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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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 났었습니다. /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 바라다 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 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던 게지요. /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날 두 길에는 /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 프로스트(Robert Frost) -가지 않은 길)

 

  박완서님의 이 책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를 집어 들면서 이 시를 떠올리지 않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저 제목에 담긴 절묘한 마음을 충분히 공감하기 때문이다. 작가에 비하면 길지 않은 삶을 산 나지만, 나 역시도 못 가본 길에 대한 아쉬움이 이리도 가득하니 80을 산 그 분은 오죽하실까 싶다. 마음만 살짝 달리 먹었어도 그 분의 삶 역시도 지금과는 판이하게 다를 것이 아닌가.

  이 시에서 가장 나의 마음을 끄는 구절은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이다.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 때 어쩌면 언제든지 원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싯구처럼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 내가 돌아가고 싶은 그 시작은 어디인지 이 책을 읽는 내내 곰곰히 생각해 보고 싶었다. 그러나, 책의 내용을 따라서 함께 추억을 찾아다니느라 아직 나의 길은 돌아보지 못하였다.

  그동안 작가의 많은 책을 읽고 즐긴 터라 이 책에 있는 글들 중에는 이미 본 것도 많다. 또한 문투 역시 이미 너무나 익숙해져서 마치 우리 엄마의 말씀을 듣는 듯하다. 언제 고향 개성을 떠나 서울에 왔는지 서울에서는 어떤 생활을 했는지, 6.25 당시 그의 형편이 어떠했는지를 나는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비록 글과 삶은 다르지만, 아주 다르다고만 할 수도 없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의 내용은 대부분 우리 어머니처럼 하신 말씀 또 하시는 그런 얘기들일 것이라는 생각도 아주 잠시는 했었다. 그러나 생각해 보니 그동안 내가 읽은 것들은 대부분 소설들이었고, 이 책에서 하시는 말씀은 사실이 아닌가 말이다. 그래서 읽는 내내 흥미로웠다. 작품을 통해 짐작했던 그분의 실제 삶의 궤적들을 하나하나 확인하는 작업은 아주 즐거웠기 때문이다.

  책의 2부는 '책들의 오솔길'이라는 제목으로 꾸며져 있다. "서평도 독후감도" 아닌 "책을 읽다가 오솔길로 새버린 이야기"인 이 부분이 가장 좋았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이야기들,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확장되어 가는 생각들을 담은 이 글들은 그의 성품, 그의 생각들을 알려주기도 했지만, 책에서 어떤 것들을 읽어내는지 보여주어서 나의 책읽기를 돌아보게 했다. 아마도 나도 이미 읽은 책들에 대한 속삭임이라서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긴 삶의 말미에 나도 이런 책을 하나 묶을 수 있으면 좋겠다. 아, 그전에 내가 돌아가고 싶은 시작은 어디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혹시 아는가 거기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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