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같은 맛
그레이스 M. 조 지음, 주해연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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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곡진 삶을 살다 떠난 엄마를 기억하는 글.

전쟁과 기지촌 생활, 미국 이민과 조현병.
한 사람에게 닥친 감당하기 어려운 불행들 속에서도 삶을 비관하지만은 않던 사람에 대한 기억이라 숨 가쁘게 읽게 된다.

일본 강제 징용된 가정에서 태어나 한국으로 돌아와, 한국전쟁을 겪으며 가족을 하나씩 잃고, 생활전선으로 뛰어든 전쟁 생존자인 저자의 어머니는 미국인과 결혼으로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려고 노력한 사람이다.
그 시절 백인들의 사회에서 소수자로서 살아오다 조현병이라는 또 다른 불행을 마주하는, 그야말로 소설 같은 인생.
그런 엄마에 대한 진실들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는 저자의 노력이 연구자로서의 의무감이기도 하겠지만, 엄마에 대한 지극한 이해와 사랑이 아닐까 싶어 마음이 몹시 동요되었다.

역사 속에 외면받은 약자들에 대해 읽다 보면 늘 가슴이 답답하고, 해갈되지 않는 울화가 치미게 된다.
전쟁과 더불어 생성되는 기지촌의 존재에 대해 한국 사회는 외면 그 이상의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다는 것을 늘 상기해야 한다. 일제 침략기에 운영되던 위안부라는 성 착취 구조가 일본에 부역하던 군부가 그대로 답습하여 한국전쟁 당시에도 비슷한 체제로 운영되었다는 사실은 여러 연구를 통해 드러나고 증언되고 있지만, 그에 대한 대책, 보상에 대한 이야기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려진 바 없지 않은지. 단지 생존을 위해 기지촌으로 흘러든 사람만 있었던 게 아닌 조직적인 인신매매 납치가 있었다는 사실도 더 연구되고 알려져야 되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조현병이 사회적 고립에서 비롯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깊이 공감한다.
비백인이 극도로 적은 커뮤니티에 어느 날 덜렁 합류한 한국 여성의 고립감과 그 사회 안에 진입해야 한다는 생존적 강박증이 이미 극도의 트라우마로 점철된 삶을 산 사람에게 어떤 작용을 했을지.

무거운 책 읽기이지만, 한 사람의 관심이라도 더 필요한 게 아닐지 하는 마음으로 정독했다.

- 상실의 슬픔을 글쓰기로 달래보려 시작한 프로젝트였지만, 이 책은 때 이른 죽음을 맞이한 어머니, 그리고 어머니와 닮은 사람들을 기리고 애도하는 데 실패한 한미 사회에 대한 정의 회복 프로젝트이기도 했다. - 서문 중

- 그리고 입을 열 때면 두려워진다
우리 말이 들리지 않을까 봐
환대 받지 못할까 봐
그렇다고 침묵을 지킨다 해도
우리는 여전히 두렵고
그러니 입을 여는 게 낫다
기억하면서
우린 결코 살아남을 운명이 아니었음을 - 오드리 로드, [살아남기 위한 호칭기도]

- 엄마는 다시 고개를 끄덕이고, 코를 킁킁거렸다. "나한테 분유를 주더라."
"아, 그래요?" 나는 놀란 척하며 말했다.
하던 생각이 끊긴 듯, 엄마는 잠시 조용해지더니 환각적 몽상에 깊이 빠져드는 듯했다.
"그 맛은 진절머리가 나." 엄마는 말했다. "전쟁 같은 맛이야." - 39

- 일제 강점기는 1945년에 끝났지만 한국이 점령에서 자유로워진 것은 아니었다. 점령국만 바뀌었을 뿐. -48

- 우리 엄마 같은 사람들 이야기도 그 역사에서 지워졌다. 아버지의 조부모와 달리 엄마는 홀로 이주했지만, 아무도 엄마의 용기를 인정해 주지 않았다. 1970년대만 해도 한국 남자 동행 없이 혼자 여행하는 한국 여자에게는 부정하다는 낙인이 따라붙었고, 미국 남자와 함께, 또는 미국 남자를 위해 미국행을 택하면 더 이상 한국인으로 쳐주지도 않았을 정도로 모욕적인 취급을 받았다. 미국인 남편과 한국을 떠난 여느 한국 여성처럼, 엄마도 사상자로 간주됐다. 이 여성들은 일단 미국으로 건너간 이상, 다시는 돌아올 수 없었다. - 78

