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신비 문학과지성 시인선 627
백은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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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림노래 같기도, 동화 같기도...

반복에 지쳐가며 읽다가
4부의 시들이 훅 들어오는 느낌으로 좋아져서
기분 좋은 놀람이 있었다.

- 뒤집힌 치마 / 노래가 완성되면 / 거꾸로의 세계에서
침묵을 배운다는 거 / 진짜 좆같아 - 소녀 경연 대회 중

- 영원과 순간은 한날한시에 태어난 쌍둥이라는 걸
이해하지 못해서
빛이 하는 게임에 모든 걸 걸고
파산하기를 반복했다 - 비신비 중

- 한없이 길어지는 파처럼 변곡점 위에서 우리는 왈츠를 추고, 누가 내 무엇을 가져갔는데 나는 그게 뭔지 모른다. 나는 내가 겪는 일들을 때로 믿을 수 없어.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가짜인지 알 수 있는 센서가 몸 안에 있으면 좋겠다. - 누가 내 무엇을 가져갔는데 나는 그게 뭔지 모른다 중

- 가끔 문을 열고 나가면 다른 세상이 있을 것 같아서
끝없는 숲 바다
상상은 얼마나 볼품없고
아름다운지 - 세계의 배꼽 중

- 어쩐지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일으켜 세워준다면 다시
넘어질 수 있을 텐데 - 메커닉 로맨스 중

-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 어떤 노래는 사라진 자리에서 불쑥 솟아 내내 흐르다가 꿈에 정박한다고 그걸 번역하는 두 손이 오래도록 만지던 어둠이 있다고. - 꿈의 노래 중

- 나는 내내 걷고 있었는데
건물이 쏟아지고 나무가 흔들리고
손끝부터 닳아가는 웃고 있는 사람들
풍경이 표정을 바꾸며 곁을 스쳐 지나가
(...)
다 알아버린 얼굴로
돌아오는 길 이제
그런 노래는 부르지 말자 - 비신비 중

- 나의 취미는 기만이고 나의 특기는 절망이다. 혹자는 나를 보고 할 줄 아는 게 절망뿐이라고 했다. 중요한 건 절망이 아니라 절망이 도래하는 길인데, 왜 모를까. 진짜 절망뿐이라면 단 한 마디 절망이라고 쓰면 될 텐데. 내가 이런 얘길 하면 너는 갑자기 조용해진다.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는 사람. 아주 조금씩 움직여 결국 태산을 들어 올리는 사람. - 의미없는 삶 중

- 그런 이야기는 너무 쓸쓸해서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지. 난 사실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의 돌림노래 같다고 생각했어. 어떤 사람은 노래를 들어. 내내 무엇을 하든 배경 음악처럼 삶을 끈질기게 따라다녀. 그래서 받아 적는 거라고. 평생 자신의 노래를 눈치채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는 사람도 있겠지. 노래를 듣는 사람은 평생 노래를 온전히 해석해내는 법에 몰두하며 반복하게 되는 거고. 그건 어쩌면 춤이 될 수도 책이 될 수도 때론 그저 삶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이 될 수도 있겠지. 그런 사람들은 전부 비슷한 지점을 공유한다고 생각했어. 듣는 사람, 듣지 못하는 사람. 어쩌면 듣는 일은 가혹한 형벌 같기도 축복 같기도 해. 아무것도 모르고 사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는데. 어둠 속에 잠겨 생각하게 되잖아. 어째서 이 모든 것을 알아버린 걸까. - 노래를 듣는 사람 중

2026. jan.

#비신비 #백은선 #문학과지성시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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