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메르의 모자 - 베르메르의 그림을 통해 본 17세기 동서문명교류사
티모시 브룩 지음, 박인균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어느 사람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킨다. 왜냐하면 나는 인류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 그러니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지 알고자 사람을 보내지 말라. 종은 그대를 위하여 울린다. "

                         존 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맺으며 - 인간은 섬이 아니다. 중 307쪽

 

이 책 <베르메르의 모자>를 읽으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얼마나 정교하게 짜여진 그물인가를 새삼 느꼈다.

나 개인의 삶이란 나만의 것이 아닌 거대한 세상의 그물 중 작은 한 코인 것이다.

내가 읽는 이 책, 내가 먹는 이 음식, 모든 것은 모든 사람을 통해서 내게로 온다.

인간은 섬이 아니기 때문이다.

 

표지의 그림은 <진주귀고리 소녀>로 유명한 네덜란드 델프트 출신의 17세기 화가 베르메르의 <장교와 웃는 소녀>라는 그림이다.

이 그림에서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웃는 소녀의 얼굴에 시선을 맞춘다. 그러나, 저자는 그 그림이 17세기를 향해 열려있는 문이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장교가 쓰고 있는 모자가 바로 그 열쇠다. 이 모자의 재료인 비버 가죽은 북아메리카 인디언이 채집한 가죽이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이들 영국인들을 멍청이라고 생각했다. 비버 가죽 한 장에 멋진 칼 스무 자루를 주었기 때문이다.

그림 속의 열려진 창문은 베르메르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구도이다. 바로 세계를 향해 열려진 당시 사람들의 의식을 상징한다. 또한 벽에 걸린 지도는 네덜란드인들이 바다 무역의 중심에 있음을 알려주는 도구가 된다. 베르메르는 특이하게 육지를 푸른 색으로 바다를 옅은 갈색으로 그렸다. 당시의 사회 제도가 재편되고 있음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이 책 <베르메르의 모자>는 이처럼 베르메르의 그림에 등장하는 비버 펠트와 중국 자기 그릇, 세계 지도와 담배, 그리고 은과 노예등이 델프트의 집안까지 들어오게 되는 과정을 추적한다.  그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17세기 유럽 사람들의 세계관과 그들의 식민지 구축 과정, 그리고 너무나 의외로 그 무역의 세계에 깊숙하게 개입되어 있는 조선의 모습까지도 만날 수 있다.

당시 유럽 사람들의 목표는 중국으로 가는 길의 개척에 있었다. 아메리카 대륙에 유럽인들의 발길이 미친 것도 그것 때문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중국의 화려한 부와 아름다움을 그들은 동경했다.

동남아시아의 마닐라와 마카오 그리고 반탐과 자바, 바타비아, 아프리카 연안의 마다가스카르와 볼리비아의 포토시까지 그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얼마 전 읽은 책에서 본 폐허의 도시 <포토시>의 사진이 떠 올라서 씁쓸했다. 그 도시가 그렇게 버려지기 시작한 것이 17세기부터라니 인간의 역사라는 것이 참으로 허망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 역사의 격동 속에서 그물의 한 코를 이루는 한 개인의 삶을 추적하는 과정은 이 길고 그 분류를 정할 수 없는 책을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며 저자의 인간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보여준다. 화승총을 지닌 채, 원주민들과 동맹을 맺고 아메리카 대륙을 횡단하려던 샹플랭, 중국 최고의 교양인 원전헝, 현명한 판관 판룬민, 다양한 항해 경험을 책으로 내서 성공한 본테쾨 등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그들의 이야기를 건넨다.

 

우연히 네덜란드를 여행하던 중 델프트에서 넘어진 자전거가 저자를 이 책으로 이끌었다고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우연이란 없다는 말이 떠 오른다.

그가 그곳에서 넘어진 것은 그가 델프트와 인연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드라는 세상을 만들 때 하나의 그물처럼 만들어 그물의 매듭 하나하나에 진주를 꿰어 넣었다. 현재 존재하거나 과거에 존재했던 모든 것, 머리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개념, 진실이라 할 수 있는 모든 자료가 인드라의 그물에 달린 진주이다. 인도 철학 용어로는 이를 다르마라고 한다. 그물에 매달려 있는 각 진주는 당연히 다른 진주와 연결되어 있을 뿐 아니라 각 진주의 표면에는 다른 진주들의 모습이 반영된다. 인드라의 그물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은 함께 존재하는 다른 모든 만물을 내포한다. "

                                                                                본문 46쪽

 

베르메르의 그림 속의 소녀가 진주 귀고리를 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또한 그 소녀의 진주 귀고리에 다른 사물의 모습이 비춰지는 것 역시 우연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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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nes Kim 2009-09-22 0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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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nes Kim 2009-09-22 0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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