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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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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아니'가 '전혀'가 되기란 얼마나 순식간인가.

13쪽

 

 소설의 표지에는 한 허탈한 남자와 슬픈 여자가 장벽을 사이에 두고 기대어 있다. 소설의 주인공 토마스와 페트라이다. 그들은 아직 냉전 중이던 시절에 베를린에서 만난 사이다. 토마스는 어린 시절의 상처로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떠도는 작가였고, 페트라는 동독으로부터 추방을 당해서 당국의 감시를 받는 처지였다. 그들은 서로를 처음 본 순간 사랑에 빠졌고, 평생을 기다려온 사람을 만났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페트라에게는 말 못할 비밀이 있었다. 가장 사랑하는 그 사람에게조차 말할 수 없었던 그녀의 고통을 그러나 토마스는 이해하지 못했고, 순간의 실수로 그녀를 잃고 만다. 젊었기 때문에 성급한 그는 그토록 사랑했던 그녀에게 단 한번도 해명할 기회를 주지 못했다. 그리고 그 상처는 편생을 그를 따라다니고, 늘 딴 세상을 살게 했다. 모든 것과 이별하고 혼자 있게 된 그에게 날아온 상자에는 한 순간도 잊지 못했던 페트라의 노트가 들어 있었다.

  냉전 시대의 베를린이라는 삭막한 도시에 대한 묘사는 아주 실감났다. 토마스는 초소를 넘어서 동독을 향하는 심정을 담담히 표현하고, 미국 사람으로서 처음 만나게 되는 회색의 콘크리트를 묘사한다. 처음 휴전선을 넘어서 금강산으로 향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눈이 덮힌 높은 산들과 짧은 저녁 햇빛을 받고 서 있던 추운 나무들, 그리고 곧 칠흑같은 어둠이 덮여와 급작스레 불안해졌던 어두운 도로가 생생하게 떠올랐다. 나는 그 당시 혼자가 아니었음에도 혹시 이대로 다시 남쪽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을 가졌었다. 만약 그 길을 나 혼자 넘었다면? 하는 의문은 토마스의 두려움과 불안함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만난 그곳 출신의 슬픈 여자는 토마스의 삶에 가장 강렬한 기억을 남겼다.

 매력적인 인물들이 활보하는 베를린 거리의 생생한 묘사와 동베를린의 생활에 대한 묘사, 그리고 마약쟁이 천재 화가와 비밀경찰과 스파이들의 이야기는 이 소설을 더욱 흥미롭게 한다. 어쩐지 이 소설이 단지 애달픈 사랑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삶에서 사랑이 때로는 전부이지만, 또 때로는 잠시 그것을 내려두어도 사는데 별 불편이 없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는 안타까운 사랑이야기 말고도, 화가인 알스테어와의 신랄하면서 재치넘치는 대화도 근사하고, 토마스의 친구 스탠과의 우정도 눈에 띄었으며, 그가 사는 시골의 차가운 공기도 인상적이었다.

 

나는 가만히 서서 내 희망이 산산이 부서져나가는 걸 바라보고 있었다. 사랑은 희망이다.

희망은 깨어지기 쉽다.

우리는 누구나 절망을 안기는 확실한 증거와 대면하게 되는 순간을 두려워한다.

412쪽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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