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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가슴이 뜨거워져라 - 열정 용기 사랑을 채우고 돌아온 손미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손미나 지음 / 삼성출판사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손에 쥐면서 가벼운 흥분이 이는 것을 느꼈다.
예전에 어느 사이트에서 장난으로 전생 정보를 알아본 적이 있었는데, 내가 전생에 아마존의 전사였단다. 다들 어울린다면서(왜?) 웃었는데, 혼자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주 근거없는 말은 아니다 싶었다. 오래 전에 부산에 놀러갔다가 아쿠아리움 앞 지하도에서 페루 사람들의 공연을 보았다. 실은 보았다는 말보다는 음악을 듣고 끌려갔다는 말이 더 맞다. 잔잔하지만 어딘지 마음을 끄는 작은 기타 소리와 아련하고 슬픈 오카리나와 설움이 가득 밴 그들의 목소리는 나로 하여금 한참이나 그 자리를 지키게 했었다. 그 머나먼 그 곳, 아득하고도 그리운 어딘가를 생각하게 하는 음악과 노래는 일생에 한 번은 그 곳에 가리라는 다짐을 하게 했다. 그래서였을까? 마야니, 안데스니 하는 지명들은 나를 이끌었고, 그 곳의 풍경과 사람은 나의 두고 온 머나먼 고향인듯 그립기만 했다.
그러니 이 책은 제목만으로도 나의 책이었다. 그리고 초원에서 먼 곳을 바라보는 그녀의 사진은 나 역시 그 곳으로 뛰어들게 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읽는데 많은 시간이 들었다. 대부분의 여행기는 사진과 그곳의 맛난 음식과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해프닝과 훈훈한 만남으로 그리고 미래에의 다짐으로 이루어져 하룻밤이면 뚝딱 마음의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으나, 손미나와 함께 한 아르헨티나는 어쩐지 힘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여행처럼 한 열흘 쯤 다녀온 것은 아니지 싶다. 그 곳에 집을 얻고 탱고를 배우고, 음악을 들으러 다니고, 마라도나의 축구장에서 축구를 즐기고, 사람을 사귀고 먼 남쪽 빙하까지 다녀오자면 못 잡아도 두 달 이상의 시간이 걸렸으리라 짐작한다. 나처럼 직장에 매이고 가정에 매인 사람들에게는 꿈과 같은 이야기다. 몇년 전에는 멀쩡히(?) 다니던 직장을 두고서 요즘 가장 힙한 스페인에서 일년을 보내고 와서 우리 일상인들에게 부러움과 슬픔을 뿌리더니, 이젠 아르헨티나다.
자아, 이제보니 이 책이 다른 책만큼 진도가 안 나간 이유는 단 하나. 나의 부러움이었다. 언젠가는 가보고 싶다는 생각만 갖고 있던 그 곳에 거처를 정하고 그 곳의 자랑인 축구와 탱고와 음악과 사람을 만나고 더 나아가 그 곳의 치부인 빈민가와 아름다운 거리를 함께 섭렵하고, 거대한 초원에서 시간을 만끽하고 온 그가 부럽기만 했던 것이다.
그가 보고 온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 그 아름다운 거리의 슬픈 역사를, 심지어 택시조차 들어가기를 꺼리는 빈민가의 사랑스런 가족들을 만나면서, 또 협잡꾼인 여행사의 횡포에 귀중한 물건과 사진들을 잃어버린 매우 아르헨티나적인 사건을 겪으면서 그는 아르헨티나의 진짜 얼굴울 보았고 그것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아마도 그 양면성은 아르헨티나 뿐 아니라 우리의 더 나아가서는 세계의 모든 얼굴일 것이다. 겉만 보고 온 것이 아니라 그 아픔까지도 찾아볼 수 있는 눈을 가진 것은 다만 그가 언론인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사랑과 관심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매우 아르헨티나적인 사건으로 인해서 책에 실린 사진은 어딘지 모르게 살짝 아쉬움을 주지만, 잃어버린 그 사진들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그 사건을 부끄러워하는 순수한 아르헨티나의 청년 하비에르의 마음이었다. 다음엔 또 어디에서 그를 만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