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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자살 클럽
전봉관 지음 / 살림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박완서의 <옥상의 민들레꽃>이라는 소설에서 어린 주인공은 이런 말을 한다.
"나는 나이는 어리지만, 사람들이 어떤 때 죽고 싶어지는 지 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나를 귀찮아하는 눈치가 보일 때이다."
어린 주인공이 사랑하는 엄마가 자기의 성의를 무시하고, 자기의 출생을 귀찮아한다는 것을 몰래 듣고 죽을 결심으로 옥상에 올라가면서 하는 말이다.
그렇다.
자기의 일이 힘들고 어렵고, 경제적으로 빈곤하고, 장래가 캄캄하다 할지라도 사람은 누구 한 사람이라도 나를 믿고 기다리고 있다면 죽을 마음이 나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니, 가족을 남기고 자살하는 사람들은 너무나 이기적인 사람들이라고 본다.
때로는 자신의 존재만으로도 힘이 되는 사람들이 있음을 우리는 늘 기억하고 살아가야 한다.
이 책 <경성 자살 클럽>에서는 수 많은 자살 이야기가 나온다.
자살이야 예나 지금이나 문제가 되고 있지만, 이 책이 의미가 있는 것은 일제 강점기 조선 사람의 자살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1부에서는 근대 조선의 사랑과 전쟁이라는 제목으로 다섯 건의 자살 사건을 다루고 있다.
사랑에 실패한 독일 남자의 자살, 남편을 먼저 보낸 신여성의 자살, 배신당한 여성의 자살과 남자의 출세를 위한 자살, <사의 찬미>로 유명한 윤심덕 김우진의 자살 사건등이 그 내용이다. 특히 윤심덕 김우진의 자살 사건은 한 동안 그 진위를 놓고 떠들썩 했다든가. 그들이 사실은 죽지 않고 그야말로 "쑈"를 한 것이다라는 의견까지 다루고 있어서 사건의 전모를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2부에서는 지금도 간간이 일어나는 집단 따돌림에 의한 자살 사건이 있었다.
가끔씩 우리 사회에서도 일어나는 이 문제는 사람이 또래와 사회에 어울리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우쳐 주고 있다.
또한 사소한 일로도 다른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 인간의 입이라는 점이 섬뜩하다.
또한 동성애에 의한 자살, 입시 지옥으로 인한 자살등 지금의 사람 사는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는가 하면, 당시 조선의 특수 상황에 의한 사건들도 다루고 있다.
대체로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은 여성인 경우가 많았다.
당시 시대가 한 번 연애한 것으로 소문난 여자가 홀로 살아가기가 힘든 세상이었고, 신여성이 구여성에게 시집 살이를 당하는 일은 여성의 삶에 또 하나의 큰 굴레일 수 밖에 없었다.
박금례의 자살 사건의 경우는 아동문학가로 이름이 높은 작가와의 관계로 한 아가씨가 죽음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는데도, 정작 그 상대남은 우물쭈물하기만 했다니 분통이 터질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당시의 사진과 신문 기사, 책등을 인용한 정확한 고증과 그 자살이 사회에 미친 영향, 그리고 그것이 갖는 역사적 의미에 대한 해설등은 한 사람이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는 자살이라는 것이 기실은 그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