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약과 공터 문학과지성 시인선 624
허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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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쁘고 슬픈 시가 슬프고 안쓰러운 시로.

허무함이 짙다가도 생의 한 구석을 깊이 찌르는 시들.

시집 전체가 다 좋기 어려운데...
그걸 해내는 시인, 허연.

너무 좋았다. 강력 추천.

지리멸렬하다는 것 이라는 시에 떠난 내 고양이 에코의 이름이 등장해서 무척 기쁜 마음이 들었다가 그리움에 조금 슬퍼졌다.

- 잊지 않고 흐르는 것들에게 고함
그래도 내가 노을 속 나비라는 생각 - 시인의 말

- 살았던 날들을 헤아려보면
어떤 날은 셀 수 있었고
어떤 날은 셀 수 없었다.

나무는 바람에 절을 하다 말고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듯
제단으로 들어갔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것들의
선한 눈망울이
하늘을 올려다볼 때

마당에 널어놓은 홑이불이
천천히 흔들릴 때

사소한 슬픔이 새 한 마리와 함께
날아갔다.

너에게 시시한 기분은 없다. - 숯 중

- "슬프겠구나"라고 말하면
슬퍼지는 것들이 있었다. - 산을 넘는 소년 중

- 모닥불을 보고 찾아온 길고양이가 있었다.
캠핑 오는 사람마다 이름을 지어줘서 고양이 이름인 한 백 깨쯤은 된다고
캠핑장 아주머니가 말했다.

우리는 고양이에게 에코라는 이름을 붙였다. 에코는 우리 텐트에 올 때만 에코였다. 에코는 우리 구역에선 한 번도 빠짐없이 에코였다. - 지리멸렬하다는 것 중

- 베란다에 걸려 있는 빨래들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생은 잠시 초라해졌다가 다시 화색이 돌기도 한다.
경멸할 것은 없다. 어차피 다 노래니까. - 가여운 거리 중

- 나를 내어놓아도
흡족한 일은 찾아오지 않았다
먹고사는 일엔 늘 말문이 막혔다 - 청년기 중

- 세상에 남은 일은
삶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소멸을 바라보는 것이라는 걸 알았다 - 공작도시 2 중

- 동작을 바꿀 때마다 오는 통증이
제게 사는 것에 대해 물었어요
아플 때면 생각할 게 많아져서 바빠요

사는 건 그저 가끔씩 체머리를 흔드는
잊지 못할 기억들에
두 손을 드는 일

경이로운 건 없어요
끔찍한 일이 가끔 있고
대부분은 그저 그래요

생을 바쳐 풀어야 할 문제들도 없어요
답은 다 다르니까요 - 병가 중

2025. oct.

#작약과공터 #허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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