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지기 때문에 놀러 왔지 (양장) - 조선의 문장가 이옥과 김려 이야기
설흔 지음 / 창비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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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스킨이 양서론에서 말하기를 "인생은 참으로 짧으므로 좋은 책을 읽어야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저 책은 읽을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서점엘 가면 오늘도 새로 나온 책들이 있고, 다들 현란한 수식어와 화려한 수상 경력으로 저를 사가라고 강요한다. 좋은 건지 어떤 건지 모르겠지만, 굳이 서점까지 가지 않더라도 클릭 몇 번으로 저렴하고 편안하게 책을 받아볼 수도 있는 그런 세상이 되었다.

 책이 홍수를 이루는 요즘 세상에서는 좋은 책 한 권 골라 읽기가 더욱 힘이 든다. 예전에는 '책도둑은 도둑이 아니'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로 '책'이라는 단어에 무한한 신뢰가 가능했지만, 이젠 꼭 그렇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책을 고르는 독자의 능력이 중요하다는 것은 어쩌면 가끔씩은 덜 준비된 글을 세상에 보이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상과 철학에 대한 고민이 없거나 내용에 대한 확신이 덜 하거나 혹은 문체에 대한 고민이 없는 그런 막 쓴 글을 화려한 장정으로 묶은 책을 볼 때는 불현듯 화가 나기도 한다.

 그러니 이 책 <멋지지 때문에 놀러왔지>를 보면서 참 행복할 수 밖에 없었다. 이옥선생처럼 버릴 수 없는 자신의 문체를 가진 이가 세상에 얼마나 될까 싶기도 하고, 요즘 세상엔 어떤 이를 이 분에게 비길까 싶어 혼자 고민해 보기도 했다.

 사람 사이의 사귐이라는 것이 어떤 것일까? 한 학교를 다니기 때문에 혹은 같은 사무실을 쓰기 때문에 가까워지기도 하고, 옆집에 살아서 친해지기도 한다. 그들과 한 공간을 점유하면서 날마다 얼굴울 마주 대할 때는 가족과 친척보다도 더욱 깊은 사이가 되기도 한다. 오죽하면 '이웃사촌'이라는 말까지 있을까. 다만, 그 공간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때 우리의 사귐이 어떻게 되는 지도 우리는 안다. 처음엔 헤어짐에 아쉽고 날마다 연락을 주고 받기도 하면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지만, 또 우리는 새롭게 만난 새로운 사람들로 그들을 대신하곤 한다.

 그러나 이옥 선생과 김려 선생처럼 어떠한 가치를 서로 공유하고 있을 때 그 사귐은 결코 'OUT OF SIGHT, OUT OF MIND'는 아닌 것이다.

 우리에겐 현명하고 개혁적인 군주로 비친 정조대왕께서 어찌 그리 문체 만큼은 보수적이었을까 싶은 게 참으로 안타까웠다. 이옥 선생은 뛰어난 문재로 성균관에서 치르는 시험에 늘 최고의 성적을 냈지만, 임금은 그의 문체를 달갑지 않게 여겼다. 김려 선생은 이옥 선생과 가장 가까운 친구로 그들은 함께 북한산을 유람하면서 술 한 잔에 글 한 수를 지으면서 행복한 시절을 보냈다. 그들은 서로의 글을 함께 읽었고 서로의 글을 사랑했다. 그러나 임금에게 이옥 선생이 벌을 받으면서 그들의 사이는 조금씩 틈이 생겼다. 김려 선생이 이옥 선생을 잊고자 하면서 스스로 몸을 낮추고자 했을때도 이옥 선생은 친구에게 다가가지 못하면서도 그의 뒤를 따르고 여전이 그를 그리워했다.

 진정한 사귐이란 바로 이런 것일까? 언제 어느 자리에서도 생각나는 벗, 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함께 이해하는 벗이 있다면 더 이상 함께 하는 공간이 없더라도 그 사귐은 영원한 것임을 그들은 보여준다.

 오늘 읽은 이 책은 저 책을 읽을 시간을 빼앗았어도 전혀 아깝지 않은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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