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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 신부 1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44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이은선 옮김 / 민음사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추천 추천 도서!
읽는 내내 흥미진진했고, 읽는 기간이 한창 브리저튼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엄청났던? 시기였는데, 브리저튼을 시청하다 말고 이 책을 다 읽어버릴 정도로 재밌게 읽었다.
지니아를 둘러싸고 피해자라 주장하는 토니, 캐리스, 로즈의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실상 모두 질리는 캐릭터들이라, 적당히 현실적이고 믿을 수 없으리만치 맹하다고 평가할 수 있는.... 그래서인가 질색하면서도 즐겼달까.
여성과 남성 모두 스테레오 타입이랄 수 있는 진상들의 집약체.
고등학생 정도의 자녀를 둔 나이의 여성들이 스스로 지나치게 나이 듦에 대해 정의하는 게 좀 의아스럽기는 했다. 캐나다의 90년대는 그럴 법 했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는 결국 웨스트를 용서하지 못했으면서도 비위를 맞춰주며 살아가는 토니.
제일 한대 때려주고 싶은 캐릭터는 웨스트...
로즈는 지니아의 경험에 압도되었기 때문에,
캐리스는 지니아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다고 과신했기 때문에,
토니는 지니아와 남자에게 맹목적으로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당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어쨌든 도둑 신랑의 컨셉을 도둑 신부로 바꾸어 전복을 꾀했더라도 피해자는 오롯이 여성으로 남게 되는 아이러니가 있다.
'남자들도 당해보라지'라는 마인드는 결국 '동족' 여성에게도 해를 입힌다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부정적인 에너지에 대해 환기하게 된다.
- 까마득한 옛일인데 이유가 무슨 상관일까. 참변은 참변일 뿐이다. 상처는 상처로, 죽음은 죽음으로, 잔해는 잔해로 남을 뿐이다. 원인을 왈가왈부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 지니아는 그대로 방치해야 할 기분 나쁜 사건이었다. 그녀의 진의를 파헤친들 그게 무슨 소용이겠는가. - 14
- 문제는 어디서부터 시작하느냐다. 시작할 때 시작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끝날 때 끝나는 것도 아무것도 없다. 모든 일에는 서론이 필요하다. 서론과 후기와 동시에 발생한 사건들을 기록한 차트가 있어야 한다. 그녀가 학생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역사는 하나의 건축물이다. 어느 지점으로든 들어갈 수 있고 모든 선택이 임의적이다. 그래도 연속성을 깨뜨리고 시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 기준점으로 삼을 만한 순간은 있는 법이다. 우리는 그런 사건들을 돌아보며 그때부터 모든 게 달라졌다고 말한다. 그런 사건들이 출발점이 되고 종착역이 된다. 이를테면 탄생과 죽은, 결혼이 그렇다ㅏ. 전쟁 역시 마찬가지다. - 14
- 토니는 지니아가 언제나 그들 옆에 앉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ㅏ. 우리가 그녀를 붙잡고 있어. 그녀 이야기를 입에 올리고 있어. 놓을 수가 없는 거야. - 58
- 캐리스는 오래전에 기독교를 포기했다. 성서가 고기들로 넘쳐나는 게 한 가지 이유였다. 어린양, 수송아지, 비둘기 등 온갖 동물들이 제물로 바쳐진다. 카인이 채소를 제물로 바쳤을 때 하느님은 그것을 거부하는 우를 범했다. 그리고 피도 너무 자주 등장한다. 성서 속 사람들은 시도 때도 없이 피를 흘리고, 손에 피를 묻히고, 개한테 피를 핥게 한다. 학살도 너무 자주 등장하고, 고통도 너무 자주 등장하고, 눈물도 너무 자주 등장한다.
동양의 종교가 훨씬 더 차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 적도 있었다. 그래서 한때 불교신자로 지냈지만, 알고 보니 지옥이 너무 많았다. 대부분의 종교는 처벌에 너무 집착한다. - 119
- 그녀는 난생처음 이런 회의에 참석했던 때를 기억하고 있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사업이란 뭔가 신비롭고 그녀가 감히 넘볼 수 없는 영역이며, 아버지가 남몰래 문을 닫고 하는 일인 줄 알았다. 아버지들만 할 수 있고, 여자들은 너무 멍청해서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남자들이 한 방에 모여 앉아 미간을 찌푸리고 금 펜촉이 달린 만년필을 만지작거리며 상대방을 속일 방법을 열심히 연구하는 것이 사업이었다. 그녀는 놀라서 자꾸만 벌어지는 입을 닫느라 애를 먹었다. 여보세요! 이게 끝이에요? 맙소사, 이 정도는 나도 할 수 있겠네! 그녀는 정말 잘하고 있다. 대다수의 분야에서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뛰어난 수완을 발휘하고 있다. - 175
- 역사는 언제나 시간을 거슬러 기록된다. 토니는 이 문장을 거꾸로 적는다. 우리는 늘 어떤 의미심장한 사건을 선택해 그 원인과 결과를 분석하지만, 그 사건이 의미심장한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우리다. 우리가 이편에 있다면 그 사건과 사건의 당사자들은 저편에 있다. 그들은 오래전에 사라진 과거인 동시에 우리 손 안에 있다. - 201
- "여자로서 감당해야 할 별것 아닌 형벌인걸, 뭐."