- 그로부터 3년 후 엄마는 모든 것에 감사해야 한단 사실에 진력이 나서 사람들이 하는 짓을 대놓고 거론하기 시작할 것이다. 사람들이 따라오고, 괴롭히고, 박해했다고 말할 것이다. 이 동네사람 다 나를 노리고 있어. 애초 엄마의 말은 전적으로 합리적이고, 완전히 현실적인 말로 들릴 것이다. 미친 사람 말이 아니라. 조현병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라. - 91

- 거기엔 엄마의 유일한 인생 목표가 자녀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것이었음을 알게 되면서 내가 느낀 개인적 부채감도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론 사회가 엄마에게 진 빚도 있었다. 음식을 만들고, 화장실을 청소하고, 자녀를 양육하는 이민자들에게 미국 사회가 진 빚. 국가 안보의 최전선에서 제 몸과 성노동을 바쳤지만, "노고에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단 한 번도 듣지 못한 수많은 젊은 여성에게 한국 사회가 진 빚도.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이들은 감사의 말을 듣기는커녕 오히려 빚을 진 사람들에게 사회악의 근원 취급을 받고, 근절의 대상이 되었다. 나는 엄마에게 진 사회적 빚이 나를 짓누르고 있다는 느낌에서 도무지 벗어날 수가 없었고, 그 부담을 덜 유일한 방법으로 직접 그 빚을 조금이나마 되갚았다. 엄마가 꿈꾸던 대로 "위대한 학자"가 됨으로써, 엄마의 구원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엄마의 삶을 연구하고 엄마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나도 그 구원의 한 조각이나마 찾을 수 있을지 모르고. - 116

- 미나, 케이, 제이슨, 경, 엘리처럼 우리보다 늦게 셔해일리스에 온 한국인들은 입양인이거나 우리 가족 같은 혼혈 가족이었다. 우리는 미국의 군사적 개입과 전쟁이 낳은 살인적인 삶의 조건, 그리고 한국 가족을 깨뜨려놓은 성차별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사회 정책으로 말미암은 군사화된 주체라는 공통 유산을 보유하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미국 가족, 국가가 우리를 구제했다는 담론에 사로잡혀 있었다. - 164

- 조현병은 가난과 폭력이, 권력의 눈 밖에 나는 것이 어떻게 우리를 미치게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 T.M.루어먼, [ 우리의 가장 문제적인 광기 ]

- 아버지는 대영제국에 해가 지지 않던 시절에 성인이 되었던 반면, 이전 식민 지배에서 벗어난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대학 캠퍼스를 메우고 자기 목소리를 내면서 기존 역사의 지배적 담론을 바꿔가던 시절에 성인이 되었다. 그 시절 탈식민주의 학자들이 주장했듯, 제국은 글쓰기로 역습을 당하고 있었다. 나는 여성, 피식민자, 억압받는 자라는 새로운 시선을 통해 엄마가 직면했던 부정의를 보기 시작했다. 나는 그중 다수를 보았지만, 여전히 엄마가 한국에서 보냈던 과거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내가 확실히 아는 것이라곤 엄마가 전쟁 통에서 살아남았고, 일종의 서비스업에 몸담았으며, 학교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었다는 사실 뿐이었다. 내가 추론한 바에 따르면, 엄마는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큰외삼촌이 실종되면서 어느 때부터인가 가장 역할을 도맡았다.
이중 언어 교육 수업에서 나는 비자발적 소수자에 대한 존 오그부의 이론을 배웠다. 비자발적 소수자란 사회에 강제로 병합되었기 때문에 소수자 중에서도 가장 종속적인 위치에 놓이는데, 멕시코계 미국인, 아메리카 원주민,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나 재일 한국인이 여기에 속한다. 문득 깨달았다. 엄마가 일본에서 태어난 이유, 또 내가 그에 대해 질문할 때마다 엄마가 입을 굳게 닫아버렸던 이유가, 엄마 가족이, 적어도 외할머니가 강제징용되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새로 알게 된 사실에 대해 샌드라에게 얘기했더니, 샌드라는 내 자의적인 구분을 듣고 빙긋 웃었다. "강제노동하고 노예제의 차이가 뭔데?" 나는 그 질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봤다. '강제노동'이란 그저 완곡어일 뿐일까? 아니면 여러 형태의 노예제를 포함하는 더 포괄적인 용어인가? 어떤 형태든 간에 엄마가 강제노동이 자행되는 상황에서 태어났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몹시 어지러웠다. - 275


2023. sep.

#전쟁같은맛 #그레이스m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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