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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과 풍경 ㅣ 펭귄클래식 40
페데리코 가르시아로르카 지음, 엄지영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이 책의 표지는 <알함브라 사원>이라는 그림이다.
한 때 클래식 기타 음악을 들었던 사람치고 그 섬세한 선율의 <알함브라하 궁전의 추억>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작은 기타로 연주하는 것이라고는 생각도 할 수 없을 만큼의 아름다운 화음으로 사람을 사로잡는 이 연주곡은 <로망스>와 함께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곡이다.
이 책 <인상과 풍경>을 읽는 동안 내내 이 음악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클래식 기타를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사는 덕분에 많은 연주곡을 귀동냥으로 듣고, 가끔은 유명한 연주가가 내한하면 연주회에도 참석하기도 하면서 나름대로는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유럽 아닌 유럽, 이베리아 반도엘 가보리라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소박한 사람들이 사는 곳.
거만한 유럽이 아니라 스스로도 유럽인으로부터 소외받는다는 그 곳.
리조또와 플라멩코의 나라.
검은 곱슬머리와 붉은 색 치마를 날리며 춤을 추는 집시 여인, 카르멘.
그녀를 목숨 걸고 사랑하는 투우사의 나라.
독재자 프랑코와 파카소의 게르니카.
가우디와 미완의 성당의 나라.
바스크 족의 독립운동으로 시끄러운 나라.
많은 것을 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1918년 로르카의 나이 20세 때 쓰여진 이 여행기는 그저 만만하지 않았다.
로르카를 따라서 스페인의 여러 지역을 여행하면서 성당과 수녀원과 묘지들을 만났으나 어디인지 지금도 그 장소를 모르겠다.
지도를 펼치고 찾아보고자 했으나, 지명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별로 없었고, 따로 뒷부분에 역사적 사실과 인물들에 대해서만 설명을 하고 있었다.
한 단어에 대한 설명이 대여섯 줄씩이나 되는 바람에 책갈피를 두 개식 끼우고 읽었다.
"여러분이 이 책을 덮는 순간 안개와도 같은 우수가 마음 속을 뒤덮을 것이다."
서문
바로 이 문장이 이 책을 선택하게 했다.
가벼움의 끝을 확인하고자 하는 듯 모든 문화가 가벼운 웃음거리들로 가득차고 있는 지금.
한 천재 시인의 젊은 여행기가 안개와도 같은 우수를 줄 수 있다면 고전의 가치는 충분하지 않겠나하는 생각이었다.
처음 읽을 때는 한 여류 소설가의 <수도원 기행>을 떠 올린 것은 사실이다.
고즈넉한 무욕의 세계, 지고지순한 선을 추구하는 기도의 세상을 넘겨보는 것은 읽는 이 스스로도 경건한 마음을 갖게하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 책 <인상과 풍경>은 읽는 내내 우울함이 가슴을 뒤덮었다.
무너진 수도원과 페허가 된 채 전설을 품고 있는 사원과 궁전들.
그리고 그 안에서 놀고있는 헐벗은 시골 아이들과 아낙네는 시인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훌륭한 장인들의 사상이 빛나는 부르고스의 빈 무덤에서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 시신 없는 무덤을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을 따라 과거의 차가운 기운이 먼지처럼 일어나고 머나 먼 이상의 세계를 염원하며 끝없이 돌아가던 묵주알이 바닥에 힘없이 떨어져 나뒹군다.
........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언젠가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생각......이 세계와 영원성 또한 무한한 꿈의 일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 본문 113 - 114쪽
그러나, 햇빛이 비추면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고 시와 음악은 영원하다.
"산 너머로부터 번지는 수정처럼 투명한 새벽빛을 이기지 못해, 세상도 자신의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무슨 미련이 남았는지 밤의 그림자가 숲을 떠나지 못하고 나뭇잎 사이로 어슬렁거리는 사이, 도시는 서서히 밤의 베일을 벗기 시작한다.
- 본문 135쪽, 그라나다의 여름날 새벽
나는 그 아름다운 세상을 보고 싶다