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먹어요
아녜스 드자르트 지음, 이상해 옮김 / 현대문학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끊임없이 자극받은 식욕때문에 나중에라도 이 책을 생각하면 배가 고플 것이다. 신산한 삶의 비밀을 가진 여자, 미리암이 연 식당같지 않은 식당 '셰 무아(Chez moi)'에서 향기로운 스프와 달콤한 케이크를 먹는 나를 상상한다. 아마도 나와 미리암은 잘 통할 것이다. 이미 삶의 한 고개를 넘은 사람끼리이니 말이다. 지적이고 똑똑하고 그리고 냉소적인 미리암은 유쾌한 대화 상대가 될 것이 틀림없다. 그녀는 아마도 내게 만드는데 세 시간이 걸리는 요리를 해 줄 것이다.
  마흔이 넘은 그녀는 얼마 전 스스로에게 내린 유형을 끝내고 파리의 뒷골목에 간판도 없는 식당을 시작한다. 따로 잠잘 곳을 얻을 돈이 없는 그녀는 식당의 예쁜 녹색 부인용 소파에서 잠을 자고 커다란 개수대에서 샤워를 한다. 늘 따라다니는 과거의 기억에 밤마다 괴로움에 시달리는 그녀가 기다리는 것은 구원의 푸른색 트럭이다. 그러나, 아직도 신선한 자연을 그대로 가득담은 그 트럭을 스스로 부를 용기가 없다. 자신은 그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싸고 영양이 있는 음식을 사람들에게 대접하고 싶다는 그녀의 작은 소망은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녀는 재료값이나 세금따위는 생각하지 못하고 음식값을 안 받기도 하고, 첫 손님이었던 귀여운 여고생들에게 평생 4유로에 식사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한다. 그러던 그녀에게 천사같은 벤이 나타난다. 파리 최고의 '보이'인 벤은 조금씩 그녀를 달라지게 하고, 미리암은 반항한다.

  세상과는 오로지 음식만으로 소통하고 싶었던 미리암, 과거에 대한 회한과 아들에 대한 끝없는 그리움으로 눈물없는 밤을 갇지 못했던 그녀는 꽃가게의 벵상과 날개없는 천사 벤 그리고 푸른 색 트럭의 알리와 전직 수학교사 바바라와 함께 조금씩 자신을 드러낸다.

  어치피 삶이라는 게 숨겨진 많은 허방들을 짚으며 건너가는 것이라면 언제쯤 우리는 이 삶의 구렁에서 자신을 감출 수 있겠는가. 그것은 우리가 이 생의 끝을 보지 않는 이상은 어려운 일일 것이다. 수많은 원인모를 고통에 시달리는 밤을 보내면서도 다음 날 아침의 맑은 햇살에 잠시 웃을 수 있는 것이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리암이 살고 싶었던 삶은 이 세상에 존재하기 어려운 것이다.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끝까지 거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맑은 햇살에 꽃 향기에 맛있는 음식에 그래도 잠깐이라도 행복한 것, 그것이 삶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