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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편에서 이리가 ㅣ 오늘의 젊은 작가 53
윤강은 지음 / 민음사 / 2025년 10월
평점 :
황량함 속에서도 희망을 전해주는 디스토피아 세상의 사람들.
비교적 젊은 세대인 그들이 겪고 헤쳐나가야 할 세상은 이미 너무나도 망해버린 세계.
그 세상의 사람들은 기저에 이미 포기와 체념을 지닌 채로 나아가야 하는 삶이다.
온실마을, 한강지역, 압록강 기지로 구분되는 미래의 세계는 한정된 자원으로 살아가는 것 외에 기댈 것이 없는 곳이다.
그 중 유목민의 성향의 캐릭터 넷이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그들의 서늘하고 가라앉은 감정들이 언제, 어느 지점에서 소용돌이 치는지 지켜보는 일.
그들의 지켜나가야 할 가치들이 있고 이것은 개인의 것이기도, 넓게 보면 국가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단순한 디스토피아 생존기보다는 좀 더 확장된 사고를 요구하는 것 같다.
배경이 좀 더 구체적인 한반도이기에 더 몰입이 쉽기도.
이상으로 여기는 사회를 구축하려는 인간의 욕망이 헛될 뿐이라는 체념과
그럼에도 인간에게 싹트는 작은 희망에 대한 기대.
인물들 마다의 전사나 에필로그들이 궁금해지는 좋은 캐릭터들이라는 점도 좋았다.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가 이렇게 한 번씩 기대 이상일 때가 있어 좋다.
윤강은, 기억해둬야지.
- "넌 생각이 너무 많아. 그거 하나가 흠이야."
그 말은 지금까지 기주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생각이 많은 것이 흠이라면, 누군가를 혐오하지 않을 이유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군인답지 못한 일이라면..... 나는 생각을 멈추어야 하는가.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진작 그렇게 했을 텐데, 기주는 좀처럼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지 못했다. - 41
- 세상은 지구의 온도와 무관하게 점점 망해 갈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인류가 지금처럼 분열되어 싸운다면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더더욱 없다. 인류의 멸종을 막을 수 없다. 이대로 무력하게 사라지고야 말 것인가. - 96
- 좋은 사람. 유안은 그 말을 곱씹었다. 도진은 좋은 사람이었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라고, 장난으로라도 함부로 하지 말라고 말하는 사람. 진심으로 모두를 그렇게 대하는 사람. 그렇게 더 많은 존재를 기억하려 했고 기억해 온 사람. - 132
- 유안은 한동안 외투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조그만 견과류 아니, 씨앗을 되새겼다. 비록 맛을 보지는 못했지만 손에 쥐었을 때의 부피감과 감촉을 기억했다. 그렇게 잠시 상상하는 것만으로 생명도감에 기록된 식물 중 하나인 복숭아는 여타 낯선 생명체와는 달리 유안이 아는 것이 되었다. 그야말로 실체 있는 생명체가 되었다. 살아 있었던, 혹은 살아 있는 것이 되었다. 유안은 누군가 이 생명도감을 집필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 마음을 알 것 같았다. 대단한 사명감도 이타심도 아닌, 그저 잊고 싶지도, 잊히고 싶지도 않은...... - 133
- 유안은 씨앗을 떠올려 보았다. 눈 속의 씨앗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웅크리고 때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존재들. 낯선 욕망에 가슴이 세차게 두근거렸다. 그런 존재들을 더 알고 싶었다. 기억하고 싶었다. - 141
- 살아 있는 한 기억할 수 있다. 기억은 사라진 것들을 되살릴 수 있다. 지금 이곳에 없더라도. - 156
- 잊힌 것들에 대해 쓰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소설이다. 언젠가부터는 기억에 대해 쓰고 있다고 느꼈다. - 작가의 말 중
2026. f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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