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시절, 한비야의 세계여행기는 얼마나 나의 마음을 뒤흔들었던가 기억이 생생하다. 지리 수업시간에나 언급하던 그런 이름의 나라들에 직접 가서 그것도 누구의 안내없이 구경을 하고 사진을 찍고 밥을 먹고 심지어 그들의 집에서 넙죽넙죽 잠을 자면서 세상을 온통 다 돌아다닌 그 기록은 이 땅의 수많은 아줌마들의 가슴에 질투와 자괴감과 부러움과 가진 것들에 대한 허망함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혹시 그 때의 감동이 그립다면 이 책을 보면 될 일이다. 태국과 베트남, 라오스와 캄보디아를 흐르는 메콩강을 따라 그녀는 자전거의 페달을 밟는다. 양쪽에 짐을 싣고 언덕을 올라갈 때는 헐떡거리면서 내려올 때는 세상을 다 얻은 듯한 기분으로 달린다. 아름다운 경치를 만나면 앉아서 쉬고 마을 사람들을 만나면 손짓과 발짓으로 인사를 한다. 가끔씩은 그들에게 밥을 얻어 먹기도 하고, 아이들과 친구가 되어 놀기도 한다. 세계 각국에서 온 자전거 여행자들을 만나 나이와 국적을 떠나 이상을 공유하는 친구를 맺기도 하고, 한국에서는 도저히 만나기 어려운 멋지지만 낯선 삶을 사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만나 밤새 맥주잔을 기울이기도 한다. 때로는 버스를 타기도 하고 또 가끔은 배에 자전거를 싣기도 하면서 느린 속도로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간 그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혹시 물이 이상하지는 않을까? 혹시 그 음식은 맛이 이상하지 않을까? 의심이 많은 나는 엄두도 못 낼 일이다. 그는 동네 음식도 맛나게 먹고, 내겐 좀 맛이 불편한 그 나라의 맥주도 잘도 마신다. 온몸과 자전거가 황토로 뒤덮이도록 몸을 움직여도 오히려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의 그런 힘은 삶과 사람 그리고 세상에 대한 진지한 관심과 고민의 시기를 거쳤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좀 더 제대로 살기 위해서 젊은 시절 치열한 고민을 하고 삶의 방향을 찾기 위해서 세상을 떠돌아 본 경험이 있는 그가 참 많이 부러웠다. 젊은 시절 삶에 대한 진지한 관심을 가질 시간도 정신적 여유도 없었던 내 자신이 순간 남루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의 삶과 나의 삶의 접점은 과연 있을까? 읽는 내내 오래 전에 갔던 태국의 여러 풍경을 떠올렸다. 후텁지근한 날씨, 소금기 머금었던 바람과 어딘지 살짝 거북하던 음식 냄새가 그대로 살아왔다. 늘 웃는 얼굴이던 사람들과 인형같던 아이들의 얼굴, 달콤하던 과일과 아름다운 사원들이 있던 그 곳이 그리워진다. 나도 자전거 잘 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