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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아이들 ㅣ 새로고침 (책콩 청소년)
로버트 스윈델스 지음, 천미나 옮김 / 책과콩나무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어제 볼 일이 있어서 서울에 다녀왔다.
기차 시간에 맞추느라 아침부터 동동 거리며 역 앞의 광장을 가로질러 100미터 달리기를 했다.
하루 종일 여기저기 시간에 맞추어 돌아다니고,
급한 점심을 먹고는 오히려 돌아오는 기차 시간이 남아서 서울역 커피집에서 이 책을 읽었다.
큰 컵으로 카푸치노를 마시면서......
그리고 한 시간 남짓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 책을 마쳤다.
도착한 역 앞에서 눈에 띄는 사람들이 있었다.
분명히 아침에는 못 본 것 같았는데,
덥수룩한 머리, 찌는 듯한 더위에도 긴팔의 겉옷을 입고 역 앞을 방황하는 사람.
지하도의 한 구석에서 무어라 알 수 없는 소리를 큰 소리로 지껄이는 사람.
아마도 그 들은 항상 거기 있었을테지만, 나는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무심히 지나칠 수 있었지만 어쩐지 자꾸 신경이 쓰이고 다시 보게 되었다.
이 책을 읽은 까닭일 것이다.
흔히들 노숙자라면 나이 든 남자들을 떠올리지만,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어린 소년이다.
집에서 쫓겨나다시피 나온 소년 링크.
소년은 거리를 떠돈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몰랐다.
금방 일자리를 얻어서 생활을 하게 될 줄 알았지만, 어느 누구도 그에게 일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돈이 없어서 거리 생활을 하고, 거리 생활을 하기때문에 돈을 벌 수 없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그런 그에게 소중한 친구 진저가 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진저가 사라지고 만다.
또한 이 소설은 두 가지의 시점이 교차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노숙을 하는 링크와 거리의 노숙자를 경멸하고 사회의 악으로 생각하던 쉘터의 시각이 교차되면서 서술되어서 소설의 전개를 필연적으로 만든다.
우리나라에도 청소년 노숙자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거리에서 밤을 지내는 그 아이들은 어떤 사정으로 나온 것일까?
집 밖의 생활이 차라리 더 나을만큼 집 안에서 힘든 것일까?
그들의 부모는 어떤 사람들일까?
아니, 부모가 아이들을 거두는 책임을 방기했다고 해서 사회에서도 그 아이들을 버려두는 것이 옳은 일일까?
예전에 읽었던 책 중에서 외국의 청소년 보호 시스템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이가 찾아가기만 하면 도와주는 그런 제도가 있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어디로 찾아가면 되는지 알려주기만 해도 한 아이의 인생을 건진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가정 문제는 가정에서 해결해야한다는 생각이 팽배한 우리나라에서는 집을 나온 아이를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만이 해결책이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러나, 그렇게 집으로 돌려보내진 아이들은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또 가출을 한다.
차라리 국가 차원에서 아이들을 보호하는 제도가 더욱 바람직하다.
물론 그런 제도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대대적인 홍보와 교육이 시급하다는 생각이 든다.
구타하는 계모를 피해서 보호의 집을 찾아들던 예전의 그 중학생 소녀가 떠오른다.
새로 얻은 마누라에게 얻어맞는 딸보고 숨으라고 하던 그 가증스런 아버지도.
그 계모는 학교까지 찾아와서 아이를 찾아내곤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