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특별한 악마 - PASSION
히메노 가오루코 지음, 양윤옥 옮김 / 아우름(Aurum)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한동안 일본 소설을 너무 많이 읽어서 가끔은 나의 정체성에 혼란이 오겠다 싶었다.

물론 뭐 다들 알다시피 일본 사람들이나 우리나 살아가는 것은 별반 다르지 않지만, 아무래도 정서라는 게 있지 않은가 말이다.

게다가 우리 어릴 때는 일본 노래라도 듣는 사람이 있으면 '쪽**'라는 불쾌한 이름을 붙이고 경원시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엄격히 규제를 하는 편이었으니 일본 소설을 드러내놓고 읽기 시작한 것도 나로서는 근 몇 년 안쪽의 일이다.

암튼, 그 몇년 사이의 독서 이력을 살펴보니 일본 소설을 꽤나 읽었다.

시시각각 업데이트되는 우리 소설도 다 못 읽는 처지에, 아이들에게 자랑스레 이야기해 줄 만한 고전 명저들도 제목과 주인공 이름만 겨우 꿰는 경우도 많은 주제에 이건 아니다 싶어서 의도적으로 멀리하려는 생각도 하던 중이었다.

 

"곳곳에 널린 섹시 코드에 질려버린 여성들의 피곤을 한 방에 날려주는 통쾌한 책"이라는 이 소설의 광고문은 그런 나의 아주 작은 마음의 걸림돌을 충분히 외면하게 할만큼 흥미를 끌었다.

텔레비전을 보면 여섯살짜리 아이도 섹시한 표정을 짓고, 초등학생들도 '섹시하다'가 '예쁘다'는 뜻인 줄 아는 요즘 세상에 좀 짜증이 나는 것도 사실이었으니, 나에겐 딱 안성맞춤으로 보였다.

그런데, 웬걸 시작부터가 어째 이상했다.

프란체스코(이거 이름이 좀 이상하지 않은가? 이건 내가 알기론 남자이름이다. 여자인 경우는 프란체스카 아닌가?)라는 여자의 교성이라면 교성으로 이 소설은 시작된다.

소설 속의 주인공은 프란체스코는 어린 시절을 수도원에서 지낸 준수도녀(이 소설에서 나온 단어이다.)이다.

항상 경건하고 검약과 재활용을 실천하고 자비와 봉사정신을 가진 그녀에게는 남자 친구가 없다.

어쩐지 음탕한 생각을 하던 남자들도 그녀를 보거나 손이 닿기만 해도 경건한 마음을 갖게 된다.

혹시나 그 마음을 이기려고 약이나 술을 복용하게 되면 신체에 불상사가 일어난다.

그런 그녀의 몸에는 '고가씨'라고 부르는 인면창이 있어서 그녀를 온갖 독설로 그녀를 괴롭히고 있다. 이 고가씨가 내 안의 특별한 악마인 모양다.

그렇다고 해서 고가씨가 내뱉는 말들이 아주 틀린 말이 아니어서 프란체스코는 반항도 못하고 오히려 거기에 길들여진다는 설정이다.

긴 시간을 함께 하면서 고가씨에게 오히려 사랑을 느끼게 된다는 그런 줄거리이다.

 

읽으면서 내내 찜찜하고 어리둥절했던 것이 사실이다.

판타지 소설인지 어쩐지 환상의 세계를 그려내고 있으나, 어딘지 개운치가 않은 그런 기분이다.

내용도 영 탐탁지 않을 뿐더러, 역자 스스로도 고백했듯이 일종의 여과 과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선정된 단어들도 읽기에 불편했다.

내가 읽던 페이지를 누가 보자고 했으면 덮고 싶을 정도였다.

작가의 정신 세계를 더 이해하고 싶어서 '옮긴의 글'은 물론이고 작가 본인이 직접 쓴 '내 작품을 말한다'까지도 읽었다.

성 프란체스코의 발뒤꿈치 정도의 부분이 다시 태어난다면 이 소설의 프란체스코 같이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쓴 소설(내 작품을 말한다. 289쪽)이라고 한다.

과연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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