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의 식탁을 탐하다
박은주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날마다 나를 고민에 빠지게 하는 것은 바로 '오늘 저녁은 뭘 먹을까?' 하는 것이다. 아마도 대한민국 뿐아니라 전 세계 모든 주부들의 고민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전 세계 모든 인류의 행복한 고민도 '오늘 저녁은 뭘 먹을까?'일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중학교 때의 우리 가정선생님(내가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여학생은 가정과 가사를, 남학생은 기술과 공업을 배웠다. 요즘은 그런 구분없이 같이 배우지만)은 키가 작으신 분이셨다. 여러가지 영양소가 우리의 몸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어떤 식품을 통해서 그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는지를 상세히 가르치시고 외우게 하셨다. 외국어로 표기된 영양소를 달달 외우고, 관련 식품들을 외워서 그림으로까지 그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중에서 특히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하셨던 질문이 기억난다. "먼 미래에는 이런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간 알약이 식품을 대체할 지도 모른단다. 그러면 어떻게 될 것 같니? " 내가 대답했다. "사는 재미가 하나 없어질 것 같아요. " 나의 이 대답은 선생님의 칭찬을 받았고, 그 때의 우쭐했던 기분을 기억한다. 그러나 나의 이 대답은 솔직한 것은 아니었다. 그 때의 나는 고작 중학교 1학년이었으니 '먹는 즐거움'이 삶에서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지 몰랐을 것이다. 다만, 지독한 독서광이었던 탓에 어디서 주워들은 이야기를 옮긴 것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참말로 맞는 얘기다. 이 세상을 사는 여러가지 즐거움 가운데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먹는 것'이다. 그 동안 읽었던 수많은 여행기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음식 이야기이다. 어디서 무엇을 먹었고, 어디에 가면 꼭 무엇을 먹어야하는지, 아니면 얼마나 저렴하고 간단하게 한 끼를 해결했는지라도 반드시 밝히는 그 글들을 읽으면서 우리네 삶에서 '먹는 것'이란 과연 얼마나 큰 의미를 차지하는 것인지 서로들 알 수 있다.

 이 책 <대가의 식탁을 탐하다>는 그런 의미에서 더욱 흥미롭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이들이 평소에 즐겼던 음식을 소개하면서, 그 음식의 발생, 주인공과 그 음식의 인연, 더 나아가서 그 음식을 조리하는 방법까지도 들려준다. 그것도 그 대가와 직접 대화를 나누는 방식을 택하여 더욱 친근한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나폴레옹이 사랑했던 '치킨 마렝고'는 사실 그리 호화로운 음식은 아니라고 한다. 닭은 그 당시 가장 흔한 식재료였으니 말이다. 나폴레옹은 그 음식을 먹었을 때의 상황을 기억하는 것일 것이다. 천재 다빈치가 요리사였고, 다양한 요리도구를 발명하기까지 했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였지만, 와인 따개 이야기는 더욱 재미있었다. 발자크에게 커피란 각성제였다고 한다. 나에게도 혹시나 그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든다. '로큰롤의 제왕'이 사랑했던 음식은 정크푸드였다. 그가 가장 사랑했던 간식이 우리의 초코파이와 같은 문파이에 초코바를 얹은 것이라니 그의 점점 늘어가는 몸피의 원인이 거기에 있었던 모양이다. 사람의 입맛이라는 게 상황과 입장이 달라진다고 해서 따라서 달라지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세상의 온갖 호화로운 음식을 다 먹을 수 있는 위치에 있음에도 그가 마지막까지 원했던 것은 가난했던 시절 맛나게 먹었던 음식이니 말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저녁상은 엄마가 끓여주시는 김치찌개가 올라온 상이다. 아무것도 넣지 않고 들기름에 김치를 달달 볶아서 뜨물로 끓이는 그 김치 찌개가 몸이 아프거나, 우울할 때면 꼭 생각이 난다. 30년 전 추운 겨울이면 콩나물국에 밥을 말아서 숟가락에 얹어먹었던 김장김치도 애가 타게 먹고 싶다.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음식은 어쩌면 가장 소박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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