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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과 가죽의 시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4
구병모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4월
평점 :
기다려온 작가의 신작을 읽었는데, 감흥이 덜하다.
이건 약간 독자인 나의 패턴인지도... 그저 혼자만의 슬럼프?
무한한 시공을 살아가는 존재지만 신이라기엔 모자르고 인간이라기엔 넘치는 종족, 옥타비아 버틀러의 와일드씨드(야생종)가 문득 떠올랐다. 그보다는 좀 더 현세적인 이야기지만.
- 1년 내내 건기 아니면 우기에 혹서와 혹한이 반씩 지분을 차지하는 극단적인 기후는 사람을 닮았다. 백 아니면 흑. 나 아니면 너. 우리 아니면 그들. ‘아니면‘의 자리에 ‘과‘나 ‘와‘가 들어가는 일은 흔치 않다. 간혹 짝지어서 불리는 예외도 있는데 죽음과 삶을 가리킬 때. 죽음과 같은 삶, 삶이자 죽음. 생명이 거한 곳에 어김없이 절반의 지분을 차지한, 삶과 죽음. - 11
- 자잘하게 힘쓰는 일, 큰일을 밑에서 떠받치는 일, 무언가를 생산하여 구체적인 가치를 만들어 내는 일, 고되지만 그 중요성을 인정받지 못하며 그늘에 가려지거나 지워지는 일들의 상당부분이 아주머니라고 불리는 여인들에게 맡겨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주머니는 철저히 멸시당하는 동시에 그 멸시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간주되는 그악스러움이 생명력을 상징하기도 하는, 아이러니 하면서도 대상화된 존재로, 그런 취급과 인식이 그리 새롭지는 않다. 사람들이 통틀어 옛날이야기라고부르는 전설이나 신화, 민담에는 그른 이들 천지다. 저주와 천대와 박해를 받지만 사실은 유능하거나 은밀한 축복을 받은 이들이, 잘난 척하다 곤경에 빠진 친인척을 구해내고 기운 집안의 부를 일구거나 마을을 구한다. 미아는 형제들과 세상을 거닐 적이 그런 인간들을 비롯하여 그런 인간들을 부리고 버리는 인간들을 숱하게 만나보았으며, 그들에게서 삶의 대처 방식을...... 무엇보다 인간의 바닥을 배웠다. - 63
- 삶이나 사랑에 의미라는 게 있다면, 어디까지나 그것과 충분한 거리를 둘 때 발생하는 것이었다. - 92
2021. m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