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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구회 추억
신영복 지음, 조병은 영역, 김세현 그림 / 돌베개 / 2008년 7월
평점 :
"매월 마지막 토요일에 장충체육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그들의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 나는 감옥의 벽에 기대어 그들과의 만남을 처음부터 끝까지 떠올렸다. "
<청구회 추억>의 추억 112쪽
"언젠가 먼 훗날 나는 서오릉으로 봄철의 외로운 산책을 하고 싶다. 맑은 진달래 한 송이를 가슴에 붙이고 천천히 걸어갔다가 천천히 걸어오고 싶다.
Some day in the future, I want to take a lonely walk to Seo-O-Reung. With a bright azalea on my lapel, I want to go slowly on foot to Seo-O-Reung and slowly walk back."
본문 106쪽
한동안 가슴이 먹먹해졌다.
늘상 존경해오던 선생님의 글이라서인지 글을 읽는 내내 담담한 표정으로 그리고 나직나직한 목소리로 당신의 추억 속 아이들의 이야기를 건네시는 선생님의 모습을 떠올렸다.
따로 말씀을 나눠본 적은 물론이요, 먼 발치에서라도 얼굴 한 번 뵌 적도 없으면서 나는 신영복 선생님을 선생님이라고 생각한다.
그 분의 책을 읽으면서 나의 답답하고 힘겨웠던 젊은 날을 견뎌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나에게 "내 인생의 한 권의 책"을 고르라면 나는 서슴없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말한다.
해마다 지금처럼 가을이 다가오면 나는 그 낡은 책을 아무 장이나 펼쳐서 읽기 시작한다.
군데군데의 밑줄과, 색깔과 필체를 달리하는 작은 낙서들이 눈에 들어온다.
구체적인 행동지침이 들어있는 것도 아니고,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팁이 들어있는 책도 아니건만, 그 안에서 나는 세상을 발견했다.
긴 시간동안 나를 외롭게 하던 생각의 차이들이 단지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게 하고,
철없이 이기적이던 나의 삶의 눈을 더 넓은 세상으로 돌리게 해 준 책이다.
이제 이 책 <청구회 추억>에서 나는 선생님의 추억을 들여다 본다.
1960년대 후반, 가난하지만 성실하고 바른 그 국민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부러웠다.
아주 어린 시절이었지만 그 시절 직후의 서울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나는 아이들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아마도 머리는 빡빡 깎은 머리일테고 입성은 그다지 훌륭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의 기억 속에는 고무신을 신었던 동네 언니 오빠들의 발이 있다.
요즘 아이들이 입는 옷과 신발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런 시절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처럼 똑똑하고 제대로 된 정신을 가진 아이들이 요즘에 얼마나 될까하는 마음에서 참으로 부러웠다.
그들은 서로를 도왔고, 책을 함께 읽었으며, 마을 청소를 할 줄 알았다.
스스로 돈을 벌어서 저금을 할 줄 알았고, 좋은 아이를 보는 안목을 가졌다.
자신들을 이끌어줄 존경할 만한 선생님을 알아보았으며, 그 분이 아플 때 찾아가 뵐 줄 알았다.
내 아이들에게 진정으로 가르쳐야할 것이 무엇인가 보이는 것 같다.
어린 아이들과의 소중한 추억조차 오해받을까 노심초사했던 선생님의 삶이 다시 한 번 경건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