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걷으면 빛
성해나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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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모노 이후 그저 팬이 되어 버린 작가 성해나의 다른 책들을 하나씩 찾아 읽고 있다.

최근작과 비교해서 감상을 말하자면 조금 더 어둡다?는 느낌. 큰 차이는 아닌 미묘한 어두움.

화양극장과 오즈가 가장 좋았고, 그 이유는 아무래도 두 세대 여성의 연대, 연결이기 때문. 특히나 가족이 아닌 다른 세대의 교류라는 측면.

나의 경우 엄마 세대와의 감정적 교류에 도달하기 전에 엄마가 돌아가셨는데, 엄마의 젊은 시절을 집요하게 궁금해 할 나이가 되기 전에 겪은 이별이라 너무 안타까운 마음과 후회스러운 마음이 들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에 좀 더 마음이 쓰이지 싶다.
이제는 엄마의 역사를 세세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영영 없다는 아쉬움. (아빠도 그렇고...)
누군가를 그런 측면에서 이해하고 격려를 할 수 있다는 점이 몹시 부러운 것이다. 그것이 가상의 인물일지라도.

ok boomer, 괸당, 당춘은 기성세대의 당혹감에 초점을 맞춘듯한데 읽으면서도 양측의 심리적 어색함을 동시에 느끼는 나는 어떤 위치인지 애매모호하다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역시나 좋은 작가고, 장편을 기대~~

- 힘들면 얘기해도 돼. 우리가 다 들어줄게. 우린 이해해.
너의 불행을 기꺼이 견딜 수 있다는 우월감, 나만 딱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는 안도감. 나를 위해 기꺼이 울어주던 이들에게서 그런 마음을 엿볼 때마다 나는 외로워졌다. - 12, 언두

- 베란다로 가더니, 유칼립투스 화분 뒤에서 말보로 갑을 꺼냈다. 엄마가 흡연자라는 사실을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얼떨떨해진 내게 엄마가 말했다.
넌 아무나 비겁해질 수 있는 줄 아니.
그녀는 담배에 불을 붙인 뒤 한 모금 깊이 빨아들였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거야. 난 그게 안 되는 사람이고. - 34, 언두

- 좋은 영화니까요. 무엇보다 나만큼 나이가 들면 그 정도 시간은 아무것도 아니게 여겨져요.
젊은 시절의 조급과 불안은 나이가 들면 다 헛된 것이 되어버린다고, 지금의 넉넉함이 좋을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자주 옛날이 그립다고 이목씨는 말했다. 그 말에 경은 자신도 모르게 대꾸했다.
전 나이 들어도 지금이 그립지 않을 것 같아요.
왜요?
지금까지 내 인생은 거하게 말아먹은 영화 같거든요. - 65, 화양극장

- 나는 이제 살아내지 않고, 살아가고 싶어요. 견디지 않고 받아들이면서. - 92, 화양극장

- 너는 꿈이 뭐냐. 타투...... 그거냐?
없어요. 타투는 할머니까지만 하고 접으려구요. 어차피 재능도 없고.
잠시 생각하다 덧붙였다.
그리고 나는 꿈, 희망, 그런 말 싫어해요. 나한테 해준 게 없거든요 그게.
어둠 속에서 할머니는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너 꼭 겁쟁이 사자 같다.
그녀는 쉽게 겁을 내고 안주하는 <오즈의 마법사> 속 겁쟁이 사자에 대해 이야기했다. 용기를 가지기 위해 에메랄드 시티로 떠나는, 막막한 여정 속에서 자주 겁을 내고 움츠러드는 겁쟁이 사자에 대해.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괜히 퉁을 놓았다.
겁내고 울고 짜고. 그런 건 하나도 멋지지 않아요. 찌질하지.
우툴두툴한 상처 위로 부드럽고 따뜻한 손이 지나갔다.
난 너 그거 계속했음 좋겠다. 타투인가 그거...... 도망치지 말고.
내 허벅지에 손을 얹은 채, 할머니는 말을 이었다.
그거 할 때 너 참 좋아 보이더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멋쩍게 있다 할머니의 손 위에 내 손을 조심스럽게 포갰다. 할머니의 손이 상처를 더듬을 때마다 내 손도 같은 방향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오십 비피엠의 고요한 박동 속에서 우리는 손을 겹친 채 오랫동안 서로를 마주보았다. - 320, 오즈

- 젊었을 때도 남한테 속 얘길 잘 못하는 사람이었어, 니 엄마가.
우리가 남이야?
내 말에 아버지는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가족도 뭐 결국에는 남 아니겠냐. - 346, 김일성이 죽던 해

2026. feb.

#빛을걷으면빛 #성해나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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