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릭스와 크레이크 미친 아담 3부작 1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 민음사 / 2019년 10월
평점 :
품절


미친 아담 3부작의 1권.

이야기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가 담겨 있는 만큼 이미지를 상정하는데 조금 시간이 걸렸다.

과학기술의 남용과 돈에 의해 지배되는 윤리의 시대, 환경파괴의 막다른 길에 다다른 디스토피아의 모습.
그 미래에 대한 경고가 담긴 이야기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크레이크의 아이들, 새로운 인류? 인데, 다소 짜증나는 특성(낙관주의, 우호성, 침착함, 한정된 어휘)을 가진 그들이 크레이크와 오릭스의 신화에 경도되어 눈사람의 계시를 받으며 지내는 모습이다. 감귤류의 체취를 지닌 총천연색 피부의 가르랑거리는 종족이라니. 고양이 같기도, 파충류같기도.

번역의 남여간 존대와 하대를... 좀 통일하면 안될까. 더군다나 애트우드의 책인데... 이런 점은 진절머리가 난다.

- 무의미한 푸념을 피하고 우리의 정신적 에너지를 순간의 현실과 당장의 과업에 투입하기 위해서, 사소한 자극은 무시해 버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의 머릿속에 있는 책 내용은 이렇게 전개된다. 분명 어디선가 읽은 문장일 것이다. 그의 두뇌가 혼자서 무의미한 푸념이라는 표현을 생각해 냈을 리 없다.
그는 침대보 한 귀퉁이로 얼굴을 닦는다. “무의미한 푸념.” 그는 크게 소리 내어 말한다. 자주, 누군가 자신의 말을 듣고 있는듯한 느낌이 든다. 나뭇잎들로 이루어진 장벽 뒤에 숨어서 그를 간교하게 지켜보고 있는 자. 보이지 않는 어떤 이. - 79

- 당신과 당신의 똑똑한 조력자들, 당신의 동료들. 이건 잘못됐어요, 조직 전체가 잘못됐다고요, 도덕적으로 타락한 곳이에요. 당신도 알고 있겠죠.
우리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려는 거야. 희망은 돈을 우려내는 것과는 달라!
새피부 상품 가격은 돈을 긁어모으기 위한 거예요. 당신들은 상품을 과대광고해서 돈을 벌어들이고, 그러면 환자들은 빈털터리가 되어 버리는 거죠. 돈이 다 떨어지고 나면 그들은 더 이상의 치료를 기대할 수 없는 거고. 그들 몸이 썩어 들어가도 당신과 당신 동료들은 전혀 상관하지 않겠죠. 우리가 이야기하던 것들, 우리가 하고 싶어 하던 일들, 기억 안 나요? 사람들, 돈 있는 사람들만이 아닌 모두의 삶을 더 낫게 만들고자 했던 꿈. 예전의 당신과는 너무나...... 당신에겐 이상이 있었어요, 그때는.
물론이지, 아직도 내겐 이상이 있어. 그저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없을 뿐이지. - 96

- 오릭스에게는 단 한 가지 소망이 있었어. 사람들이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면서 자신의 아이들을 그만 먹기를 바랐던 거지. 하지만 사람들은 혼돈 때문에 행복할 수 없었어. 그래서 오릭스는 크레이크에게 말했어. 혼돈을 없애 버립시다. 그래서 크레이크는 혼돈을 거둬들여서 다른 곳에 쏟아 버렸어.
눈사람은 설명을 위해 물을 옆으로 철렁철렁 움직인 뒤 양동이를 거꾸로 엎어 버린다.
자, 텅 비었지. 이런 방법으로 크레이크는 ‘위대한 재배열’을 이루고 ‘위대한 공허함’을 만들어 낸 거야. 그는 쓰레기를 없애 버리고 공간을 깨끗하게 만들었지......
그의 아이들을 위해! 크레이크의 아이들을 위해!
맞아. 그리고 또......
또 오릭스의 아이들을 위해!
그렇지.
눈사람은 말한다. 그의 뻔뻔스러운 창작에는 끝이 없는가?
그는 울고만 싶다.
크레이크는 ‘위대한 공허함’을 만들었어요......
남자들이 말한다.
우리를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오, 선하고 친절한 크레이크!
여자들이 말한다. 이것은 일종의 예배 행위로 변하고 있다.
그들이 크레이크를 찬양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비록 자신이 그렇게 만든 것임에도 불구하고, 눈사람은 분노를 느낀다. 그들이 찬양하는 크레이크는 눈사람이 조작한 것이다. 악의가 전혀 섞이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는 조작. 크레이크는 신, 어떤 종류의 신에 대해서든 적대적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이렇게 점차적으로 신격화되는 것을 본다면 분명 역겨움을 느낄 것이다. - 176

