구체적이지 않은 갈망에 휩싸인다. 나는 모든 것을 원하고,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 17

- 그녀는 모순적인 삶을 살며, 모순된 욕망들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그녀는 더 원하면서도 덜 원한다. 나도 그렇다. - 41

- 그레이버는 우리가 스스로를 소비자라고 여길 때 무언가 파괴되는 것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일 바깥에서도 생산적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 47

- '어쩌면 나는 삶에ㅔ 더 많은 불안정성이 필요한지도 몰라. 어쩌면 나는 지나치게 편안해졌는지도 몰라.' 나는 빌에게 말한다. '아니야, 불안정성에는 대가가 있어.' 빌이 내게 일깨운다. 그리고 지나치게 취약한 상태라는 것도 있다고 알려준다. 빌은 잠시 말을 멈춘 뒤, 사실은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고 고백한다. 나는 그에게 설명해 주려고 하다가 사실은 나도 모른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자본주의가 어디서 혹은 언제 시작되었는지도 잘 모른다. 우리는 자본주의를 알아본 뒤에 다시 이야기하자고 약속한다. - 64

- 예술과 여성은 둘 다 <쓸모없지만 예쁘>고 <사소한>것으로 치부되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내가 마음에 걸리는 단어는 <교양>이다. 나는 그것과 무관하게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나는 그것을 추구한다. - 87

- 그 속에서 웬 여자가 걸레를 들고 울타리에 기대어 선 채로 생각에 잠겨 있다. 그 위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다. <계급 의식이란 당신이 울타리의 어느 편에 있는지 아는 것이다.> - 102

- <풍요한 사회>에서 갤브레이스는 미국에는 더 이상 유한계급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부자들은 일한다. 적어도 바쁘게 활동한다. 여가의 유행은 끝나고 새로운 계급이 등장했으니, 돈 때문에 일하는 것이 아닌 사람들의 계급이다. 그들도 급여를 받지만, 급여가 핵심은 아니다. 그들은 충족감을 느끼기 위해서 일하며, 일 자체를 보상으로 여긴다. 급여는 부수적인 문제인데, 하지만 갤브레이스가 지적하듯이 <위신의 지표>이기는 하다. 그리고 이 계급 사람들에게 위신은 존경과 더불어 만족감의 원천이다. 그들은 급여를 많이 받고 싶어 하지만, 돈이 동기냐는 말을 들으면 모욕감을 느낄 것이다. 갤브레이스에 따르면, <그런 것이 바로 새로운 계급의 노동이다. 귀족이 봉건적 특권을 상실할 때 느꼈을 슬픔도 이 계급 사람이 오직 급여만이 보상인 평범한 노동으로 전락할 때 느낄 슬플에는 댈 수 없다.>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면서 얼굴을 붉힌다. 들킨 기분이다. 그리고 이 챕터 전체를 다시 읽다가, 갤브레이스는 이 새로운 계급을 전도유망한 사건으로 본다는 점을 깨닫는다ㅏ. 갤브레이스는 풍요한 사회라면 그저 일일뿐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의 수를 지속적으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표준 노동 시간도 줄여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계급은 자신의 즐거운 노동 시간 중 일부를 모든 사람이 더 즐겁게 일할 방법을 찾는 데 써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 122

- 사람들은 영국 소유의 인도 농장에서 재배된 차에 카리브해 농장에서 노예들이 생산한 설탕을 타서 마셨다. 차는 식사 대용으로는 부실했으나 그래도 따뜻하고 달콤했다. 그것은 위안이자 낙이었고, 노동자가 다른 노동자들이 겪는 박탈 덕분에 누리게 된 일상의 사치였다. 오늘날 우리가 마시는 것도 여전히 식민주의의 유산이다. - 162

- 모든 종류의 소유권은 잘해 보아야 위태로운 사업이고, 최악의 경우에는 일종의 자기기만이다. - 167

- 나는 남자가 여자에게 집안일을 다 맡겼더니 생산성이 높아지더라는 이야기가 왜 새로운 소식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곧 이것이ㅣ 발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우리가ㅏ 예전에는 이것을 그냥 결혼이라고 불렀으나 지금은 지배라고 부른다는 점이 뉴스인지도 모르겠다. - 178

- 허먼 멜빌의 소설 <필경사 바틀비>의 부제는 <월 스트리트 이야기>다. 바틀비는 수동적 저항자다. 노동자인 그는 처음에 특정한 일을 하지 않겠다고 거부하고, 그다음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겠다고 거부하고, 급기야는 해고되기조차 거부하는데, 매번 <저는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라고 공손하게 말함으로써 거부한다. 그의 저항에는 목적이 없으며, 그가 저항 외에 딱히 무엇을 성취하려는 생각도 없는 듯하다. 나는 바틀비가 감옥에서 아사한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상기시킨다. 왜냐하면 그의 이야기가 왠지 내게는 여전히 승리처럼 읽히기 때문이다. 제인 데마레는 <바틀비의 자유는 인생과 양립할 수 없는 종류>라고 말한다. - 222

- 메리엄-웹스터 사전이 선정한 <오늘의 단어>는 <위태로운 precarious>이었다. 덕분에 나는 이 단어의 원뜻은 <타인의 의지나 괘락에 의존하는 상태>라는 것을 배웠고, 이 단어가 <기도 prayer>를 뜻하는 라틴어에서 왔다는 것도 배웠다. 위태로움은 도처에 있는 듯 모인다. 어쩌면 그것은 애나 로웬하웁트 칭이 말했듯이 <우리 시대의 조건>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또한 프레카리아트라는 계급 전체를 규정하는 특징이다.

- 정말로, 문제는 사치였다. 그리고 내가 이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다는 점도 문제였다. <풍요한 사회에서는 사치품과 필수품을 제대로 구별할 수 없다. > 존 케네스 캘브레이스는 이렇게 말했다. 내 삶의 작은 필수품들, 독서와 글쓰기는 모두 사치였다. 내가 글로 쓰는 순간도 모두 사치였다ㅏ. 그런데도 글쓰기 자체는 내게 필수로 느껴졌다. 필수와 사치를 제대로 구별할 수 없었으므로, 나는 이 단어와 씨름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사전을 찾아보니, 사치란 <대단히 안락하고 헤프게 생활하는 상태>라고 적혀 있었다. 어쩌면 내가 사치를 정의하는 데 애먹었던 것은 내가 대단히 안락한 상태로 살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들은 이 상태를 중산층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우리가 중산층이나 부유층을 묘사할 때 흔히 쓰는 완곡어법이 <안락하다>는 것이다. - 370

2026. a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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