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본스
애나 번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창비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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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소개된 <밀크맨>이 너무나도 강렬하게 남아있었던 걸까.

데뷔작이 번역되었다고 해서 바로 읽었는데,
뭔가 어수선한.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형태의 폭력이 이 지역에 내리 꼿힌 듯하다.
종교도 학교도 가정도 물리적 공간에도, 그리고 결국 그들의 정신에도 폭격처럼 퍼부어지는 폭력.

캐릭터들의 정신상태가 몹시 파괴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 해도
집중이 좀 어려웠다. (더위 때문일지도 모르겠고...)
게다가 속절없이 죽어 사라지는 인물들과 엄청난 폭력 속에 무감각해지는 이들을 지켜보는 일도 힘들었다.
인물들과 동화되기도 전에 채 백패이지도 읽지 않았는데 도저히 탈출 불가능한 그 물리적 공간에 진절머리가 나고 가슴이 조여든다.

밀크맨을 읽을 때도 멱살잡혀 끌려가듯 빨려들어갔었는데
이번에 그 강도가 조금 달랐다. 아마도 피로감인 것 같다.

내내 ‘지금 대체 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거야!‘ 라는 아우성을 치며 읽었다.

그 시절을 지나온 모든 이들이 그랬을까? 인간의 내면이 산산히 부서져 파괴되고 불안전한 형태로 위태롭게 다시 조립되어 가까스로 살아가는 모습으로.

수많은 상처를 남긴 북아일랜드 독립투쟁의 비극성은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모습과도 겹쳐진다.

마침내 생존자들끼리 떠난 당일치기 여행은 냉소적인 농담같은 풍경으로 남았다.

- 세 사람은 그날 오후에 밀타운 공동묘지에 묻혔다. 다들 처참한 일이다, 끔찍한 일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영영 있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렇지 않았다. 모든 일이, 언제나 그렇듯, 그다음의, 새로운, 과격한 죽음에 묻혔다. - 152

- 어밀리아는 말없이 적혀있는 글귀들을 읽었다. 읽자마자 읽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마침내 평화를 얻었구나 리지. 끝내서 다행이야. 사는 게 좆같아. 먼저 가다니 잘됐다.˝ - 348

- ˝이게 끝이야?˝ 차 뒷좌석에서 외쳤다. ˝도착한 거야? 이게 재밌는 거야?˝
˝아냐.˝ 어밀리아가 말했다. ˝길을 잃었어. 아직 도착 안했어.˝
계속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든 게 크고 공허했다. 무엇보다도 쓸쓸했다. - 445

- 어렵고 어쩐지 무서운 의문이었는데 아무도 답을 떠올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질문을 했다는 것 자체가 용감한 일이었다. 그들은 한 곳에 모여 앉았고 뭍으로 가는 내내 단 한 순간도 싸우지 않았다. - 464

2022. jul.

#노본스 #애나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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