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소소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히가시노 게이고의 웃음 소설 연작을 읽고 있다. 워낙에 흡인력이 있는 문체인데다가 다루는 주제들도 가깝고, 또한 날카로운 풍자와 쓴 웃음이 주는 재미가 쏠쏠하다. 게다가 짧은 단편들이어서 더욱 부담이 없다. 대부분이 장편인 그의 소설에 비해서는 가볍게 들고 다니면서 읽기가 편하다.

  이 소설 <흑소소설>은 총 13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최종 심사>라는 작품으로 시작해서 <심사 위원>이라는 작품으로 끝나는데, 제미있는 것은 1편 <최종 심사>의 주요 인물이었던 작가 '사무카와 신고로'가 마지막 소설 <심사 위원>에서도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읽다보면 각각의 별 개의 작품 같으면서도 연계되는 절묘한 설정이 재미나다. '사무카와 신고로'는 그저 그런 평범하고 지루한 소설을 쓰는 소설가다. 문학상 후보에 다섯 번이나 올랐지만, 그는 아직까지 한 번도 수상한 적이 없다. 이번 만큼은 수상을 기대한다. 각 출판사에서 그를 담당하는 편집자 네 명과 한 식당에서 수상 결과를 기다리면서 벌어지는 헤프님을 그린 이 소설은 등장 인물들의 내면이 그대로 드러나면서 재미를 준다. 문학을 하는 고매한 작가들의 노골적인 상 욕심이 우습다. 결국 그는 수상을 하지 못한다. 마지막 소설에까지 그는 그저 그런 작가였던 모양이다. <심사 위원>에서 그는 문학상의 심사위원을 의뢰 받는다. 드디어 자신을 알 봐 주는 세상에 만족하면서 그는 신인들의 작품을 냉정히 심사하려 하지만, 도무지 취향에 맞지 않아서 짜증스럽다. 최종 심사 토의장에서 만난 다른 심사 위원들도 별 볼일 없이 지지부진한 작가들이다. 그들은 수상작을 두고서 난상토론을 벌인다. 서로의 관점과 이상이 맞지 않은 상활의 격렬한 토론은 셋 다 무난하다고 생각한 작품으로 수상작을 결정한다. 그 소설은 '사무카와 신고로'가 추천했던 작품이다. 그러나 사실 그 심사 위원단은 가짜였다. 출판사에서 더 이상 가망성이 없는 작가를 가려내기 위한 설정이었던 것이다. 작품을 볼 줄 아는 안목이 가장 없었던 '사무카와 신고로'는 그 출판사의 작가 명단에서 제외되고 만다.

  일본 문단이나 우리 문단이나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고 보면 작가들의 삶이란 것이 참말로 녹록치 않다는 생각이 든다. 글을 쓰는 것만도 천형(天刑)이랄 만큼 힘겨운 일이라는데 말이다. 그것 말고도 생각하고 눈치보고 신경쓰고 처세(處世)까지도 잘 해야하니......

  신데렐라 이야기를 재구성한 <신데렐라 백야행>이나 어린이 마케팅의 임계점인 '가와시마 데쓰야'의 이야기 역시 우리의 삶을 날카롭게 조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습고 재미있었으나 섬찟하기도 했다. 특히 <임계가족>은 어리아이가 있는 가정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아야할 문제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 아이들을 키우면서 유행하는 각종 캐릭터 장난감을 사 주었다. 장난감이라는 게 어찌나 유행도 빨리 변하고 날마다 업그레이드(Up- grade)되는지 따라가기도 벅찰 지경이었다. 우리도 혹시 그런 실험 대상은 아니었을까?

  사회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과 날카로운 지적, 그리고 충격적이면서도 슬픈 소재들을 주로 다루는 작가의 다른 장편들과 달리 가벼우면서도 생각할 거리를 주는 이 소설들이 재미있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까지도 모두 찾아서 읽고 싶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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