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 문학과지성 시인선 542
허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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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기도 전에 이미 별 다섯을 주고 읽어나가는 시집.

어쩌면 이렇게도 시리게 다가오는지 모를 일이다.

모든 시에 플래그를 다닥다닥 붙이고
결국은 그것들이 의미 없어지게 되고...

신의 의미에 대해 언급되는 마지막 부는 조금 취향 밖이지만
그러나 해설을 통해 시인을 더 알 수 있는 지점.

늘 좋은 시인.

- 소식은 없었다
밤에 생긴 상처는 오래 사라지지 않는다
도망치지 못했다
2020년 6월
허연 - 시인의 말

- 트램펄린에 날 던지면서 말한다
"말해줘 가능하다면 내가 세상을 고르고 싶어"
생각이 있으면 말해주리라 믿었지만
트램펄린은 그냥
나를 떨어뜨리고
미워하지도 않으면서 나를 떨어뜨리고
그러면 내 처지도 최선을 다해 떨어지고
세상에서 트램펄린이 모두 사라졌으면 좋겠다 - 트램펄린 중

- 지구가 돈다는 사실을
보통은 별이 떠야 알 수 있지만
강 하구에 찍힌
어제 떠난 철새의 발자국이
그걸 알려줄 때도 있다
마을도 돌고 있는 것이다
(...)
이 거리에서 이런저런 생들은
지구의 가장자리로 이미 충분하다 - 어떤 거리 중

- 십일월의 나는 나쁘게 늙어가기로 했다
잊고 있던 그대가
잠깐 내 안부를 들여다본 저녁
창문을 열면
늦된 날벌레들이 우수수 떨어지곤 했다
절망의 형식으로 이 작은 아파트는 충분할 걸까
한참을 참았다가
뺨이 뜨거워졌다
남은 것들이 많아서 더 슬펐다
(...)
미친 듯이 슬펐는데 단풍은 못되게 아름다웠다
신전 같은 산 그늘이 나를 덮었고
난 죽지 못했다 - 십일월 중

- 내일을 기다리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아
당신은 모르지
내일에도 얼마나 많은 종류가 있는지

바람이 분다
새벽 1시의 바람이 분다 - 새벽 1시 중

- 뜨겁게 달아오르지 않는 연습을 하자. 언제 커피 한잔 하자는 말처럼 쉽고 편하게, 그리고 불타오르지 않기. -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 중

- 소금을 물에 녹이듯
굴욕을 한입 가득 물고
파도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순간이 있다

나는 어두운 열매를
눈물 없이 먹을 수 있을 줄 알았고
나는 여전히 당신의 밀도에 녹는다 - 바닷가 풍습 중

- 그 어떤 실망도 없이 강물이
내 앞을 떠나는 것을 보고 있다
어떤 불안도 없다
나보다 더 추한 미래는 알지 못하므로
기록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강물이 그랬던 것처럼 - 열대 중

- 스쳐 가는 생각들
순서 없이 파고드는데
시가 아닌 건 없다. 잠들기 다 틀린 새벽
아무것도 남지 않고 시가 남았다. - 24시 해장국 중

- 그해에는
적절치 않은 음표들이
자신의 처지를 저주하다
무한대로 아름다워지곤 했다 - 트랙 중

- 나는 완성이 아니었구나. 내게 절창은 없었다. 이제 내 삶을 뒤흔들지 않은 것들에게 붙여줄 이름은 없다. 내게 와서 나를 흔들지 않은 것들은 모두 무명이다. 나를 흔들지 않은 것들을 위해선 노래하지 않겠다. 적어도 이 생엔. - 절창 중

- 생각해보면
너무 많은 바람, 너무 많은 빗물
이런 게 다 우리를 힘들게 했지

우리의 한숨이 너무 깊어서
우리는 할 일을 다한 거 같았고
강변에서 일어나기로 했지 - 이별의 서 중

2025. dec.

#당신은언제노래가되지 #허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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