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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가지 슬픔 - 엘리자베스 김의 자전 실화 소설
엘리자베스 김 지음, 노진선 옮김 / 지니북스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얼마전 인터넷 뉴스에서 배우 차인표, 신애라 부부를 한국의 졸리- 피트라고 표현한 것을 보았다.
그들의 입양이 미국 배우 안젤리나 졸리와 브래드 피트의 선택에 버금간다는 뜻이겠다.
뿌리 깊은 혈연 위주의 문화에서 입양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더라도 감추어야할 일이었다.
아이를 입양하게 되면 그 엄마되는 이는 미리부터 임신했다고 소문을 내고 배를 가짜로 불리며 친정에 가서 애를 낳고 온다고 한다.
그러므로 입양 대상 아이는 갓난 아이여야 하고, 그리고 남자아이일 확률이 높았다.
지금은 세상이 많이 달라져서 입양에 대한 인식도 많이 달라졌지만, 그래도 아직도 입양된 아이라고 하면 은근히 색안경을 끼고 보기도 하고, 어렵더라도 내 핏줄을 기르고 싶어한다.
그러기에 그들 배우 부부의 입양이 사회의 큰 뉴스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라고 하지 않던가.
엄마와 아이는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인연으로 얽혀있지만, 그 인연의 끈은 비단 핏줄의 힘만은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
이 소설의 소제목들을 보면 슬픔 1,2,3 그리고 그 후에야 약간의 희망이 보인다.
혼혈아로 태어나서 동네의 구석에서 엄마와 단둘이 살던 엘리자베스는 엄한 외할아버지와 외숙부의 손에 엄마가 살해당하는 것을 목격하고야 만다.
온 세상의 전부였던 엄마의 죽음을 목격한 엘리자베스는 그 죽음을 말리지 못한 자신을 죄인으로 인식하고 죄책감과 충격에 시달린다.
그 충격에서 채 벗어나기도 전에 미국의 목사부부에게 입양된 그녀는 철저한 근본주의 신앙을 맹신하는 양부모에게서 따뜻한 사랑보다는 규율과 복종과 신체적 학대를 받으며 자란다.
물론 동네에는 없는 동양니 혼혈이기에 온갖 따돌림을 받았고 그 외로움을 풀 길이 없었다.
고교를 졸업하고 아버지 교회의 부목사와 결혼을 하였으나, 그는 정신이상자로 그녀에게 폭력을 일삼는다. 이렇게도 불행할 수 가 있는가.
맞으면서도 그 곳을 떠나지 못하는 그녀. 너무나 학대를 받으며 전신까지도 멍해지고 사고력과 판단력을 상실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어느 누구에게도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는 생각으로 평생을 살아온 그녀에게 영원한 사랑이 찾아왔으니, 바로 그녀의 딸이다.
딸을 지키기 위해 남편을 떠나고 그리고 단 둘의 생활을 시작한다. 딸을 키우면서 늘 갈망하던 모성의 의미를 찾고 살아가는 힘을 얻는다. 너무나 가난하지만, 엘리자베스는 이제야 삶의 길이 보였나보다.
그러나, 계속되었던 어린 시절의 상처들은 그녀를 괴롭혔고 늘 자살을 꿈꾸었다.
그러나, 그녀가 자살의 꿈을 버린 것은 바로 그녀의 딸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부모도 선생님도 아닌 바로 자식이라고 생각한다.
자식의 눈이 무서워서, 자시의 마음에 상처를 줄까봐 부모는 늘 조심하고 경계해야한다.
황페한 정신 세계에서 삶의 목적을 잃고 괴로워하는 그녀의 모습에 참 가슴이 아프다.
태어난 나라에서 상처와 고통만을 간직한 채, 말도 선 외국에서 차가운 백인 부부와 생활을 해야했던 어린 소녀. 그 마음의 고통이 얼마나 크기에 30년이 지나도 죽음에의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웠을까. 태어난 나라에서는 외국인의 피가 섞였다고 따돌리고 아버지의 나라 미국에서는 동양인의 피가 섞여서 따돌림 받아야하는 그 아픔을 어떻게 참고 견뎠을까.
고통스럽다고 말이라도 하면 시원할 것을 마음으로 새기는 그 고통의 크기를 짐작하기도 힘들다.
인간이란 얼마나 잔인한 것인지.
내가 아프면 다른 사람도 아플텐데, 자신의 부족함을 오히려 남을 괴롭히면서 보상 받으려한다.
차라리 모른체라도 하지.
읽는 내내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에 너무나 속이 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