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삶의 어느 지점에 와 있는 걸까. 에디 휘태커는 인생에는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이 있다고 했다. 더 이상 뒤로 돌아가는 게 불가능한 지점, 주어진 기회를 완전히 놓쳐버렸다는 걸 깨닫는 순간말이다. 과연 어느 순간이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일까? 야자를 빼고 영화를 보러가자는 친구의 제안에 솔깃하던 순간? 대입을 위한 원서를 쓰는 순간? 결혼식장에서 선서를 하는 순간? 어쩌면 인생은 매 순간이 선택의 연속이고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인지도 모른다. 나의 이 작은 선택이 또 다른 결과를 가져오고 그 결과들은 서로 꼬리를 물고 나의 삶과 우리의 삶을 이끌고 간다. 이 겨울 나는 한 가지 선택을 했다. 그것이 가져올 결과를 지금은 모르지만,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다른 길보다 더 나은 방향이기를 소망한다. 나는 바른 선택을 한 것일까?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을 지나온 것은 아닐까? 그런 점에서 우리의 에디 휘태커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세 번이나 다른 선택을 할 기회를 얻었으니 말이다. 약혼녀와 가장 친한 친구와 뉴욕에 놀러나와 타임 스퀘어를 걷던 에디는 15년 안에 자신의 얼굴이 신문 1면에 나오도록 하겠다는 다짐으로 비루하기만한 일상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한다. 전혀 다른 곳에서 감쪽같은 새 인생을 시작하겠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만을 바라보던 약혼녀와 형제나 다름없는 지미를 자신의 인생에서 지우겠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리고 10년 후에 에디는 너무나 사랑하는 여자 셀린과 헤어진다. 그녀곁에 있으면 어쩐지 그녀가 위험해질 것 같다는 본능의 경고를 받아들인 것이다. 세상의 그 무엇보다 사랑한 셀린, 운명처럼 사랑하는 그녀를 보내면서 에디는 오로지 성공만을 위해 사는 남자가 되었다. 그에게는 친구도 가족도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숙취와 약에서 깨어난 그는 놀란다. 자신의 옆에 누워있는 아름다운 여자가 누구인지 도통 모르겠다. 그는 망설인다. 오늘은 그의 명성을 더욱 높여줄 텔레비전 인터뷰가 생방송으로 있는 날이다. 그 어느 날보다 좋은 컨디션이 필요한데, 이 여자는 누구일까? 여기부터 소설은 출발한다. 그리고 에디는 세 번의 선택의 기회를 갖는다. 같은 날을 세 번 살면서 에디는 자신의 사랑과 인생을 구원할 기회를 갖게 된다. 참으로 행복한 남자가 아닐 수 없다. 결국 그가 깨닫게 된 것은 성공도 돈도 야망도 사랑과 가족 앞에선 무용지물이라는 것이다. 독특한 구성과 흥미있는 문장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한 번 손에 쥐면 내려놓기 힘들 정도로 재미가 있었다. 또 하나 이 소설은 다 읽은 후에 독자를 행복하는 힘이 있다. 어느 독자든 주인공의 고통과 의문은 참기 힘든 괴로움이다. 그런 면에서 주인공이 진실을 찾는 여로에 동행할 수 있음은 행복이 아닐 수 없다. 이 소설에 소개된 영화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랑의 블랙홀>이라는 이름으로 번역된 빌 머레이와 앤디 맥도웰 주연의 <Groundhog Day, 1992>이다. 날마다 같은 날을 살아가는 기상 캐스터의 사랑이야기가 참으로 인상적이어서 기억하고 있던 영화인데 이 소설에 소개되는 것을 보고 어찌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프랑스인인 작가와 같은 영화를 공유한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