토니는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 형벌이기는 하지만, 별것 아닌 형벌. 괴로움과 번민은 사실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무시할 수 있는 문제였다. - 282
- 지니아는 사회체제를 거부하는 데에도 비용이 든다고 한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라 대가가 따른다. 해방의 선봉에 선 사람들이 제일 먼저 총알을 맞는 법이다. - 303
- 하지만 토니는 한편으로 그녀가 대단하다고도 생각한다. 못마땅하고 당황스럽고 과거에 겪었던 모든 가슴앓이가 되살아나기는 하지만, 지니아를 응원하고 격려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녀를 대하 소설의 주인공으로 만들고 싶은 마음, 용감하고 거의 모든 것을 경멸하며 탐욕스럽고 제멋대로 구는 그녀에게 동참하고 싶은 마음. 어머니가 눈썰매를 타고 언덕 밑으로 사라졌을 때 느꼈던 심정과 비슷하다. 눈썰매를 타고 언덕 밑으로 사라져 가는 어머니를 보며 "안 돼! 안 돼!"와 "잘한다! 잘한다!"를 동시에 외쳤던 그때하고 비슷하다. - 331
- "너는 다른 사람들이 너를 어떤 존재로 생각했으면 좋겠어? 사랑스러운 사람, 존경하는 사람, 무서운 사람, 셋 중에서."
"존경하는 사람. 아니, 사랑스러운 사람."
"나는 아니야. 나는 무서운 사람이 되고 싶어."
"왜?"
"그래야 훨씬 효과적이니까. 사실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는 건 그것 하나뿐이야." - 339
- 그 여자, 질투가 나서 그랬을 거야. 사람들은 그렇게 말한다. 질투 같은 건 매우 하찮은 문제라는 양. 하지만 그렇지 않다. 질투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최악의 감정이다. 일관성 없고 혼란스러우며 수치스러운 동시에 망원경 너머로 바라본 풍경처럼 독선적이고 집중적이며 유리처럼 단단하다. 고도의 집중감과 고도의 무력감이 혼재한다. 질투로 인상 살인이 그렇게 많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죽이는 것보다 궁극적인 지배는 없을 테니 말이다. - 11
- 나는 예전부터 독실한 신자가 못 됐다. 내가 입버릇처럼 말하잖니, 하느님이 누구 것이냐고. 세상에 종교가 없었다면 그렇게 시끄러울 일은 없었을 거다. - 103
-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없어. 그 애를 없앨 수도 없고. 지금은 사라지더라도 언제든 다시 돌아올 거 아냐. 지니아는 주어진 운명이야. 날씨처럼 우리와 상관없이 그냥 존재하는 거지. - 273
- 토니에게 지도가 필요한 이유는 그녀가 항상 지도를 보는 이유와 일치한다. 지도를 보면 지형을 보고 상상하고 기억할 수 있다. 그녀가 기억하는 것은 지니아다. 그녀는 지니아를 기억할 책임이 있다. 끝을 맺어 줄 책임이 있다. - 309
- 적은 누구였을까? 그녀는 과거의 어떤 원한을 갚으려고 했던 걸까? 전장은 어디였을까? 한군데는 아니었다. 온 사방과 이 세상이라는 조직 자체가 전쟁터였다. 아니면 눈에 보이는 곳이 아니라 뉴런 사이, 타올랐다 사그라지는 뇌의 그 조그마한 불길 사이였을 수도 있다. 지니아한테는 전깃불 같은 꽃이 어울릴 것이다. 누전처럼 밝고 치명적인 꽃, 강철을 녹여 만든 엉겅퀴처럼, 불똥처럼 씨를 터뜨리는 꽃. - 318
2026. mar.
#도둑신부 #마거릿애트우드 #민음사 #모던클래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