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만 꿈만 꾸자 문학동네 시인선 231
조온윤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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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인 상상력과 표현들이 콕콕 찌르듯 다가왔다.

일면 초등학교 선생님 같은 느낌을 주는 시.

무언가의 속성에 대해 곰곰이 깊게 곱씹게 되는 시.

- 두드리는 사람은 없었지만
문을 열었어
누군가 문틈에 끼워둔 햇빛이
발밑으로 툭 떨어졌지

쪽지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네
너무 오래 닫혀 있던 시간에 대해
아무것도 밀고하지 않겠다는 듯이

굴러갈 용기가 없어 멈춰 있는 공처럼
웅크려 있던 밤에 대해서는 오로지
나의 기록에 맡기겠다는 듯이 - 아키비스트 중

- 그리고 언젠가 눈높이만큼 자란 내가 창가에 다가가
네 어깨를 지그시 누른다면
나눠줄 수 있겠니?
네가 읽는 책에 어떤 절망이 쓰여 있는지
네가 있는 세상에 어떤 절망이ㅣ 휘날리고 있는지

우리는 끝나지 않는 장면을 펼쳐두자
귀퉁이에 가만히 손가락을 얹고
같은 쪽을 오래도록 바라보자 - 생각하는 문진 중

- 인간의 내면은 아무도 모르게
썩지 않는 글자를 유기하는 강물이거든
누군가의 밑바닥을 보고 난 후에는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어
저 위로 돌아갈 수가 없어

그건
깊은
자기
혐오
저기
저 아래
어둡고 축축한 굴속에 빠져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있어 - 깊이에의 연구 중

- 가로수의 그늘을 훔치던 한여름을 지나
도난 방지기를 무사히 통과한 기분으로 살지
가난 장마 해변 연민
아름다운 돌인 줄 알고 몰래 쥐고 있던 것들을
여전히 품 안에 감추어두면서
빛의 색출이 뜨거운 날에는 마음을 숨죽이지 - 여름 비행 중

- 나는 따뜻한 쓰레기
누군가 공중에 매달린 마음으로 쥐고 있던 우산 한 자루
언젠가, 주머니에 넣어두고 잊어버린 손들, 손가락들
오랫동안
비에도 바람에도 지고 말았지
도깨비처럼 찾아오는 미움, 미움에게도 - 비와 현실 중

- 우리도 발자국 화석을 만들 수 있을까
그러면 저 자리에 영원히 남을 수 있을 텐데
그러기에 우리 몸은 너무 가볍네
멸종을 모르는 것처럼 무구하네 - 소리 헤엄 중

- 세상의 모든 가족은
신의 탁란에 속아넘어간 바보들
한 지붕 아래 넣어두면 그게 사랑인 줄 알지 - 탁란 가족 중

- 음악이 담긴 책에는 음악의 부호가
고독이 담긴 책에는 고독의 부호가 부여된다
사람들은 분류에 의존하여 서로를 찾는다

그렇다면 이 책은 사랑에 관한 책이다
나는 오래 읽을 것이다 - 사랑의 분류 중

2025. nov.

#자꾸만꿈만꾸자 #조온윤 #문학동네시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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