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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러스트
필립 마이어 지음, 최용준 옮김 / 올(사피엔스21)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만약 아무도 내 소리를 듣지 않는다면, 실제로는 소리를 지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야.
본문 453쪽
이 책은 6부로 이루어진 545쪽이라는 대단한 분량을 갖고 있다. 방대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복잡한 사건 전개라든가 셀 수 없이 많은 인물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핵심 인물은 친구 사이인 두 사람이다. 그 둘을 둘러싼 가족들이 또 주요 인물들이다. 1970년대 이후 몰락한 펜실베니아주의 철강 도시 부엘을 배경으로 두 젊은이가 등장한다. 나이는 스무살이지만 어려보이기만 한 천재 소년 아이작과 학창 시절 온 도시의 기대를 받던 풋볼 선수이지만 지금은 마을의 철물점에서조차 해고당한 채 어머니 그레이스의 트레일러에 얹혀 사는 포가 그들이다. 몸이 아픈 아버지를 돌보며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싶어하지만 누나 리밖에 모르는 아버지에게서 벗어나 공부를 하고 싶은 아이작은 이 지긋지긋한 부엘을 떠나기로 하고 포에게 동행을 요청한다. 마당의 장작조차 패기 싫은 포이지만, 아이작의 부탁이니 조금만 동행하겠다고 나선다. 그리고 그들이 밤을 보내기 위해 들어간 빈 건물에서 부랑자들과 조우하고 사건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위기에 처한 포를 구하려고 아이작이 던진 베어링에 부랑자 중 한 명이 죽고 만 것이다. 다음 날 그 곳을 다시 찾은 그들은 경찰 서장이며 포의 어머니 그레이스를 사랑하는 버드 해리스를 만나게 되고 아이작과 포가 그 사건과 관련되어 있는 것을 짐작한 해리스는 그들을 집으로 돌려 보낸다. 마침 가족을 보기 위해 집에 돌아 온 리와 포는 오랜 만에 해후를 한다. 아이작은 다음날 다시 집을 떠나 버리고 혼자 남은 포는 살인 혐의를 자신이 받을 수밖에 없음을 깨닫고 고민한다. 아이작이 그를 죽이지 않았더라면 자신이 죽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포는 자신이 살인범이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포의 어머니 그레이스와 해리스, 리와 포, 아이작의 아버지 헨리와 자살한 어머니 메리, 중국인 경찰과 호 등 다양하고 인간적인 등장인물들이 자신의 내면의 소리와 그들의 대화로 가득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낸다. 이 두꺼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우울하고 가라앉은 기분을 느꼈다. 아무런 희망이 없는 고향, 사람들은 절망에 빠져있고 다들 가난하기만하다. 누구라도 도시로 나가고 싶지만, 능력도 힘도 없어 그 자리에 머물러 오히려 후퇴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생생히 떠오르는 읽기였다. 소설은 전체적으로 회색이었다. 그들이 사는 그 도시 부엘은 마치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빌리가 사는 그 탄광 마을 같은 분위기, 모두가 일을 하지 못하고 희망없는 내일에 지친 사람들의 표정만이 떠도는 그런 곳이었다. 패배주의적인 도시의 분위기는 젊은이들의 마음도 녹슬게 해 그들은 무엇인가 의미있는 삶을 찾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그러나 치열한 고통을 통해 얻어내는 자신과의 합일은 아이작에게 포에게 의미있는 삶의 방향을 가르친다. 그것이 이 우울한 도시 부엘이 보내주는 마지막 낭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