- 상상력 때문이지. 인간은 자기 자신의 죽음을 상상할 수 있어서 그것이 다가오는 걸 볼 수 있어. 그리고 죽음이 임박하고 있다는 생각은 그 자체만으로도 최음제 역할을 하지. 개나 토끼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아. 새를 예로 들어 보자. 식량이 없을 때면 새들은 알의 수를 줄이거나 아예 교미를 하지 않아. 더 나은 때가 오기 전까지 생존에 힘을 다 쏟아붓지. 하지만 인간은 자신의 영혼을 다른 누군가에게, 자신의 새로운 판본에게 주입해 그것이 영원히 살아 있기를 바라는 거야.
그렇다면 좋으로서의 우리 존재는 희망 때문에 파멸에 처하게 된 거야?
그걸 희망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 아니면 자포자기라고도 할 수 있고. - 205

- 나도 한때는 박식했지.
그는 큰 소리로 말한다. 박식하다. 절망적인 단어. 그가 한때 안다고 생각했던 그것들은 모두 무엇이었는가? 그것들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 254

- 크레이크! 내가 왜 이 지구상에 있는 거지? 왜 나만 홀로 남겨진 거야? 내 프랑켄슈타인 신부는 어디 있어?
눈사람은 흐느낀다.
그는 머릿속에서 반복되는 이 우울한 질문들을 떨쳐 버리고 실망스러운 장면에서 벗어나야 한다. 오, 자기. 힘내! 밝은 면을 봐!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해! 한 여자 목소리가 속삭인다.
눈사람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꾸준히 앞으로 나아간다. 숲이 그의 목소리를 지워 버린다. 말들이 무색무취의 거품처럼 줄지어 그에게서 흘러나온다. 물에 빠져 드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공기처럼, 웃음소시와 노랫소리가 그의 뒤쪽에서 점점 사그라진다. 곧 그 소리는 들리지 않을 것이다. - 290

- 게임방을 찾으십시오. 미친 아담이 당신과 그곳에서 만날 것입니다.
미친 아담이 사람이야?
지미가 물었다.
하나의 집단이야. 아니면 몇 개의 집단일 수도 있고. - 365

- 몇 년 뒤면 그것들은 사라질 것이다. 혹은 더욱 번성해서 토종 식물들을 잠식해 들어가 씨를 말려 버릴 것이다. 어찌 될지 누가 알겠는가? 이제 전 세계는 통제할 수 없는 엄청난 실험실과도 같이 되어 버렸다. 언제나 그래 왔지. 크레이크는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리고 의도하지 않은 결과라는 정책이 범람하고 있다. - 387

- 어쨌든 해결책이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 사회는 일종의 괴물이며 그것의 주요 부산물은 시체와 폐허뿐이라고 그들은 주장했다. 인간 사회는 결코 자각하지 못하며 똑같은 멍청한 실수를 계속해서 저지르고 단기적 이익과 장기적 고통을 맞바꾼다. 그것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체를 거침없이 갉아먹은 뒤에, 제조 생산되고 나면 곧 구식이 되어 버릴 플라스틱 폐품의 형태로 똥을 싸 놓는 거대한 민달팽이와 같다. - 410

2023. jan.

#미친아담삼부작 #오릭스와크레이크 #마거릿애트우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