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별력과 감수성 - 발췌 지만지 고전선집 390
제인 오스틴 지음, 이미애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재미있게 보았던 영화를 꼽으라면 여러 가지가 떠 올라서 망설이게 되지만, 좋아하는 영화를 꼽으라면 주저없이 몇 편을 고를 수 있다. 그 영화들은 여러 차례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가끔씩 우울하거나 혼자 있을 때 언제라도 친구가 되어 준다. 몇 편 안 되는 내가 사랑하는 영화들의 공통점은 시대물이라는 점이다. 여성의 활동이 자유롭지 아니하고 남들의 평판이 중요한 시절, 격식을 차려 여성을 존중하고 아끼지만 정작은 작은 권리조차 여성에게 주지 않던 그 시절의 영화들이 왜 그리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지 모르지만, 겉으로는 잔잔하고 고요한 그러나 격렬한 열정과 소용돌이를 가진 그 영화들을 좋아한다. 사회적 압박과 금전적 제약이 조여오지만, 그 안에서 최대한 자기 권리와 행복을 지키려 노력하는 그 조신한 처녀들의 영리한 눈동자는 나를 즐거이 그들의 음모에 끼여들도록 만들고야 만다.

그 영화들 중에 자주 보는 영화가 바로 이 소설 <분별력과 감수성>이 원작인 <Sens & Sensibilty>이다. 사실 어제 이 책을 손에서 놓자마자 <Sens & Sensibilty>를 틀고 보았다. 아름다운 놀런드 파크의 경치와 어린 마아가렛의 나무집도 보고 엘리너와 에드워드의 주고 받는 눈빛도 다시 느끼면서 원작 소설을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로 꼽으면서도 아직 그 원작 소설을 읽지 못했다는게 무슨 무관심의 증거라도 되는 양 마음이 불편하기도 했었다. 책을 좋아하지 않는 것도 아니면서 날마다 새로운 책들을 살피느라 정작 식구같은 이 책을 읽지 않고 미루기만 했던 것이다. 소설을 읽으니 그 동안은 그냥 지나치기도 했던 대사와 행동들이 더욱 명확히 이해가 되었다. 마치 내가 잘 아는 이웃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처럼 친근하게 다가왔던 것이다.

 

아들에게만 집을 상속할 수 있었던 당시 영국의 법률은 이 소설의 주인공인 대시우드 가족의 운명을 바꾼다. 탐욕스럽고 우유부단한 전처의 아들 존은 아버지의 유언에도, 그리고 자신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아내 패니의 의도대로 계모와 여동생들에게 돈을 주지 않기로 하고 만다. 모녀는 사랑하던 집에서도 쫓겨나고 보잘 것 없는 수입으로 살아갈 처지가 되었다. 그들이 이사한 곳은 한적한 시골의 작은 오두막이다. 그 곳에서 자매들은 사랑을 만나고 상처를 받고 또 서로를 위로하고 사랑한다. 세상의 어떤 풍파 앞에서도 서로를 의지하고 아끼면서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주는 것이다.

 

가족과 가정의 가치가 흔들리고 상처를 받는 요즘 세상에서 그 의미를 다시 한 번 찾아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험난한 세상의 풍파를 헤쳐나갈 때 우리의 든든한 보루가 될 자매들과 어머니의 모습이 이 책에는 있다. 뜨겁고 강렬한 애정보다 어쩌면 더 오래도록 우리를 지켜 줄 뭉근하고도 진한 열정도 이 소설에서 만날 수 있다. 때로는 많은 말의 향연보다는 깊은 애정을 담은 단 한 번의 눈빛이 더 많은 것을 얘기하기도 한다. 아마도 내가 이 영화 이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모든 것이 강렬하고 빠르고 자극적인 세상에서 자연과 대화와 산책과 음악, 그리고 서로에 대한 존중과 이해가 있는 세상으로 가는 통로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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