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지고 싶은 기분 - 요조 산문
요조 (Yozoh) 지음 / 마음산책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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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션으로의 요조는 사실 잘 모른다.
에세이스트로의 요조는 꾸준히 읽었다.

실제와 갭은 분명 있겠지만, 가만가만한 문장이 좋아서다.

유일하게 기꺼이 접촉하여 만짐 이상 부비적대는 대상이 내 고양이 말곤 없지만 짧은 글들 속의 무해하고 귀여운 문장들을 만지고 싶은 기분이 들어 책을 가만히 쓸어보았다.

- 익숙하게 싫어하던 대상에 낯설레 임해보면 싫어하는 마음이 슬그머니 묘연해질 때가 있다. - 5

- “저는...... 제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 자체가 실패인 것 같아요.”
참여자 중 한 분이 이렇게 말했을 때, 그 자리엔 침묵이 한동안 이어졌다.
힘내세요.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앞으론 다 잘될 거예요. 기도할게요...... 떠올려볼 수 있는 모든 위로의 말들이 얼마나 비루하기 그지없는지를 새삼스럽게 자각한 사람들의 절망이 만들어낸 침묵이었을 것이다.
나는 내 실패를 읽은 다른 사람들이 내 몸을 만지는 것을 허락하면서, 동시에 나 역시 다른 실패 주체들의 몸을 만지면서 함께 같은 방향으로 천천히 굴렀다. 그때 타인의 실패 앞에서 내가 끝내 찾지 못했던 언어의 실마리가, 바로 이 부근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9

- 어떤 공포는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엄습한다. - 20

- 제법 공을 들여 얼마간 생각하고 난 뒤 나사의 탐사선이 찍은 목성의 표면으로 결정했다. 얼마 전에 웹 서핑을 하면서 우연히 보았다가 기겁을 했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탐사선의 촬영 해상도도 점점 좋아지는지 목성의 표면은 내 기억보다 한층 징그럽고 기괴하고 불쾌했다. 그래, 못생김의 마스코트로 적격이다.
생각난 김에 다시 한번 검색해보려고 나도 스마트폰으로 목성을 검색해 한 블로그에 들어갔다. 거기엔 목성의 징그러운 사진들이 여러 장 나열되어 있었다. 인상을 찌푸리면서 스크롤을 내렸다. 그리고 사진들의 맨 밑에 아주 짧은 문장을 발견했다. 거기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너무 아름답다.’
웬일인지 나는 또 농락당한 기분이 들었다. - 151

2023. feb.

#만지고싶은기분 #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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