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원주민
최규석 지음 / 창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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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말로 오랜만에 만화다운 만화를 보았다.

한 때 우리 동네와 학교 근처의 만화가게를 주름잡던 나의 만화 안목으로 보건대, 이 만화 <대한민국 원주민>은 진짜 만화다.

아기자기 예쁜 그림도 아니고 가슴 설레는 사랑 이야기도 없건만 순식간에 책장을 넘겨버리고 난 뒤 한 동안 가슴이 멍했다.

만화란 모름지기 한 번에 보고 딱 잊어야한다는 나의 모토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심지어 "만화 따위"를 다른 사람에게 권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학창 시절 전태일의 이야기를 들을 때, 그 공장에서 실밥 따던 그 시다가 거기 있었다.

학교 갔다 오면 가마솥에 고구마만 있어서 지금도 고구마를 안 먹는 그 아이가 있었다.

대학 들어간 오빠 밥 해주러 서울로 가서 공장엘 다녔다는 우리네 어머니가 거기 있었다.

 

서로 다른 시대가 비율만 오르내릴 뿐 겹쳐 움직이는 거다

                                                            - 작가와의 인터뷰 156쪽

 

잊고 지냈던 나의 기억들 조차도 스멀거리며 살아오는 통에 진저리를 쳤다.

어떤 것들은 나를 따뜻하게 하고 또 어떤 기억들은 다시 사라져주길 바란다.

어느날 갑자기 사라졌던 우리집 개 '로미'.

가끔씩 술을 먹고 자기 마누라를 개 패듯해서 온 동네를 뒤집어 놓던 그 아저씨.

그 오씨 아저씨 술 많이 먹어서 병으로 일찍 죽었다더라.

쥐약 먹고 죽었다던 미선이네 강아지.

소풍날  예쁘게 화장하고 따라나선 엄마가 너무 좋아서 신이 났던 일.

그날 엄마는 김밥을 너무 많이 싸서 무거워했다. 그걸 다 먹었던가?

 

작가의 나이를 보았다.

나보다도 한참이나 아래다. 강산이 한번쯤은 바뀔 수도 있을 만큼의 세월 아래인 사람의 경험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나도 나만의 방을 갖고 동화책을 전질로 들여 놓고 산 적이 없다. 친구집의 동화 책들은 일단 다 내가 먼저 읽었고, 유치원에 다닌 친구는 기억에 없다. 그래도 우리는 학교 들어가기 전에 한글은 떼었고, 여자 아이라고 중학교에 안 보낸 집은 없었다.

다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어쩌다가 아주 부자인 친구집에 놀러가면 나와는 다른 세상의 사람인가보다 했다.

 

언제 이렇게 달라졌을까?

그들 우리 원주민들은 어디로 간 걸까?

마을이었던 곳은 물이 들어와서, 과수원이던 곳은 전원 주택이 들어서고 외지 사람들이 놀러온다.

 

누구나 갖고 있는 유년의 기억들을 들추어 이런 이야기를 건네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은 일이다.

남 얘기라면 재미나지만 그게 내 얘기일 때 우리는 감출 것이 많아진다.

죄지은 것도 아닌데, 왜 부끄러운지.

너무 수줍은 사람들이다.

어쩌면 작가는 너무 수줍어서 이렇게 살그머니 말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가슴 속에 다 두기엔 할 얘기가 너무 많아서 말이다.

할 얘기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

털어놓지 않으면 답답한 얘기가 무엇인지 아는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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