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日記 - 황정은 에세이 에세이&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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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 특별 에디션으로 구입.
사고 보니 보라색 표지도 이쁘다.

늘 세상이 조금 나아지길 바라는 사람이라서 황정은 작가를 좋아한다. 개인적 일기를 살짝 엿볼 수 있어 즐거웠다.

- 건강하시기를.
오랫동안 이 말을 마지막 인사로 써왔다. 불완전하고 모호하고 순진한 데다 공평하지 않은 말이라는 것을 알지만, 늘 마음을 담아 썼다. 당신이 내내 건강하기를 바랐다.
지금도 당신의 건강, 그걸 바라고 있습니다. 건강하십시오. 우리가 각자 건강해서, 또 봅시다. 언제고 어디에서든 다시. - 8

- 우리는 거기에서 본 얼굴들을 생각한다. 사람들이 목구멍 안에 감추고 있던 것, 그런 것은 그렇게 일단 드러난 뒤엔, 어떻게 될까. 혐오는 어디에나 있어. 내게도 있다. 나는 실은 많은 순간 내 이웃을 혐오하고 먹는 입을 혐오한다. 하지만 그걸 남에게 드러낼 권리가 내게는 없어. 그런 건 누구에게도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디에서나 그걸 한다. 어디에나 있다. - 17

- 클라우디오 마그리스의 다뉴브엔 혐오를 드러내는 잔인성이 특별히 잔인한 어느 개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 모두 안에˝ 있다고 말하는 페이지가 있다. 그러므로 ˝외적 혹은 내적 법으로 적절히 막아내지 못 한다면 자신도 모르게 그 순간 약자를 찾아 난폭성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 18

- 사람들은 온갖 것을 기억하고 기록한다. 기억은 망각과 연결되어 있지만 누군가가 잊은 기억은 차마 그것을 잊지 못한 누군가의 기억으로 다시 돌아온다. 우리는 모두 잠재적 화석이다. 뼈들은 역사라는 지층에 사로잡혀 드러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퇴적되는 것들의 무게에 눌려 삭아 버릴테지만 기억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기억하고, 기억은 그 자리에 돌아온다.
기록으로, 질문으로. - 76

- 이런 이야기를 하면 너무 정치적이라는 말을 듣곤한다. 그런데 나는 누가 어떤 이야기를 굳이 ‘너무 정치적‘이라고 말하면 그저 그 일에 관심을 두지 않겠다는 말로 받아들인다. 다시 말해. 누군가가, 그건 너무 정치적, 이라고 말할 때 나는 그 말을 대게 이런 고백으로 듣는다.
나는 그 일을 고민할 필요가 없는 삶을 살고 있다.
그렇습니까. - 133

- 나는 문학이 뭔지 실은 잘 모른다. 그것이 살고 죽는 게 중요한 일인지도 잘 모르겠다. 문학의 존멸을 내 싸움이 아니다. 내가 오늘 무슨 생각을 했는지, 뭔가를 썼는지, 쓸 수 있었는지가 나는 궁금할 뿐이다. 소설을 쓰며 살다 보면 문학이란, 하고 묻는 질문을 반드시 만나게 된다. 이미 있는데 하필 왜 있느냐고 물어 멈추게 만드는 질문을. - 142

2021. Oct.

#일기 #황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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