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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문 지음, 강선재 옮김 / 푸른숲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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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추천!!!!
엘리자베스 문이라는 작가를 알게 되어 너무 기쁘면서, 읽을 책이 두권 뿐인게 너무 아쉽다.

초반에 약간의 진도 부진이 있지만 중반 이후로는 아주 집중해서 속도감있게 읽었다.

버려지는 콜로니에 자발적이지만 불법적으로 남기로 결정한 오필리아.
온전히 홀로 조용히 여생을 보내고자 마음먹은 노년의 여성에게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가꿔온 콜로니는 그리 나쁜 선택지가 아님은 분명하다. 물론 공동체의 일원으로만 살아오던 인간이 더이상 건강하지도 않은 연령에 홀로 살기를 결심하는 것은 어찌보면 일종의 자살시도 같기도 하지만 말이다.
행성 개척의 시대 이야기지만, 어쩐지 몹시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사회였던 그곳은, ‘개척‘이라는 분명한 목적때문에 더욱 그런 성격을 띠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대체로 순응하고 저항없는 태도로 살아왔지만 이젠 홀로 남은 행성에서 불필요한 사회적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로움을 느끼며 본래의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점차 깨닫는 과정은 조금 서글프기도 하다.

이 정도까지 읽다보면 대체 이 버려진 행성에 남은 노년의 여성에게 닥칠 모험과 위험이 있긴할까 싶은.
이런 기분이 드는 순간 행성에 새로운 탐사선과 개척자들이 등장하고 사십여년 살면서 한번도 존재를 느껴보지 못했던 자생종이 있음을 알게 되면서 모든 이야기가 더욱 흥미로워진다.

사실 그 괴생명체, 자생종, 외계인(이 행성의 토착 생명이지만)은 지적능력이 상당하여 점차 오필리아와 친구와 같은 관계로 발전하는데.....

그 이후의 이야기는 직접 읽고 상상하는 것이 훨씬 재밌을 것이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보편의 인간들에 대해 생각할 거리도 많았다.
확고한 자신의 지위를 통해 타인을 조율하고 강제하려는 인간들,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획일적인 기준안에서만 타인을 평가하는 인간들, 사소한 배려와 예의를 잊고사는 인간들에 대해서 말이다.

어려서 개척지로 이주해와 평생을 남이 이룬것들을 누리며 살아온 오필리아의 아들은 그 사실을 아예 잊은듯 했고, 아내에게 폭력과 폭언을 행사라는 일이 대수롭지 않았던 두번째 남편도 끔찍한 가부장의 모습을 하고 있다.
재혼을 하지 않고 자녀를 더 낳지않아 오필리아의 퇴직수당을 깍는다는 컴퍼니의 행태들도.....

살면서 마주칠 일 없길 바라는 인간상들...

그리고 인류 최초로 지적 외계 생명체와 접촉하여 신뢰를 이끌어내고 그들과 교류하며 인류 역사상 가장 명망있는 외교관의 역할을 맡은 자가 백발이 성성한 작고 왜소한 노동계층 거주지 출신의 여성 노인이라는 점을 시기하고 있는 자들의 씁쓸한 보고서를 보면 일면 통쾌함도 느껴진다.

읽는 내내 제발 해피엔딩이길 바랬고 그 바람이 이루어져 너무 기뻤다.

- 뭐든 곱씹지 말거라. 오필리아의 어머니는 늘 그렇게 말했다. 과거에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이미 지난 일, 바람에 날아간 종잇장이다. 힘든 시기를 가리켜 한 말이었다. 또한 어머니는 좋은 것들을 빠짐없이 기억하는 일의 가치를 설차했다. - 71

- 오필리아는 몰리가 어느 세계에서 왔는지 지금도 몰랐지만, 다들 낯선 곳일 거라고 짐작했다. 피부는 뼈처럼 하얗고 눈동자는 황록색이며 머리카락은 곱슬곱슬한 주황색인 몰리 같은 이들이 사는 곳이라면. 게다가 그 사고 방식. 몰리는 여자들이 너무 어린 나이에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아이들을 때려서 말을 듣게 만들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했다. 물리가 예방 접종과 임신 테스트, 산파들에게 진단 기계 사용법을 가르치는 일에만 신경썼다면 목에 칼이 박힌 채 센터 뒤에서 발견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 85

- 그들은 나와 무관한 사람들이었다. 마침내 오필리아는 그렇게 썼다. 그런데도 마음이 좋지 않다. 그들이 오는 것이 싫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들의 가족은 그들이 홀로 죽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여기서 애통해하고 있다는 걸 모른다. - 115

- ˝내꺼야.˝ 그가 말했다. 돌아가는 머리들과 빤히 보는 눈들.
예전만큼 나쁘지는 않았다. 그들이 걸핏하면 빤히 쳐다보지만 그뿐이라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 160

- 곧 둥지를 틀자가 가장 먼저 판단을 내렸다. 그것은 수호자다. 둥지수호자다. - 209

- 교제라는 것도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오필리아는 살면서 혼자 있고 싶을 때 차단할 수 있는 교제를 경험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파란 망토는 그런 것을 이해하는 것 같았다. 아니, 이 괴동물들은 시도 때도 없이 선을 넘는 인간들과 원래부터 다른 것 같았다. 그가 베일같은 생경한 프라이버시 안에서 내다본 바에 따르면, 그들은 때때로 서로를 혼자 두는 것 같았다. 마지못해, 또는 성이 난채로 마을에서 함께 어울리던 콜로니사람들과는 달랐다. 당연히 누구나 혼자만의 시간을 갈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교제할 준비가 되면 돌아왔고, 그 역시 스스로도 놀랄 만큼 기꺼운 마음으로 그렇게 했다. - 253

- 오필리아는 빌롱의 어머니도, 할머니도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역할에는 이미 작별을 고했다. 착한 아이, 좋은 아내, 좋은 어머니가 되는 것에도. 그런 것들에 70여 년을 쏟아부었다. 몰두했다. 이제는 색칠하고 조각하고, 늙고 갈라진 목소리로 낯선 괴동물들과 더 낯선 그들의 음악에 맞춰 노래하는 오필리아가 되고 싶었다. 괴동물한테서 받은 역할로도 충분하고도 남았다. - 349

- 너는 그럴 가치가 있다. 너는 우리의 둥지수호자다. 둥지수호자는 <종족>에서 최고로 중요한 역할이다. 모든 눈이, 어른과 아기 모두가 그를 응시했고 모든 발끝이 찬성의 북을 울렸다. 너는 둥지수호자다, 너는 중요하다. 오필리아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렇게 확실하게 지지 받는 느낌은 살면서 처음이었다. - 370

2022. jun.

#잔류인구 #엘리자베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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