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에 물들다 1 - 흔들리는 대지
아라이 지음, 임계재 옮김 / 디오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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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티베트는 나의 로망이라고 생각해 왔다.

알렉산드라 다비드 넬의 <영혼의 도시 라싸로 가는 길>은 이런 나의 티베트 사랑을 시작하게 한 책이다.

외국인의 출입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던  20세기 초에 티베트 여인네의 복장을 하고 걷고 노숙하면서 영혼을 찾는 여정을 했던 그녀의 책은 일상의 매너리즘에 지치고 늘 읽는 비슷한 책들에 질리던 내게 신선한 공기와 같았다.

아름다운 공기, 아름다운 사람들의 나라.

버터차를 끓이고 신에게 온몸을 던지며 스스로를 바치는 나라.

그 곳에 닿고자 하는 열망으로 나는 티베트에 관계된 것이라면 그것이 책이 되었든, 영화이든 가리지 않고 읽고 보았다.

대부분의 책들은 티베트를 여행한 다른 나라 사람들의 글이었다.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듯 보이는 라싸의 포탈라궁 사진이나,  오체투지를 하는 순례자의 사진은 이젠 흔히 볼 수 있는 사진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중국이 라싸로 가는 길에 철도까지 놓는 바람에 티베트는 중국의 관광 도시가 되고 말았다.

한 때 우리를 가리키는 말이었던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말도 이젠 티베트에서조차 무색하다고 한다.

 

남들이 보고, 남들이 찍은 사진으로는 티베트에 대한 나의 허기를 메울 수는 없었다.

기어이 내 눈으로 그 곳을 보고, 더 늦기 전에 그 곳의 공기를 마시고 싶은 나의 마음에도 아랑곳없이 얼마전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

마치 수십년 전 이 땅에서 일어났던 일이 그대로 재현되는 듯 말이다.

이젠 너무 늦은 것이 아닌가?

알렉산드라의 라싸, 하인리히 하러가 티베트에서 보낸 7년은 이젠 기어이 꿈이 되고 마는가 싶어서 안타깝다.

 

그러다가 만난 이 책은 다른 사람이 쓴 티베트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들이 쓴 그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참으로 반갑다.

처음으로 읽게 된 티베트의 소설.

티베트가 세계의 격변 속에서 흔들리던 때를 배경으로 그들의 문화와 정서를 한껏 보여주고 있다.

일종의 자치왕인 투스는 자신의 영지를 갖고 왕의 권력을 행사한다.

이 소설의 서술자는 바로 그 투스의 둘째 아들이다.

엄격한 장자 세습의 원칙 아래에서 태어난 작은 아들은 그 위치가 위태롭다.

그러나 천재이자 바보인 그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살아갈 방법을 안다. 그것도 그냥 알게 된다.

중국에서 사람이 드나들면서 양귀비의 전래로 투스들의 체제는 흔들리고, 주인공 바보는 그 변혁기에 휘말린다.

 

읽는 동안 그 가속도가 예사롭지 않다.

중국 소설과도 다른 어떤 동양의 소설과도 다른 독특한 분위기와

그들이 뿜어내는 달관과 신에 대한 사상과 인간의 자유 의지에 대한 관념은 티베트 사람 고유의 독창성을 맘껏 발휘하여 나를 몽환의 세계에 빠지게 한다.

어쩌면 아직도 늦지는 않은 것이다.

알렉산드라의 라싸는 이젠 없을지언정 아직은 티베트 사람들의 라싸가 살아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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