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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희의 방 ㅣ 푸른도서관 41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린 소희에게 닥친 불행은 달밭 마을을 떠나면서 시작되었다.
울음을 꼭 참으면서 떠난 달밭 마을은 소희의 마음에 늘 그리운 곳으로 남았다. 꿈마다 그 떠남이 재생되면서 소희의 베개는 눈물 투성이가 되곤했다. 아마도 떠날 때 그 슬픔을 마음껏 발산하지 못해서이리라. 이별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이별을 마음껏 슬퍼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김형경님은 말하지 않았던가 말이다. 소희에게는 그것이 부족했다. 슬픔을 드러내 놓고 슬퍼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모든 것을 눌러놓고 덮어버려서 그 안의 가슴 아픔이 곪고 곪아서 안으로만 썩어들어간 소희의 아픔이 곧 터지고야 말았다.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엄마는 소희가 어렸을 때 떠나버렸다. 할머니의 무한한 사랑에 경제적으로는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행복했던 소희는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행복했던 달밭마을을 떠났다. 슬픔을 억누르고 밝게 떠났지만, 작은집에 얹혀살면서 소희는 늘 움츠려들었다. 사촌동생들과 함께 사용하는 방에서 끼어사는 소희는 작은 엄마의 미용실에 일손이 부족하면 공부를 하다가도 불려 나가서 미용실 일을 도와야했다. 학교에서는 공부도 잘하고 책도 많이 읽는 모범생이고 작은집에서도 말 잘 듣는 더부살이인 소희에게 어느 날 엄마가 나타났다. 상상할 수 없을만큼 부자인 엄마는 소희를 집으로 데려간다. 성도 새아버지의 성을 따라서 바꾸고 부잣집 딸로 다시 태어난 소희는 자기만의 방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소희는 기쁘지만은 않다. 그리운 엄마는 늘 소희에게 거리감을 두고 동생인 우혁이는 소희를 못마땅해한다. 철부지 우진이는 소희를 살갑게 대하고 새아빠도 잘해주지만 정작 엄마가 거리를 두니 소희는 마음이 불편하다. 새학교에서는 공부도 잘하는 부잣집 딸이라서 인기도 좋지만, 소희는 집이 더 어렵다. 쓸쓸한 마음을 인터넷 친구인 디졸브에게 털어놓으며 마음의 평안과 위로를 받는 소희에게 어느 날 사건이 일어난다.
대체로 불행은 아이를 어른스럽게 한다. 어린 나이에 어른도 감당하기 어려운 책임을 맡아야 했을 때 아이들은 내면의 아픔을 드러내지 않고 숨겨버린다. 남들은 그런 아이를 장하다느니, 착하다느니 하고, 스스로의 불행을 감당하기 어려운 아이는 어픔을 인정하지 않고 묻어버린다. 소희는 그런 아이였다. 엄마가 없다는 가장 큰 결핍을 인정하지 않으려 빨리 어른이 된 소희, 작은 집에 폐가 되지 않으려 스스로를 둥글게 말고 그 안에 작게 숨어있는 소희, 어렵사리 곁을 차지한 엄마의 가족에게 짐이 되어 또다시 엄마를 잃을까 모범생이 되려던 소희의 어린 마음이 아프게 다가왔다.
아픔을 인정하고, 불행을 드러내고, 이별을 대놓고 슬퍼할 때 마음이 건강해진다고 한다.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우리의 관습은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큰 병을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내 내면에 자리한 그 어떤 아픔이 나를 병들게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젠 스스로 안에 감춰두고 나조차 잃어버린 그 상처를 찾아 내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소희가 엄마에게 감정을 터뜨리고 좀 더 가까이 다가서듯이 말이다. 조숙한 아이의 마음 속 이야기를 훔쳐듣는 성장소설의 즐거움을 이 책에서도 충분히 만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