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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세상의 모든 음식 ㅣ 내가 사랑한 세상의 모든 음식 1
이숲 편집부 엮음 / 이숲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오늘은 일요일.
늦은 아침에 김밥을 말았다. 아니 '쌌다'라고 표현해야 하나?
어린 시절 기다리고 기다리던 소풍 전날 비가 올까봐 안절부절하면서 바라보던 밤하늘의 기억이 새록새록한 김밥. 가방 가득 싸 놓은 과자를 혹시나 방에서 풀러 먹을까봐 불안해 하던 기억과 함께 그 김밥의 맛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지금이야 여기저기 가격도 저렴한 김밥이 흔하지만, 그 시절만 해도 무슨 특별한 행사나 있어야 먹던 김밥이었다. 특히나, 어린 내가 그 때의 소시지를 싫어해서 늘 고기로 김밥을 싸주시던 엄마의 정성을 나는 맛으로 기억한다. 어느 집 김밥을 먹어도 맛나다는 느낌은 그저 없고, 어딘지 서운한 감이 드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높여놓은 입맛 탓이다. 그래서 밖에서는 김밥을 거의 사 먹지 않는다. 어머니의 그 솜씨를 그대로 물려받았다고까지는 못하겠지만, 우리 아이들 역시 김밥은 내가 싸 준 것이 최고라고들 말한다.
오늘 아침엔 모처럼 다들 쉬는 날이니 먹고 싶다던 김밥 한 번 말아볼까? 고기를 양념에 잘 재우고, 시금치를 다듬어서 데치고 참기름과 소금과 갖은 양념으로 조물조물 무친다. 당근도 얇게 채 썰어서 양념을 해서 기름에 볶아두고, 재운 고기도 국물이 없어질 때까지 볶는다. 계란 하나를 소금 약간 넣고 잘 풀어서 팬 가득 넓게 지단을 부친다. 이 계란은 반 장씩 사용한다. 그러니, 김밥 열 줄이면 계란은 다섯개를 부치면 된다. 단무지는 국물을 빼고 가지런히 준비하고(이 단무지의 맛이 결정적으로 김밥의 맛을 좌우하므로 잘 선택해야한다.) 햄은 길이대로 잘라서 뜨거운 물로 한 번 데쳐낸다. 그래야 잡내가 없어지고 맛이 깔끔하다. 고슬고슬 지은 흰 밥에 소금과 참기름과 깨소금으로 양념을 해서 비비고 드디어 김밥 말기에 들어간다. 김밥용 김에 밥을 한 주걱 떠서 넓게 펼치고 계란 지단을 가운데 쯤에 펼친다. 갖가지 김밥 소를 계란 위에 놓고 계란을 먼저 한 번 접어 준다. 그리고 쫑쫑 말면 썰어놓았을 때, 깁밥 속이 예쁘게 나온다.
먹을 것이라는 게 단지 배만 불리는 것이라면 '살기 위해서 먹는 것인가?, 먹기 위해서 사는 것인가?' 라는 질문은 애당초 없었을 것이다. 피곤한 날 저녁에 푸짐한 식사가 하루의 피로를 풀어주기도 하고, 다퉈서 어색해진 분위기를 풀어주는 것도 정성스런 상차림이다. 화려하지 않아도 그리고 고급스럽지 않아도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음식이고, 또 날마다 수많은 주부들에게 '오늘은 뭐 해 먹지?"라는 고민을 하게 하는 것을 보면 우리의 삶에서 '먹는다'는 것의 의미는 참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애증의 대상인 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의 기억 중에 냄새로 기억되는 것들이 많다. 우리 집에서 나던 냄새, 교실의 냄새, 친구 집에서의 냄새 등등 그 중에서도 단연 으뜸인 것은 음식 냄새다.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부엌에서 나던 그 냄새는 뭐라 말할 수 없는 안도감과 행복감을 준다. 그것이 고기 굽는 냄새일 수도 생선 냄새일 수도 혹은 된장찌개 냄새일 수도 있지만, 불기없는 부엌의 썰렁함에서 엄마의 부재를 느끼고 서운해 하던 그 심정을 우리는 누구나 알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이 책 <내가 사랑한 세상의 모든 음식> 이야기는 그래서 더욱 공감이 간다. 세계 각지에서 특별한 시간을 보낸 그들(작가, 화가, 학자, 예술가, 혹은 디자이너등 화려한 직업의 그들)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그들의 외국 생활을 부러워하지만, 낯선 나라에서의 외로운 시간들을 우리는 또 짐작할 수 있다. 춥고 외로운 저녁 그들에게 위안이 되어주던 것은 따뜻한 한 그릇의 음식이었을 것이다. 외국 사람의 가정에서 모처럼 맞는 다정한 시간에 그 집의 식구들이 늘 먹는 음식으로 차려낸 한 끼의 저녁은 고독과 외로움에 지친 나그네에게 잊을 수 없는 다정함으로 기억에 남았을 것이다. 수탉을 와인에 조린 프랑스의 '꼬꼬뱅'은 화가 난 부부를 화해 시키고, 독일의 양배추 절임인 '사우어크라우트'는 우리네 김치처럼 집집마다 맛이 다르다. 프랑스의 유명 체인점 <레옹>에서 먹었다는 홍합 스프 '물 마리니에르'는 얼마전 친구와 강남의 유명 레스토랑에서 먹었던 '홍합 찜'의 비싼 가격을 떠올리게 하고, 딸아이가 사족을 못쓰는 '퐁듀'에는 들어가는 치즈가 지방마다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요건 한 번 도전헤 보고 싶어진다. 그저 치즈를 녹이고 빵을 찍어먹으면 되는 것 아닌가 말이다.
제1부의 서양요리 12가지와 제2부의 동양요리 12가지가 소개된 이 책에 나오는 음식들은 대부분은 유명해서 한 번씩은 맛 본 것들도 많이 있다. 그리고 나 역시도 나이가 쪼금은 들은 지라 그 각 음식에 얽힌 기억들도 드물지 않게 있었다. 또한 햄버거와 빠에야, 피자와 오니기리, 오코노미야키와 만두, 탄두리 치킨과 커리 게다가 순대국밥까지 눈과 귀와 코와 혀에 익숙한 음식들 못지 않게 멕시코와 이스라엘, 모로코와 티베트의 요리는 또 낯설었다. 하나하나의 음식에 담긴 그들의 추억을 엿보면서 이 책은 단지 음식과 그것에 얽힌 자신의 추억만을 전달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느껴졌다. 글쓴이들은 그 음식을 통해서 자신들이 보냈던 그 시절을 다시 살아내고, 그 곳에서의 살던 시절의 열정과, 낯설었지만 곧 사랑하게 되었던 그네들을 기억해내고 그리워하고 있었다. 다른 음식을 먹고 다른 방식으로 인사를 하는 사람들이지만, 그들 역시 우리와 비슷한 속내를 지니고 있었다. 낯선 나라의 나그네에게 자신들의 음식을 맛보게 하고, 그들의 끊임없는 호기심에 대꾸해 주고, 그리고 영원히 잊지못하게 혀에 추억을 새겨주었던 것이다.
단지 한 그릇의 따끈한 음식일 뿐이지만, 거기에 담긴 사랑과 추억과 행복과 맛을 우리는 이해한다. 그것은 마치 별 하나에 담긴 추억과 사랑과 쓸쓸함과 동경과 시를 이해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68쪽 2째 줄 보여였을 뿐 -> 보였을 뿐
157쪽 8째 줄 풍유 -> 풍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